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실 3곳 드나들며 '16 과목' 해킹…중간고사부터 유출(종합)

친구 사이인 대동고 학생 2명 외 조력자·공범은 없는 듯
문답 빼내지 못한 영어는 40점…"좋은 대학에 가고 싶었다"
울리지 않은 경보·알아채지 못한 학교…구멍난 시험 보안
광주 대동고등학교 2학년 1학기 내신시험 문답 유출 사고는 올해 중간고사부터 연이어 발생한 것으로 경찰 수사에서 드러났다. 피의자로 입건된 두 학생은 중간 7과목, 기말 9과목 등 모두 16과목의 문답을 일부분 또는 온전히 빼냈다.

학생들은 노력보다 더 우수한 성적을 얻어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자 한밤중 교무실 여러 곳에 침입해 교사 컴퓨터의 출제 작업 내용을 들여다봤다.

◇ 중간고사부터 유출…기말고사에 발각
27일 광주 서부경찰서에 업무방해 혐의로 입건 중인 대동고 2학년생 2명은 올해 4월 치러진 중간고사 직전 첫 번째 범행에 나선 것으로 조사됐다. 두 학생은 3개월 뒤 기말고사에서 똑같은 수법으로 시험 문답을 유출해냈다.

이들의 범행은 한 학생이 기말고사 때 '커닝페이퍼'를 찢어 버린 조각을 교실 안 쓰레기통에 남기면서 들통났다.

해당 학생이 배부받은 시험지 귀퉁이를 찢은 이유는 당초 알려진 내용처럼 시작종이 울리자마자 커닝페이퍼를 만들기 위한 목적이 아니었다. 그는 미리 준비한 커닝페이퍼를 몰래 소지하고 응시했는데, 시험이 끝날 때마다 쪽지를 찢어서 버리는 행동의 목적을 숨기기 위한 은폐용이었다.

다른 한 명은 문답 풀이 과정을 숙지하고 시험에 임해 별다른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경찰은 두 학생에게 성적 평가 등 학사행정을 방해한 혐의(업무방해)를 우선 적용했다. 교무실에 숨어 들어간 행위에 대해 건조물침입죄를 추가로 적용할 예정이다.

시험 문답을 빼내기 위해 교사의 노트북(랩톱) 컴퓨터에 접근한 방법을 두고는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는지도 검토 중이다.

형사 처분을 위한 해킹 성립에는 전산장애 등 조건이 필요해 법률 검토가 진행되고 있다.

경찰은 학생들 주거지에서 압수한 노트북을 디지털 포렌식 하는 등 여죄 파악에도 주력할 방침이다.

◇ 중간 7개·기말 9개 모두 16과목 유출
입건된 학생들은 중간고사 때 7과목, 기말고사 때 9과목 등 1학기 동안 모두 16개 과목의 시험 문답을 빼냈다.

이들이 빼돌린 답안으로 시험을 치른 과목은 중간고사 각각 5과목, 기말고사 때 7과목씩이었다.

학생들은 중간·기말고사에서 각자 8과목에 응시했다.

이들의 선택 과목은 달랐다.

두 학생은 교사의 노트북 화면을 악성 코드로 갈무리하고, 사진 파일로 출제 작업 내용을 빼냈다.

방대한 사진 파일을 재구성해 전체 문답을 복원한 과목 수는 기말시험에서만 최소 5과목이다.

해당 과목은 지구과학, 생명과학, 화학, 한국사, 수학Ⅱ 등이다.

두 학생은 일부 과목에서 만점을 얻었다.

경찰은 한문 과목도 전체 복원이 이뤄졌을 정황을 토대로 추가 분석 중이다.

기말고사에서 문답이 일부분만 복원된 과목은 일본어, 독서, 수학Ⅰ 등 3개이다.

중간고사에서 유출된 7개 과목의 문답 복원 범위가 전체인지 일부분인지 현재 분석이 끝나지 않았다.

해당 7개 과목은 수학Ⅰ, 수학Ⅱ, 독서, 생명과학, 한문, 일본어, 화학 등이다.

문답 유출을 피해간 과목은 영어가 유일하다.

피의자 가운데 한 학생은 기말고사 때 영어에서 40점대를 얻는 데 그쳤다.

두 학생은 각각 중간고사와 기말고사에서 큰 변화가 없는 성적을 거둔 것으로 조사됐다.

1학년 때와의 성적 변화 추이는 현재 분석이 진행 중이다.

◇ 허술하게 뚫린 시험 보안
대동고 교사들의 업무 공간은 본관과 별관 여러 곳에 분산됐다.

