해산 지시에도…초유의 경찰서장 '집단 항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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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국 치닫는 '경찰국 사태'다음달 2일 행정안전부에 경찰국을 신설하는 안을 놓고 경찰 내부 반발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급기야 경찰 총경급 간부들이 전국 단위 회의를 열어 집단행동에 나서는 사상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졌다. 경찰청은 해산 지시에도 회의를 강행한 참석자 50여 명의 감찰에 들어갔다. 야당까지 가세해 윤석열 정부 공격의 빌미로 삼는 등 이번 논란은 정치권으로도 번지는 양상이다.
총경급 간부들 전국 회의 강행
온·오프라인서 190여명 참석
청장 후보자에 '반대의견' 전달
회의 주도 류삼영 총경 대기발령
김대기 비서실장 "경찰 견제 필요"
해산 지시 무시하고 회의 강행
지난 23일 충남 아산 경찰인재개발원에서 열린 ‘전국 경찰서장 회의’에서는 행안부 경찰국 신설을 두고 법적·절차적 하자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회의에는 총경급 경찰관 56명이 참석했고 온라인으로도 133명이 참가했다. 이외에 356명의 총경이 무궁화 화분을 통해 동참 의사를 밝혔다. 경찰 조직에서 총경은 600명 안팎으로 대부분의 총경이 회의에 직간접적으로 참가한 셈이다.회의는 4시간 동안 열렸다. 회의 직후 브리핑에 나선 류삼영 울산중부서장은 “많은 총경이 행안부 장관의 경찰청장 지휘규칙이 법치주의를 훼손한다는 점에 공감하고 우려를 밝혔다”며 “경찰국 설치와 지휘규칙 제정 방식의 행정 통제는 역사적 퇴행으로 부적절하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고 말했다.
윤희근 경찰청장 후보자는 회의 직전 해산을 지시했지만 회의는 강행됐다. 윤 후보자는 21일 총경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국민의 눈에 비친 스스로의 위치와 직분을 생각해 신중한 판단과 실행이 요구된다는 사실을 숙고해달라”며 회의 개최를 만류했다.경찰은 이날 회의 참석자들의 징계 절차에 들어갔다. 회의를 주도한 류 서장을 대기발령했고, 회의에 참석한 56명의 감찰에 들어갔다. 해산 지시를 어겨 국가공무원법상 복종 의무를 위반했다는 것이다. 화상 참가와 동참 의지를 밝힌 총경들은 징계 대상에서 제외됐다.
경찰청은 “국민 우려를 고려해 모임 자제를 촉구하고 해산을 지시했음에도 불구하고 모임을 강행한 점에 대해 엄중한 상황으로 인식한다”며 “비슷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복무규율 준수사항을 구체화하고 향후 위반행위 등에 대해서도 강력히 대응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재점화하는 경찰국 신설 논란
경찰 간부급들이 경찰국 반대에 조직적인 반대 의사를 나타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주로 서장에 보임되는 총경은 일선에서 무게감 있는 계급으로 평가돼 이번 사태의 파급력이 클 것이란 평가다. 지금까지 경찰 직장협의회를 중심으로 집단 반발이 이어졌지만, 직장협의회는 경찰 일부의 목소리를 대변한다는 인식이 강해 영향력이 크지 않았다. 경찰청 관계자는 “경찰국 설치가 확정되면서 수그러들 조짐을 보이던 내부 갈등이 재점화하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사태는 강 대 강 대치로 흘러갈 조짐을 보이고 있다. 경찰청의 징계에 대해 총경들은 “공무원법을 위반하지 않았다”며 반발하고 있다. 류 서장은 “경찰의 미래가 걸린 일에 경찰이 모인 것은 문제가 없다”며 “필요하다면 2차, 3차 회의도 할 것”이라고 했다. 경감 경위 등 중간·초급 간부들도 이번 경찰서장 회의에 동조하는 성격의 전국현장팀장회의를 오는 30일 열겠다고 예고했다.안정돼 가던 직장협의회 차원의 반발도 다시 거세질 전망이다. 직장협의회는 21일 윤 후보자를 만나 간담회를 하고 “직원들의 건의사항을 행안부가 고려하겠다는 데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했다”는 기존보다 다소 완화된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직장협의회 관계자는 “반대 목소리를 낸 것을 징계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며 “이에 대해 강력히 반대할 것”이라고 했다.
경찰국 신설을 둘러싼 갈등은 정치권으로 확산하고 있다. 총경 징계 절차 소식에 오영환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던 윤석열 대통령이 경찰에 굴종을 강요할 수는 없다”고 비판했다.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은 이날 “35년간의 공직 경험으로 볼 때 (경찰서장 회의는) 부적절한 행위가 아니었나 싶다”며 “검수완박으로 힘이 세진 경찰에 대한 견제와 균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구민기/장강호 기자 koo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