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실 칼럼] 똑바로 봐도 거꾸로 봐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VS 동물학자 템플 그랜딘 교수
입력
수정
한경닷컴 더 라이피스트
똑바로 봐도 거꾸로 봐도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 나조차도 우연히 한번 본 후 날 잡아서 몰아보기를 했던 드라마다. ‘기러기 토마토 스위스 인도인 별똥별,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우영우’ 등 대사에서부터 우영우와 친구 동그라미의 독특한 인사법까지 화제고 주인공 우영우를 연기하는 연기자 박은빈은 세대를 초월해 사랑을 받고 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2주 연속 세계 넷플릭스 비영어 TV 부문에서 가장 많이 본 콘텐츠 1위를 기록하는 등 글로벌 흥행도 지속하고 있다.
자폐 스펙트럼에 대한 다큐멘터리 VS 판타지
자폐 스펙트럼을 갖고 있는 주인공 ‘우영우’는 다큐멘터리가 아닌 판타지와 허구가 허용되는 드라마다. 그렇기에 실제 자폐스펙트럼을 갖고 있는 부모들 입장에서는 실제와 다르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국내 최고 법학부 출신 아버지의 후배가 대표로 있는 대형 로펌에 들어가서 겪는 다양한 스토리들이 감동도 주고 웃음도 준다.
자폐 스펙트럼 VS 지적장애
우리 사회에서 '자폐'라는 단어 자체가 익숙해진지 얼마 되지 않았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정신지체아'라는 단어로 통용되기도 했었다. 이는 자폐 스펙트럼과는 구분되는 '지적장애'를 일컫는 단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폐라는 유형 자체를 따로 부르는 말은 없었다.
스펙트럼과 자폐의 다양성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스펙트럼이 넓다"라는 표현을 종종 사용한다. 그만큼 자폐 스펙트럼이란 의미는 그만큼 자폐가 넓은 유형 분포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 가능하다. 우영우의 경우는 그 범위 중에서 '고기능 자폐증'이라고 볼 수 있다.
고기능 자폐, 동물학자 템플 그랜딘 교수
고기능 자폐란, 지적장애를 동반하지 않는 자폐 상태를 의미한다. 실제로 이 범위에 속하는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꽤나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는 경우도 존재한다.. 미국 콜로라도 대학교 교수이자 동물 인권을 위해 앞장선 동물학자 템플 그렌딘부터 프랑스의 유명 각본가 겸 영화감독인 레오스 카락스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는 예가 적지 않다.
법정에서의 우영우 변호사 VS 동물학자 템플 그랜딘 교수
그랜딘 교수가 현실 속 우영우 변호사인 셈이다. 농장의 가축들을 위해 헌신하는 동물학자로 유명한 그랜딘 교수는 두 살 때 자폐 진단을 받았다. 당시 의사는 "평생을 보호시설에서 있어야 하며 말을 하기도 힘들 것"이라고 얘기했다고 한다. 하지만 어머니와 학교 선생님의 도움 등으로 동물학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자신의 재능을 동물들을 위한 연구에서 꽃 피웠다.
그랜딘 교수가 동물들을 위해 설계한 시설
농장 가축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그가 설계한 인도주의적 시설은 북미 농장의 60%에 도입됐다. 이런 성과로 그는 2010년 미국 시사주간 타임이 꼽은 '세계 영향력 있는 100인'으로 선정됐다. 그랜딘 교수의 삶은 미국에서 영화와 책으로 제작됐고, 국내에선 그의 삶을 조명하는 연극이 2019년부터 꾸준히 무대에 올랐다.
자폐 스펙트럼 편견 변화로 세상을 바꾼다면
남들과 다른 그랜딘 교수는 늘 편견을 깼다. 2013년 2월 카우보이 복장을 한 채 '테드' 강단에 올라 '모든 종류의 사고가 필요한 세상'을 주제로 한 강의도 화제를 모았다. "정책과 건설 등 요즘 세상은 너무 추상적인 게 문제"라며 "대부분의 사람이 무시하는 세밀함에 집중하는 자폐적 사고가 세상을 바꾼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드라마 속 우영우 변호사, 정형화된 자폐인의 틀을 깨다
'우영우' 드라마의 방향을 알면 우영우 변호사 캐릭터 이해가 더 빠르게 될 것이다. 공감과 소통에 문제는 있지만 일부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이 특정 분야에서 보이는 높은 집중력, 즉 장점을 중심으로 접근한 것이 느껴진다. 그럼으로 해서 드라마 속 우영우변호사는 부족하거나 도움만 받는 정형화된 자폐인의 틀을 깬다고 볼 수 있다.
드라마 우영우가 사회에 끼치는 영향도
자폐 스펙트럼을 갖고 있는 이들에 대한 거리감을 좁히는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고 본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 나온 다운증후군 작가 정은혜 씨처럼 장애인을 직접 출연시키지는 않았다. 하지만, ‘우영우’는 시청자들에게 자폐 스펙트럼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상당부분 주었다.
우리나라의 장애인 비율은?지난해 보건복지부 장애인 실태조사 결과 장애를 갖고 태어난 장애인 비율은 불과 10.6%뿐이다. 장애인 10명 중 9명은 후천적 장애인이라는 분석이다. 자신은 장애와 무관할 것이라 믿는 비장애인도 산업재해, 교통사고, 질병 등 언제 어떤 이유로 장애를 입을지 모르는 ‘잠재적 장애인’이다.
누구나 잠재적으로 장애를 가질 수 있다는 인식이장애는 우리 모두에게 닥칠 수 있다, 장애인도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이며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자리 잡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렇게 된다면 출근길 지하철 지연 시위를 굳이 할 필요도 없이 장애인의 자립을 돕는 정부 예산과 사회 시스템도 자연스럽게 구축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각박해 지는 세상에서 주변을 조금 돌아보는 여유가 생기면주변을 돌아볼 여유도 없이 오로지 내 안위만 챙겨야 겨우 손해 보지 않을 것만 같은 각박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드라마 우영우를 통해서 우리와 조금 다른 이들을 볼 때 다름을 자연스럽게 인정하는 분위기가 생기면 좋겠다. 다름을 틀림으로 보지 않고 다름을 자연스럽게 인정할 때 비로소 성숙한 사회가 되기 때문이다.<한경닷컴 The Lifeist> 퍼스널이미지브랜딩랩 & PSPA 대표 박영실박사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