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선 8기 한 달… 전임 주요 사업 폐기·재검토 잇따라

강원 정선포럼·충북 무예마스터십 등 여럿 제동
실효의문사업 비정상추진 안돼! vs 행정연속성은? 예산손실은? 논쟁도

민선 8기 출범 한 달을 맞는 지방자치단체들이 전임 집행부가 추진하던 대형 사업을 폐기하거나 재검토하는 사례가 잇따른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이뤄진 대대적인 권력 교체에 따라 자연스레 예견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하지만 해당 사업의 실효성이 약하고 절차에도 문제가 있기에 불가피한 결정이라는 8기 집행부의 판단과, 행정 연속성을 무시한 처사로 민생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사업 뒤집기라는 직전 권력의 견해는 엇갈린다.

신구 지방권력 간 힘겨루기와 정책 논쟁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 "예산 손실 감수하더라도…" 사업 중단 속출
29일 전국 지자체 등에 따르면 강원도는 다음 달 24일 개최 예정인 '정선포럼 2022'를 취소하고, 사업비를 회수 중이다.

정선포럼 사업비는 강원도가 8억 원, 정선군이 2억 원을 분담했다.

앞서 김진태(국민의힘) 강원지사는 당선 직후 "도민의 혈세가 줄줄 새는 것을 막겠다"며 일회성·선심성 행사 등에 대한 대수술을 예고한 바 있다.
정선포럼은 2017년 최문순(더불어민주당) 전 지사가 뉴욕 유엔본부에서 '지구와 인류의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국제사회 의제를 선도하기 위한 약속이행 선포를 통해 시작했고, 2018평창동계올림픽 유산 사업의 하나로 그 명맥을 이어왔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올림픽의 평화 정신을 계승한 사업의 의미를 고려할 때 일방적인 중단 결정이라며, '전임자 흔적지우기' 아니냐는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강원도 관계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포럼을 제대로 개최하지 못하는 등 실효성 문제가 제기돼 취소하기로 한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김영환(국민의힘) 충북지사는 지난 25일 간부회의에서 전임 이시종(민주당) 지사의 핵심 사업이었던 '세계무예마스터십 정책'의 중단을 선언했다.

충주시장 시절부터 택견 등 '전통무예 전도사'로 불린 이 전 지사는 2017년 청주에 사단법인 세계무예마스터십위원회(WMC)를 창설, 2016년(청주)과 2019년(충주) 세계무예마스터십을 개최했다.

그러나 김 지사는 "도의 재정 능력이나 도민 공감이 부족한 상황을 고려할 때 무예마스터십을 이끌어가기 힘들다"며 예산과 인력 지원 중단을 지시했다.

이를 두고 유네스코 상임자문기구 승인, 국제경기연맹총연합회(GAISF) 회원 가입 등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기구를 공론화 과정 없이 없애려 한다는 비판적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 전 지사가 충주시장 시절 창설한 충주세계무술축제도 '멈춤'의 운명을 피하지 못했다.

조길형(국민의힘) 충주시장은 김 지사와 비슷한 이유로 이 행사를 더는 열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국비 등 340억 원이 투입되는 전통무예진흥원 건립도 중단하기로 했다.

무예진흥원은 지난해 건축설계가 발주된 상태이기에 설계비 18억2천만 원은 자칫 매몰비용이 될 수 있다.

민주당에서 국민의힘 도지사로 바뀐 충남도 역시 서해선 철도 삽교역(가칭) 건설이 중단될 기로에 섰다.

김태흠 지사는 "국가가 해야 할 철로와 역사 건설에 왜 지방비를 투입하느냐"며 전임 양승조(민주당) 지사가 추진한 이 사업에 제동을 걸었다.

충남도와 예산군이 271억 원을 분담해 2026년까지 계획됐던 삽교역 건설 사업은 김 지사의 이런 입장에 따라 재검토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김 지사는 "내가 앞장서서 국토교통부 장관이나 국가철도공단 이사장을 만나 해결하겠다"며 역사 건설을 국비로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혀 결과가 주목된다.

이밖에 경기 고양시와 인천 미추홀구의 신청사 건립, 광주시의 '자치구 간 경계 조정', 울산시의 '부울경 특별연합' 출범 등도 단체장이 바뀐 이후 사업이 중단되거나 재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 "비정상적 사업 추진…수사·감사 해주세요"
사업 중단을 넘어 절차상 문제를 바로잡겠다며 감사나 수사를 선택하는 지자체도 있다.

신상진(국민의힘) 경기 성남시장은 인수위 시절부터 '시정 정상화 특별위원회'를 운영하며 전임 행정을 겨눴다.

이 특위는 지난달 14일부터 37일간 활동하면서 전임 이재명·은수미(이상 민주당) 시장의 행정행위 중 부적절하다고 의심되는 20건을 확인했다며 2건을 고발, 4건을 수사 의뢰 했다.

고발 사안 중 1건은 지난 대선 정국을 강타한 '대장동' 관련이다.

특위는 "이재명 전 시장이 민간에 부당한 이익이 돌아갈 것을 알고 있었거나 시장으로서의 마땅한 주의 의무를 해태한 채 대장동 실시계획 인가 등의 절차에 법률을 위반, 민간의 이익을 보장해줬다"고 주장했다.

오영훈(민주당) 제주지사도 원희룡(국민의힘) 전 지사의 굵직한 사업에 잇따라 브레이크를 걸면서 '오등봉공원 민간특례사업'을 놓고는 절차적 위법성을 가려내겠다며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제주도는 이 사업의 재추진 이유를 포함한 업무 전반에 대해 위법성 여부 등을 살펴달라고 요청했다.
최경식 전북 남원시장은 같은 민주당 소속 이환주 전 시장이 역점을 두고 추진한 '남원관광지 민간개발사업'에 대해 전방위 감사를 지시했다.

이 사업은 383억 원을 들여 남원 광한루원 맞은편의 함파우관광지에 모노레일과 집와이어(zipwire) 등을 설치하는 것이다.

최 시장은 사업비가 과다 책정됐고, 민간사업자와 계약 조건도 불리해 상당한 재정부담을 떠안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로 인해 지난달 말 예정됐던 개장식은 연기됐고, 감사 결과에 따라 후폭풍이 적잖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단체장의 정치 철학 등에 따라 행정 방향이 바뀌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거라 짚는다.

다만, 재정 형편과 행정 연속성 등을 두루 고려하며 사업에 관해 판단해야 한다고도 조언한다.

최영출 충북대 행정학과 교수는 "전임자의 실정을 바로잡고 변화한 행정 환경에 맞춰가는 과정은 필요하지만, 흑백논리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며 "무엇보다 주민생활에 도움이 되는지를 정책 판단의 기준으로 두고, 폐지·유지·확대를 결정하는 신중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성식 김동철 손상원 우영식 이은파 이해용 전창해 최은지 최종호 허광무)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