학생들은 각 과목 담당 교사의 자리를 미리 파악해 본관 4층과 2층, 별관 2층에 산재한 교무 공간을 순차적으로 침입했다.

본관 4층에는 2학년 교무실이, 2층에는 본 교무실이 있다.

별관 2층은 진로상담실인데 한국사 담당 교사가 중간고사 이후 이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두 학생은 교사들의 자리를 미리 파악해두고 잠기지 않은 창문을 열어 교무실 내부로 침입했다.

본관 4층 교무실은 바로 옆 공간인 소강당을 거쳐서 침입했다.

건물 외벽 돌출부를 발로 딛고, 창문 추락 방지 난간을 손잡이처럼 붙들며 침투했다.

본관과 별관의 2층은 배수통 연결부를 이용해 외부에서 곧장 침입했다.

악성 코드를 심을 때도, 자료를 회수할 때도, 중간고사 때도, 기말고사 때도 경로가 같았다.

방범·경보 설비는 학교 곳곳에 설치됐는데 한 번도 작동하지 않았다.

관리자가 수동으로 조작하는 방범·경보 설비가 작동하지 않은 경위는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

범행 장면이 녹화된 폐쇄회로(CC)TV는 없었다.

악성 코드 설치에는 노트북마다 20분가량 소요됐다.

건물 외벽까지 타며 각 교무실을 드나드는 시간을 더하면 한 차례 범행마다 3시간 안팎이 필요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학생들은 교사들이 모두 퇴근한 밤 시간대를 노려 학교까지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범행마다 오후 10시 무렵 교내 침투가 시작됐다.

정확한 일시는 추가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야간 시간대 학교에는 경비원만 남아 근무한다.

학생들은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고 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다.

경찰 수사팀이 오후 10시쯤 학교를 찾아갔을 때도 교내에 그냥 들어갈 수 있었다.

각 노트북에는 비밀번호가 걸려 있었지만, 인터넷에 널리 알려진 방법에 간단히 풀렸다.

교사들 노트북에 설치된 악성 코드는 1학기 시험 출제 기간 내내 한 차례도 발각되지 않았다.

◇ "좋은 대학에 가고 싶었다"
경찰이 파악하기로 친구 사이인 두 학생은 올해 1월부터 범행 모의를 시작했다.

범행은 피의자 가운데 '해커' 역할을 했던 한 명이 주도했다.

이 학생은 능숙한 코딩 실력으로 공개 자료에 맞춤형 기능을 더해 범행 도구인 악성 코드를 완성했다.

범행을 아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노출 위험은 커지기 때문에 문답을 공유한 동급생이 더는 없을 것으로 경찰은 추론하고 있다.

두 학생에게 조언이나 도움을 준 조력자 또한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았다.

학생들은 1학년 때 일정 수준 이상의 성적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가족들은 압수수색 영장의 발부 근거, 동급생들이 교실 쓰레기통에서 찾아낸 커닝페이퍼 내용 등을 경찰로부터 전해 듣고 두 학생에게 사실을 진술하도록 설득했다.

학생들은 모두 경찰에서 범행을 시인했다.

이들은 "좋은 대학에 가고 싶었다"고 범행 동기를 진술했다.

특정 대학, 특정 학과에 진학하고 싶었다는 진술도 경찰은 확보했다.

◇ 학교 담당자 형사처분은 피할 듯
경찰은 학교의 허술한 시험 보안과 부실한 관리를 두고 교육 당국의 감사를 통해 보완해야 한다고 분석하고 있다.

청탁이나 금품거래 등은 없었던 것으로 보여 관련 실무자를 형사 처분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한다.

광주시교육청은 대동고에서 4년 만에 재발한 내신시험 문답 유출 사고를 계기로 시험 보안 관리 대책을 추가로 마련했다.

교사들이 퇴근할 때 교무실 책상에 노트북을 방치하지 않고 반드시 캐비닛에 보관하도록 했다.

노트북을 보관한 캐비닛은 반드시 잠금장치를 해야 한다.

교무실 출입구와 창문도 퇴근할 때 완전히 잠가 외부인 출입을 차단해야 한다.

광주 교사노조 관계자는 "시 교육청은 지난주 초 사건을 인지했으면서도 쉬쉬했는데, 언론보도가 나오고 곧바로 경찰이 수사에 박차를 가하면서 범행 전모가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교육 당국은 공정에 기반해 내신 관리가 철저히 이뤄질 수 있는 자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