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열사 합치는 한화·포스코·롯데…"덩치 키워 경기침체 정면돌파"

한화 방산 계열사 한곳에 모아
포스코인터는 에너지와 합병
롯데, 빙과 합쳐 빙그레 제쳐

"약점 보완하고 점유율은 확대
불확실성, 규모의 경제로 넘자"
자금조달도 합병으로 해결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한화그룹의 방산 계열사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항공기엔진 생산을 주력으로 한다. 글로벌 항공기 제조사에 엔진을 납품하기 위해선 길게는 10년간의 투자 및 연구개발(R&D)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자본력이 있어야만 사업이 가능한 분야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2017년 이후 작년까지 매년 수백억원의 손실(별도기준)이 난 이유다. 올 들어 글로벌 긴축이 확산하며 금리가 오르자 회사 고민은 더 커지고 있다. 자금조달 비용이 높아지고 있어서다. 지난해 인공위성 제조업체인 쎄트렉아이에 투자하는 등 미래 먹거리인 항공우주 분야에도 자금을 투입해야 하지만 말라가는 현금이 걱정이다.

연관사업 통합에 나선 기업들

한화그룹이 이런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검토하는 전략이 합병이다. 장갑차·자주포를 생산하며 안정적으로 현금을 창출하고 있는 한화디펜스와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합병하면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부족한 투자 자금을 보강할 수 있다. 미래 사업 확장이 숙제였던 한화디펜스는 항공우주 등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합병을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는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이런 전략을 택한 것은 한화그룹만이 아니다. 포스코그룹은 포스코인터내셔널과 포스코에너지 합병을 결정하고 관련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액화천연가스(LNG) 가스전을 보유한 포스코인터내셔널이 LNG터미널발전소를 갖고 있는 포스코에너지를 흡수해 LNG사업 밸류체인을 일원화하려는 포석이다. 동시에 양사가 보유한 약 1조5000억원의 현금을 활용해 LNG터미널 추가 인수, LNG발전소 확충 등에 적극 나섬으로써 사업을 한층 고도화할 기반도 마련할 수 있는 전략이다.
기업들은 점유율과 브랜드 파워를 키우고 이를 통해 ‘규모의 경제’ 효과도 누리기 위해 합병에 나서고 있다. KT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사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자사 서비스인 시즌과 CJ그룹의 티빙을 합병하기로 이달 발표했다. 합병 법인은 넷플릭스에는 뒤지지만 웨이브(SK텔레콤 운영)를 제치고 가입자 기준 국내 1위 사업자로 부상하게 된다.

롯데그룹도 계열사인 롯데제과와 롯데푸드로 나뉜 빙과사업을 합쳐 시장점유율 44%의 대형 빙과 사업체로 재탄생시켰다. 점유율 선두였던 빙그레(점유율 40%)를 넘어 국내 1위 사업자로 단숨에 뛰어올랐다.

‘분할’의 시대 막 내리나

기업들은 유망 사업 육성을 위한 투자 재원 마련이나 부진했던 사업을 정상화하기 위한 합병에도 나서고 있다. 금리 상승과 기업공개(IPO) 시장 침체로 사업부를 분할해 사모펀드(PEF) 등 외부에서 자금을 끌어들이는 전략은 점차 막을 내리고 있다. 그 대안으로 합병을 통해 계열사가 보유한 현금을 통합, 자체적으로 신규 사업을 육성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작년 말 SK㈜가 SK머티리얼즈를 합병한 게 단적인 예다. SK머티리얼즈는 다수의 자회사와 함께 반도체·디스플레이 분야 첨단소재사업을 영위했다. 합병 이전에는 현금이 넉넉한 SK㈜가 SK머티리얼즈 자회사까지 직접 지원하는 데 한계가 있었지만 합병으로 지배구조가 단순화돼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한화가 흡수합병을 검토하고 있는 한화건설도 자체 신용등급(A-)으로는 채권 발행 등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합병할 경우 합병법인인 ㈜한화의 신용등급(A+)을 바탕으로 재원 확보가 한층 수월해지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한 전략 컨설팅업계 관계자는 “과거엔 대기업 계열사 간 합병 목적이 중복 사업부 통합을 통한 인력 구조조정이 강했지만 최근에는 기업 체질 강화와 경쟁력 확보를 위한 사업 재편이 핵심 목표인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