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지키는 완벽한 '속임수', 대체육 이야기 [긱스]

김태호의 테크큐레이션
요즘 벤처투자업계에서 가장 핫한 영역 중 하나가 대체육, 배양육 분야입니다.
다나그린, 스페이스에프, 이노하스, 씨위드 등 다양한 대체육, 배양육 기업들이 최근 1년간 투자 받았습니다. 대기업들도 잇따라 이 분야에 진출하고 있죠.
대체육과 배양육은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왜 기업들과 투자업계는 이 시장을 주목하고 있을까요. 김태호 유비쿼스인베스트먼트 투자본부 팀장이 한경 긱스(Geeks)를 통해 자세히 설명합니다.
‘트롱프뢰유(trompe-l'oeil)’는 눈속임 그림을 일컫는 프랑스어입니다. 너무 생생하게 묘사돼 마치 실물을 보는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그림을 말하죠. 이 단어는 요리에서도 종종 사용됩니다. 과학적인 조리법을 활용해 식재료에 다양한 변화를 주는 ‘분자미식학’의 주요 기법의 하나입니다. 트롱프뢰유가 적용된 대표적인 음식이 ‘가짜캐비어’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철갑상어의 알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해조류에서 나오는 알긴산나트륨을 이용해 톡 터지는 식감을 흉내 낸 음식입니다.속임수는 나쁘지만, 트롱프뢰유는 좀 다릅니다. 가짜캐비어는 진짜 캐비어에 비해 값이 싸고, 먹는 재미가 있죠. 여기에 멸종위기의 철갑상어 생명까지 보호할 수 있으니 여러모로 ‘착한 속임수’라 할 수 있습니다.

한발 더 나아가 지금 글로벌 시장에서는 우리의 식습관 자체를 바꿀 거대한 ‘트롱프뢰유’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바로 대체육 기술입니다. 대체육은 진짜 고기는 아니지만 이와 비슷한 맛을 내거나, 식감을 구현하는 대체식품을 말합니다. 환경오염과 산림파괴 등을 유발하는 기존 축산업을 대체하기 위해 주목받기 시작했고, 현재는 기술의 발전과 함께 점점 완벽한 ‘속임수’를 구현하며 빠르게 육류시장을 대체하고 있습니다. 2030년이면 세계 육류 소비시장의 28%를 이 대체육이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어디까지가 대체육일까?


싱가포르 식품청은 대체육을 ‘통제된 조건에서 자란 식물, 배양육과 같은 동물 이외의 공급원에서 파생된 육류’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명확한 법적 정의는 없지만,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대체육의 종류를 크게 식물성 고기, 식용곤충, 배양육 등 3가지로 분류됩니다.

식물성 고기는 우리가 흔히 접해본 ‘콩고기’를 포함합니다. 식물, 해조류, 미생물 등에서 추출한 식물 단백질 성분을 이용해 만드는 고기입니다. 식용곤충은 영화 ‘설국열차’를 떠올리면 좋습니다. 영화 속에서 맨 뒤 꼬리 칸 사람들이 먹는 양갱 형태의 단백질 덩어리같이 식용이 가능한 곤충으로 만드는 단백질 대체 식품을 말합니다. 다소 혐오감이 있지만, 현재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제품도 있습니다.

배양육은 실제 동물의 세포를 키워서 얻는 고기를 말합니다. 돼지나 소를 죽이지 않고도 세포만 추출해 만들어내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값비싼 부위만 계속해서 만들어낼 수도 있습니다. 실제 동물 세포를 키워서 만든 육질이기 때문에 고기의 풍미도 가장 잘 살릴 수 있습니다.글로벌 컨설팅 업체인 에이티커니(AT Kearney)는 세계 육류 소비 시장에서 배양육과 식물성 고기가 차지하는 비중을 2025년 10%, 2030년 28%, 2040년에는 60%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재밌는 것은 2025년을 기준으로는 식물성 대체육이 대체육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면서 성장하지만 2030년을 기점으로 배양육 시장이 빠르게 커진다는 점입니다. 특히 2040년의 경우 배양육의 비중은 전체 육류 소비 시장의 35%를 차지합니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약 6300억달러(한화 약 820조원) 시장입니다.


