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채연의 딜 막전막후] '몸값 2조' 美진단기기 업체…SD바이오센서가 품은 비결

김채연 증권부 기자
‘난공불락으로 평가받는 미국 체외진단 기기 시장을 뚫을 방법은 무엇일까?’

국내 체외진단기기 기업인 SD바이오센서가 미국의 진단기기 기업 머리디언바이오사이언스를 15억3200만달러(약 2조원)에 인수한 계기는 국내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SJL파트너스의 이런 단순한 의문에서 시작됐다. 머리디언바이오사이언스 인수 거래의 재무적 투자자로 참여한 SJL파트너스는 2020년 초부터 코로나 사태를 거치면서 국내 진단기기 기업들의 글로벌 성장 가능성을 내다봤다. 특히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해선 대형 인수합병(M&A)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SJL은 지난해 초부터 6개월여간 글로벌 진단기기 기업을 분석했다. 검토한 기업만 200여 곳에 이른다. SD바이오센서와 협의 끝에 인수하기로 최종 낙점한 기업이 바로 머리디언이다.

창사 이후 최대 규모 M&A

SD바이오센서와 SJL이 처음 만난 것은 1년 전인 지난해 8월 이맘때다. SJL은 SD바이오센서 측에 향후 글로벌 체외진단 사업 전망을 설명하면서 M&A를 제안했다. 조영식 SD바이오센서 회장은 이 자리에서 바로 수락했다. 20여 년간 체외진단 분야에 몸담은 학자이자 사업가인 조 회장 역시 회사의 장기 성장 방안에 대해 고민하던 때였다.

SD바이오센서는 거침이 없었다. 대형 M&A 경험은 없었지만, 해외 진출에 대한 절실함과 필요성이 회사를 빠르게 움직였다. 1976년 설립된 머리디언은 오랜 업력을 바탕으로 미국에서 탄탄한 유통망과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 역량도 보유하고 있었고, 헬리코박터균 등 소화기 감염 진단플랫폼 부문에서는 북미시장 점유율 1위였다.인수 협상은 SJL이 주도했다. SJL은 JP모간 출신인 임석정 회장을 필두로 글로벌 투자은행(IB) 경력을 보유한 전문가들로 꾸려진 운용사다. 하지만 머리디언 경영진에 SD바이오센서는 한국의 생소한 회사에 불과했다. SJL이 먼저 머리디언 측에 접촉해 SD바이오센서의 경쟁력을 설명했다.

글로벌 기업으로 안착하나

머리디언 경영진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머리디언 측은 SD바이오센서의 진단기기와 R&D 역량을 확보하면 경쟁력을 크게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머리디언 경영진은 지난 6월 SD바이오센서의 본사와 공장을 직접 둘러본 뒤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확신했다. 이후 협상은 속전속결로 진행돼 한 달 만에 계약이 체결됐다.

임 회장은 “2조원 규모에 이르는 거래를 하면서 인상 한번 찌푸린 적 없이 진행한 것은 처음이었다”며 “양사가 필요로 하는 것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진 덕분에 그야말로 모든 게 일사천리였다”고 말했다.SD바이오센서가 머리디언 경영진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SD바이오센서는 현지 사정을 잘 아는 기존 인력을 교체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대신 우수한 장비와 기술을 제공해 머리디언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이번 거래는 국내 진단기기 기업이 2조원 규모 해외 M&A를 성사시켰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국내 바이오, 제약 관련 기업의 대형 크로스보더 거래는 유독 드물었다. 반도체, 자동차 등 다른 산업군에서는 수조원대 규모의 M&A가 종종 성사됐지만, 바이오 분야 M&A는 가뭄에 콩 나듯 했다. SD바이오센서가 보유한 ‘실탄’이 충분한 데다 확실한 기술력을 보유한 덕분에 가능했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다른 국내 진단기기 업체들도 코로나19 사태 이후 신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M&A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SD바이오센서와 머리디언의 합병이 확실한 시너지를 낸다면 이 같은 움직임은 더욱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