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신규 원전 없이 전력난 해결도 없다

전력난은 정부 수급계획 실패 탓
전기차 늘어나며 전력 수요 급증
탄소중립으로 원전 확대 불가피

박주헌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
올여름 전력수급에 경고등이 켜졌다. 공급 능력은 제자리걸음인데, 수요가 예상보다 훨씬 빨리 그리고 크게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산업통상자원부는 올여름 최대 전력 수요가 8월 둘째주쯤 91.7~95.7GW 범위에서 발생할 것으로 전망했으나, 실제 전력 수요는 예상보다 한 달가량 빠른 지난 7일 이미 93GW까지 치솟으며 최악의 폭염이었던 2018년 기록(92.5GW)도 갈아치웠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공급 능력은 100.9GW로 지난해 수준(100.7GW)에 머물러 있다.

전력당국은 발등에 떨어진 수급 위기의 급한 불 끄기에 여념이 없다. 하지만 탄소중립의 걸림돌로 ‘기후 악당’ 이미지까지 덧씌워 퇴출시켰던 삼천포화력발전소 재가동까지 검토할 정도로 마땅한 방안이 없어 보인다. 올여름 대정전과 같은 큰 위기를 걱정하는 이유다. 현재 전력수급 위기의 원인은 평년보다 무더운 이상 기후나 코로나19에서 벗어난 일상 회복에 있지 않고, 오히려 전력수급계획 실패에 따른 예상된 결과로 볼 수 있다.우리나라의 전력수급계획은 전력 수요 전망에서 시작한다. 먼저 수요 증가 추세를 반영한 기준 수요를 전망한 뒤, 수요관리를 통해 줄이려는 수요 감소분을 기준 수요에서 차감해 최종 목표 수요를 전망한다. 이 목표 수요를 안정적으로 충족할 수 있는 발전설비 용량을 정하는 것이 골격이다. 과대 전망은 과도한 발전설비로 이어져 낭비를 초래하고, 과소 전망은 향후 발전설비 부족으로 블랙아웃 위험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행 중인 9차 전력수급계획이 전망한 올여름 최대 전력 수요는 91GW로 지난 7일 기록한 최대 전력 수요 93GW보다 2GW나 모자란다. 불과 2년 전 작성한 수요 전망이 지나치게 낮았다는 말이다. 탄소중립을 달성하려면 모든 에너지를 전기로 전환하는 전전화가 필요하고, 초연결사회를 지향하는 4차 산업혁명도 막대한 전기를 추가적으로 필요로 한다. 진행 중인 냉난방의 전기화 추세, 전기차 보급 확대, 2025년까지 7GW 용량의 데이터센터 신설 계획은 큰 폭의 전기 수요 증가를 전망해야 하는 단적인 예다.

자칫 만성화할 수 있는 전기수급 불균형 해소를 위해 근본적 대책을 세워야 한다. 먼저 적극적인 수요관리가 필요하다. 사실 지금까지 전력 수요가 과소 전망된 근본 이유는 수요관리 목표에 비해 실제 성과가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수요관리의 핵심 수단인 가격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은 결과다. 정치적 목적에 의해 억지로 낮은 수준으로 묶어 놓은 전기가격은 절약과 효율을 유도할 수 없었고, 획일화한 전기가격 체계로는 전력 수요를 시간 혹은 공간적으로 분산할 수 없었다. 앞으로 지속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는 태양광, 풍력과 같은 재생에너지에서 비롯되는 간헐성과 계통 제약을 해소하기 위한 다양한 가격체계 마련이 시급하다. 하지만 판매시장의 독점구조는 가격체계의 다양화를 방해할 수 있다. 통상 독점기업에는 다양한 가격체계 개발 동기가 높지 않기 때문이다. 판매시장 개방이 필요한 이유다.

적극적인 수요관리에도 불구하고 늘어날 수밖에 없는 전력 수요는 전력 공급 증가로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탄소중립으로 말미암아 과거처럼 석탄, 천연가스와 같은 화력발전을 늘리기 어렵다. 현실적으로 늘릴 수 있는 전원은 재생에너지와 원자력뿐이다. 문제는 늘어나는 전력 수요를 모두 재생에너지로 감당할 수 있는가에 있다. 탄소중립을 위한 전전화에 의한 산업용 수요와 데이터센터와 같은 4차 산업혁명 관련 수요는 대개 변동성이 작은 기저부하가 될 가능성이 높다. 기저부하를 간헐성이 있는 재생에너지로 감당하기는 기술적, 경제적으로 어렵다. 원전 확대를 고려할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신규 원전을 배제한 안정적 전력수급은 이룰 수 없는 꿈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