채식 열풍 타고 성장하는 식물성 대체육


전망치가 보여주는 것과 같이 식물성 대체육 시장은 현재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입니다. 식물성 대체육은 주로 대두단백질을 활용해 고기의 식감을 구현합니다. 식물성 대체육 시장의 성장은 채식 인구의 증가와 관련이 깊습니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육식에 대한 환경 관련 문제를 제기하는 비건(began) 인구가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죠. 이들에게 식물성 대체육은 좋은 단백질 보충 식품입니다.

실제 많은 스타트업이 등장했고,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대표주자는 미국의 비욘드미트와 임파서블 푸드입니다. 비욘드미트의 경우 나스닥 상장 이후 전 세계로 제품 판매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대표적 제품은 햄버거용 패티입니다. 비욘드미트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 중인 임파서블 푸드 역시 자체 기술로 생산된 햄버거용 패티를 전 세계 유통망을 통해 공급 중입니다.이들 기업은 채식 시장을 공략하면서, 기존의 육식주의자들의 시장까지 넘보고 있습니다. 고기 맛과 식감을 보다 현실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기술들이 지속해서 연구개발하고 있죠. 비욘드미트는 코코넛오일 등을 활용해 고기의 질감과 육즙을 구현해내고 있습니다. 임파서블 푸드는 진짜 육즙 있는 고기 맛에 도전합니다. 고기 맛을 내는 핵심 성분인 헤모글로빈 속 헴(hem) 성분을 콩의 뿌리에서 추출해 활용하고 있습니다.

진짜 고기를 대체할 배양육


배양육은 진짜 육류의 완벽한 ‘트롱프뢰유’라 할 수 있습니다. 실제 동물에서 채취한 세포로 만든 고기이기 때문이죠. 이 기술이 완벽해지면, 실제 고기와 배양육을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해질 수도 있습니다.

‘실험실에서 고기를 키운다’는 배양육에 대한 생각은 그동안 공상과학영화에서나 가능한 일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매우 오래전부터 연구되어온 기술입니다. 배양육에 대한 아이디어는 무려 100년 전에도 나왔습니다. 1932년 윈스턴 처칠은 ‘50년 뒤의 세계’라는 글에서 “50년 뒤 우리는 닭을 통째로 기르는 바보 같은 짓을 할 필요 없이 적절한 도구로 각 부위(날개살이나 가슴살)를 키워낼 수 있을 것”이라고 예견한 바 있죠.

약 70년이 지난 1999년 네덜란드에서 동물 조직을 통째로 채취한 다음 근육을 키우는 실험이 성공합니다. 그렇게 ‘배양육’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상용화까지는 꽤 시간이 걸리고 있습니다. 배양육 상용화까지 거쳐야 할 걸림돌이 매우 많기 때문입니다. 배양육 생산단계는 ▲초기 세포(스타터 세포) 추출 ▲배양액 및 성장 혈청첨가 ▲지지체 부착 등 크게 3단계로 분류됩니다. 단계별로 기술적 허들이 대단히 높습니다. 스타터 세포 추출 단계에서는 세포주를 형성하는 양질의 스타터 세포를 확보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여기에 상당한 노하우가 필요하고 데이터가 필요합니다. 현재는 효율을 높이기 위해 유전자 편집 기술이 활용되는 경우도 많은데, 상용화 단계에서는 극복해야 할 과제입니다.

세포가 잘 자랄 수 있도록 배양액과 성장 혈청을 첨가하는 단계 역시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엄청난 비용이 투입됩니다. 현재 소고기 1kg을 생산하는데 배양액 비용만 약 40만원이 들어갑니다. 성장 혈청은 소의 태아 혈청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동물을 죽이지 않기 위해 배양육을 개발하는데, 소의 태아 혈청이 들어가니 윤리적인 문제가 발생합니다. 역시 기술로 극복해야 할 과제입니다.

지지체 부착 단계는 성장한 세포를 진짜 고기로 만들어주는 단계입니다. 지지체를 기반으로 세포가 근섬유를 형성하고 고기의 모양으로 성장하는 것이죠. 지지체 역시 다양한 기술들이 활용되고 있지만, 식품에 사용될 만큼 안정적이고 독성이 없는 물질의 지지체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게다가 지지체 가격 역시 현재는 비싼 편입니다.

이런 기술적 어려움과 활용되는 재료의 가격으로 인해 2010년대 초반 배양육 햄버거 패티 1장의 가격은 무려 4억원에 달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제품화가 가능한 배양육이 나오기 위해서는 기술적 한계를 극복하면서 가격도 대폭 낮춰야 합니다.


