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 오면 美·日처럼 금융사에 자본 수혈…'금융안정계정' 도입

금융당국 '금융리스크 대응 TF' 회의

"금융환경 변화, 시장 전체로 위기 확산 우려"
예금보험기금 내 '금융안정계정' 설치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불안정한 금융환경이 지속되면서 발생할 수 있는 금융사 부실을 막기 위해 '금융안정계정'이 도입된다. 위기 상황에서 일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금융업권에 유동성을 직접 공급하고 자본 확충을 지원해 금융시스템을 빠르게 안정시키겠다는 취지다.

26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금융리스크 대응 TF' 회의를 열고 "비은행부문 성장, 금융산업의 연계성 심화, 예측 곤란한 실물부문 충격 등 금융환경 변화로 특정 부문 위기가 금융시장 전체로 확산될 우려가 증가하고 있다"며 제도 도입의 필요성을 밝혔다.금융안정계정의 목적은 금융위기에 대한 선제적·예방적 대응체계를 상설화해 금융제도의 안정성을 강화하려는 것이다. 대내외 충격이 발생해 금융회사가 일시적으로 자금조달 등 어려움을 겪는 경우 미리 유동성을 공급하거나 자본확충을 지원해 금융사 부실을 미리 차단, 대응·정리 등에 소요되는 비용을 최소화하겠다는 것이다.

금융위는 "현재 국내 금융회사의 위기대응 제도는 부실 발생 이후의 예금보험기금 지원, 공적자금 조성 등 사후적 안정성 확보에 치중돼있다"며 "금융회사에 대한 선제적‧예방적 자금지원 체계를 상설화해 위기에 선제 대응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금융위는 제도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2020년 3월 주가급락으로 유동성이 부족해진 증권사가 원화·외화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여전채 금리 급등, 보험사 해외투자 환헤지 비용 증가 등을 초래했던 점을 예로 들었다. 또 금리변동, 국제기준 변경 등으로 다수 보험사의 자본건전성(RBC)이 일시에 급격히 악화될 우려가 있다는 점도 이유로 들었다.
금융안정계정 발동 절차/ 출처=금융위원회.
금융안정계정은 금융위 의결(기획재정부·한국은행·금감원 등 참석)을 통해 활용 여부 등을 결정한 후, 예금보험공사에서 자금지원 및 사후관리 등을 실시한다.

금융위가 금융시장 및 제도에 위기가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판단할 경우 금융사에 채무보증 및 대출(유동성 공급) 또는 우선주 매입 등(자본확충)을 지원하게 되는 것이다. 채무보증의 경우 보증수수료를 참여 금융회사로부터 징수할 예정이며, 금융사 채권의 발행‧유통 등이 어려울 경우에는 보충적으로 대출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자본확충 방식은 우선주 등을 매입한 금융회사로부터 배당 및 우선주 상환 등으로 지원자금을 회수하게 된다.

금융위는 해당 과정에서 정부 출연, 정부보증 채권 발행 등은 재원조달 방식에서 제외해 국민 부담을 최소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수익자 부담' 및 '전액 회수'를 전제로 재정부담 없이 운영하겠다는 것이다.금융위 관계자는 "예보기금 내에 금융안정계정을 설치하는 방식"이라며 "예보채 발행, 예보기금 내 계정 간 차입, 예보기금의 일시적 활용 등을 통해 정부 재정에 의존하지 않고 금융권 스스로 부담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당 제도를 두고 금융사들의 제도 악용 등 도덕적 해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우려에 대해선 "금융회사가 자체적인 위기 대응 해소 능력이 있는지 등을 엄격히 심사할 것"이라며 "자구수단 활용이 현저히 곤란하고 금융안정성 유지를 위해 지원이 불가피할 경우에 한해 지원을 실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금융위는 자금을 직접 지원하는 만큼 사후관리에도 만전을 기하겠다고 했다. 금융사로부터 경영건전성제고 계획(자금지원 신청금액 및 용도, 재무상황 개선을 위한 자구계획 등)을 제출받아 이행 상황을 주기적(반기별)으로 점검하겠다는 방침이다. 필요시엔 자사주매입 제한, 배당․임원성과급 제한 등 을 조건으로 자금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경영건전성제고 계획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엔 보증수수료 인상(유동성 지원), 시정요구, 임직원 조치 등 요구 등 페널티를 부과할 예정이다.금융위는 "선제적금융안정 수단이 시행 중인 주요국 사례를 참고해 국회의 입법과정(예금자보호법 개정)을 거쳐 제도화를 추진하겠다"며 "이르면 내년 하반기 이후 시행 가능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했다.

현재 미국과 유럽연합(EU) 일본 등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예방적 지원 제도를 구축하고 있다. 미국의 FDIC(Federal Deposit Insurance Corporation)는 정상금융회사의 채권발행을 보증해주는 채무보증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며, 일본의 DICJ(Deposit Insurance Corporation of Japan)은 위기대응계정을 통해 정상금융회사에 대한 자본확충 등을 지원하고 있다. EU는 예금보험지침에서 예금보험기금을 부실 예방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주요 유럽 국가들이 해당 규정을 국내법에 도입 중이다.

채선희 한경닷컴 기자 csun0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