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CEO 쫓겨난 폭스바겐 사태, 남의 일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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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회 절반 차지한 노동이사“수십억유로를 전기차 전환에 투입하려던 폭스바겐의 ‘설계자’가 노동조합 리더에게 축출당했다.”
'전기차 전환' 디스 회장 축출
박한신 산업부 기자
지난 23일 헤르베르트 디스 폭스바겐그룹 회장이 이사회(감독위원회) 결정으로 해임된 이유에 대해 파이낸셜타임스(FT)가 내놓은 분석이다. 그는 회사가 ‘디젤 게이트’로 추락하던 2018년 회장직에 올라 폭스바겐의 체질 개선과 전기차 전환을 진두지휘했다.절체절명의 산업 전환기에서 디스 회장은 좌고우면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 측근은 “그는 직원들 감정에 연연하지 않고 결정을 내렸다”며 “그런 접근법이 폭스바겐의 미래를 보장하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했다”고 전했다.
이 과정에서 디스 회장은 사사건건 노조와 갈등을 빚었다. “테슬라는 전기차 한 대를 만드는 데 10시간 걸리지만 폭스바겐은 30시간 걸린다” “독일에 있는 폭스바겐 근로자 30만 명 중 3만 명은 잉여 인력이다”라는 솔직한 발언도 노조의 심기를 건드렸다.
FT는 노조와의 갈등이 폭스바겐 전기차 전략의 ‘설계자’가 쫓겨난 이유라고 분석하면서 사실상 ‘노동이사제’를 그 제도적 배경으로 들었다. 약 30만 명의 근로자가 가입한 노조가 회사 이사회 20석 중 10석을 차지했고, 폭스바겐의 2대 주주인 니더작센 주정부까지 노조와 연합해 막강한 권한을 휘두르고 있다는 것이다. 독일은 민간과 공공 구분 없이 500명 이상 사업장에서는 이사회의 최소 3분의 1을 노동이사로 채우는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폭스바겐 노조는 디스 회장이 해임된 직후 성명을 내고 “모든 근로자가 앞으로도 회사 경영에 참여해야 한다”고 날을 세웠다. 하지만 외부의 시선은 다르다. FT는 “폭스바겐은 상장회사지만 이해관계가 너무 복잡하다”며 “디스 회장은 권력 브로커(power broker)들로부터 보호받지 못한 네 번째 최고경영자(CEO)”라고 꼬집었다.
현대자동차그룹 또한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자동차업계는 ‘노동이사제’는 없지만 1년 주기 임단협을 통해 노조가 경영에 사사건건 간섭하는 구조다. 현대차는 올 임단협에서 노조의 강한 압박 속에 역대 최대 수준의 기본급 인상과 성과급을 지급하기로 하고 교섭을 마무리지었다.
다음달이면 국내에도 공공기관을 시작으로 노동이사제가 도입된다. 미래와 생존보다는 ‘지금 이대로’를 외치게 될 거란 우려가 곳곳에서 나온다. “이번 폭스바겐 사태로 유럽 전기차 시장은 유럽이 아니라 해외업체가 이끌고 갈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한 증권사의 전망이 얼마 지나지 않아 국내에서도 나오는 건 아닌지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