배양육은 어디까지 와있나?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배양육 기술은 생각보다 빠르게 진화하고 있습니다. 현재 수많은 글로벌 스타트업들이 연구개발을 진행 중입니다. 도전하고 있는 고기의 종류도 매우 다양합니다. 미국의 잇저스트(Eat Just)는 닭을, 네덜란드의 모사미트(Mosa Meat)는 소를, 호주의 보우푸드(VOW Food)는 캥거루와 같은 육류 생산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육류뿐 아니라 해산물 배양육에 대한 시도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싱가포르의 시옥미트(Shiok Meats)는 새우와 같은 갑각류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수산 배양육 개발업체인 블루날루도 참치배양육을 선보인 바 있습니다.

국내 스타트업의 활동도 활발합니다. 팡세, 다나그린, 스페이스에프, 씨위드, 셀미트와 같은 기업들이 현재 대기업과 벤처캐피털의 투자유치를 받아 배양육 상용화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이들 기업은 배양육 상용화에 허들이 되는 요소들을 국산화 기술 개발로 헤쳐 나가고 있습니다. 자체 지지체 기술과 배양액 생산으로 기존의 높은 단가를 낮추고, 소의 태아 혈청을 대체제를 찾거나 무혈청 배지를 활용하는 기술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현재 국내 스타트업들이 생산하는 배양육 1kg의 가격은 100만원 수준으로 10년 전과 대비하면 상당히 줄어들어 있습니다. 내년에는 1kg의 가격이 10만원 아래로 떨어질 수 있다고 하니, 곧 시중에서 배양육이 들어간 제품을 맛볼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우리가 생각하는 수준의 삼겹살이나 토마호크 형태로 나오려면 아직도 오랜 시간이 남았다는 평가입니다. 지방이 적절하게 포함된 마블링 있는 고기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또 한 번의 기술적 혁신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햄버거 패티나, 만두소 등 첨가재료에서 기존의 고기를 일부 대체하는 수준의 상용화는 머지않았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육류 소비시장은 워낙 큰 시장이라 첨가물에 들어가는 육류사용량을 일부만 대체해도 엄청난 온실가스 저감 효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지구를 위한 완벽한 육식


“소고기는 불에 탄 산림, 침식된 방목지, 황폐해진 경작지, 말라붙은 강을 희생시키고 수백만톤의 이산화탄소, 메탄을 허공에 배출시킨 결과물이다”

미래학자인 제러미 리프킨이 저서인 ‘육식의 종말’에 서술한 이야기입니다. 현재 소고기 1kg 생산을 위해서는 물 628리터와 밀 24kg이 들어갑니다. 지구상에 빙하가 없는 땅 56%가 현재 공장식 가축을 위해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 땅의 70%는 산림파괴로 만들어진 목초지입니다. 그리고 전 세계의 소는 매년 1억8000만톤의 메탄가스를 배출합니다.

사람들의 육류 소비는 지금껏 단 한 번도 줄어든 적이 없습니다.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1960년 이후 전 세계 인구가 2배 늘어날 동안 동물 생산량의 소비는 5배 증가했습니다. 국내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의 1인당 소고기 소비는 2005년~2020년 사이 6.0kg에서 11.9kg으로 2배 증가했습니다. 중국은 물론 개발도상국에서 증가하는 육류 소비를 감안하면 앞으로 지구상에는 더 많은 고기가 필요합니다.채식 인구가 늘어나고는 있지만, 한 번 맛본 고기를 더 이상 환경을 위해 먹지 말라는 것은 매우 잔인한 일이겠죠. 어떻게 보면 육류의 ‘트롱프뢰유’는 모두를 위해 필수불가결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짧은 미래에 우리의 식탁에는 어떤 음식들이 올라오게 될까요. 기술이 바꿔 가는 미래 식탁이 사람에게도 자연에도 모두 이로우면 좋겠습니다.
김태호 | 유비쿼스인베스트먼트 투자본부 팀장
신기술사업금융전문회사인 유비쿼스인베스트먼트에서 스타트업 투자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산업 영역에서 일어나는 혁신을 관찰하고, 이를 주도하는 스타트업을 발굴해 성장 마중물을 공급합니다. 그래서 매일 스타트업을 만나 혁신적인 트렌드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일이 즐겁습니다. 한국경제신문에서는 벤처캐피털의 투자와 스타트업의 성장 스토리에 대한 기사를 썼습니다. 여러 경험에서 쌓은 넓고 얕은 지식이지만 스타트업 성장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기위해 매일 노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