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이 화장품 바르고 청소기 돌리고…'우영우'엔 없는 이유 [연계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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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의 연계소문]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하 '우영우')'가 신드롬급 인기를 자랑하고 있다. ENA라는 이름마저 생소한 채널에서 선보이고 있는 이 드라마는 시청률이 첫 회 0.9%였으나 최근 15%를 돌파, 무려 15배나 급등했다. 넷플릭스에서도 TV 프로그램 부문 세계 3위까지 오르며 글로벌 영향력을 과시했다.
연(예)계 소문과 이슈 집중 분석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시청률 고공행진
생소한 채널 ENA에서 15% 달성 '기적'
흥행 이끈 '3無 전략'
무리한 PPL·억대 몸값 스타·악역 없어
현재 일일 드라마를 제외하고 지상파, 종합편성채널, tvN 등에서 방송되고 있는 드라마가 전부 한 자릿수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이는 기적에 가깝다. 특히 tvN을 제외하면 킬링 콘텐츠 불모지라 여겨지는 케이블 채널에서 나온 기적이라 그야말로 '개천에서 용이 난' 사례다.
◆ 돈 걱정 없는 제작 환경…무리한 PPL, 없다
억지스러운 PPL(간접광고)이 없다는 건 '우영우'의 최대 강점으로 꼽힌다. 우영우가 늘 착용하는 헤드셋, 가방, 신발 심지어 변호사 사무실 책상까지 브랜드를 한눈에 알아차리기 어렵다. 현재 박은빈은 정관장 홍삼정 에브리타임 모델로 활약 중이지만, 우영우는 그 흔한 홍삼 한번 먹지 않는다.드라마나 영화 제작사는 광고주로부터 비용을 지원받아 제작비를 충당하고, 해당 브랜드의 제품을 작품에 노출해 간접적으로 홍보해준다. PPL을 많이 끌어올수록 제작비 부담은 줄어들지만, 반대로 연출 부담은 커진다. 광고 상품을 스토리 전개에 방해되지 않도록 배치하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닌데, 광고주들의 요구 사항까지 날로 깐깐해지기 때문이다.
결국 배우들이 대놓고 상표가 붙은 음료를 마시거나, 뜬금없이 청소기를 돌리고, 화장품을 바르는 모습이 클로즈업되기도 한다. 어색하게 끼워서 맞춰진 PPL에 몰입을 방해받은 시청자들의 피로감은 날로 늘어가지만, 그럴 때마다 한결같이 "제작비를 메꿔야 하니까"라는 하소연만 돌아올 뿐 해결책은 나오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고퀄리티 작품을 만들려면 고액의 제작비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PPL이 많아진다는 악순환이 계속됐다.하지만, '우영우'는 이 고리를 제대로 끊었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가 지난해 4월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16부작 기준 방송사 드라마의 제작비 규모는 100억에서 130억원 정도인데, 우영우의 제작비는 이보다 높은 약 200억원으로 알려졌다.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한 직관적이고 과감한 투자는 광고 압박을 낮췄고, 한국 드라마 제작 환경의 한계에서 벗어나 차별화에 성공했다.
이에 '작품 우선주의'가 통했다는 평가가 따른다. '우영우'는 에이스토리와 KT의 콘텐츠 관련 지주사인 KT스튜디오지니가 제작했다. KT는 지난해 3조6000억원이었던 미디어 매출을 2025년까지 5조원으로 끌어올리겠다고 선언했고,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공을 들였다. ENA는 KT그룹의 다중방송채널사용사업자(MPP)인 스카이TV의 메인 채널로, 향후 3년간 콘텐츠 제작 및 수급에 총 5000억 원 이상을 투자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 연기력에 기인한 캐스팅…'헉'소리 나는 출연료, 없다
제작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건 배우의 출연료다. 콘텐츠 업계에서는 톱스타 기용을 작품의 경쟁력으로 내세우는 경우가 많았다.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시장이 커지고, 오리지널 콘텐츠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면서 한류 배우의 영향력은 더욱 중요해졌다. 하지만 한정된 제작비 안에서 천정부지로 솟은 배우들의 몸값을 배제하면 사실상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많았다.반면 '우영우'는 한류스타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은 작품이다. 사실상 박은빈을 제외하면 주연 라인업인 강태오, 강기영은 물론, 변호사 동료들로 나오는 하윤경, 주종혁까지 전부 신선한 얼굴들이다. 박은빈 또한 '우영우' 전까지는 회당 출연료가 1억 원 이하였으나, 이번 드라마를 통해서야 몸값이 억대가 된 것으로 전해졌다.
연기력에 기인한 캐스팅은 신의 한 수로 꼽힌다. '우영우'를 연출한 유인식 감독은 박은빈만을 고집, 자폐스펙트럼 연기에 부담을 느껴 한 차례 거절 의사를 밝힌 그를 1년이나 기다렸다. 유 감독은 "우영우라는 역할을 할 수 있는 배우가 많지 않았다. '(박은빈이) 하지 않으면 프로젝트가 가기 어렵지 않나'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했다. 스타성보다는 배역을 완벽하게 소화해낼 수 있는 배우라는 점에 초점을 맞춰 작품 본연의 색깔을 최대한 살려내는 방향을 우선으로 고려한 셈이다.
◆ 사회적 갈등·편견 좁히는 메시지의 힘…빌런, 없다
무엇보다 강력한 '우영우'의 매력은 드라마가 가진 메시지의 힘이다. '우영우' 시청자 류모(33)씨는 "예전엔 지하철에서 발달장애를 지닌 사람을 보면 덜컥 피하고 싶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괜스레 반갑고 친근한 마음이 들더라. 나도 모르게 내 안에 편견이 있었다는 걸 깨달았고, 또 그게 드라마를 통해 사라지고 있다고 느껴져 뭉클했다"고 전했다.그간 '우영우'에서는 발달장애는 물론, 성 소수자, 탈북민까지 다양한 인물과 스토리로 우리 사회가 지닌 편견에 접근했다. 치매 노인, 영세업자, 어린이 등 이른바 사회적 약자로 분류되는 이들의 사연은 마냥 웃으며 볼 수만은 없었다. 갈등을 좁혀나가는 과정에서 각각의 캐릭터들과 함께 성장해나가는 느낌을 받는 건 이 드라마의 핵심이다. 이분법적 사고가 만연해진 '갈등의 시대'에서 우영우가 주는 울림은 더욱 크다. 장애인의 사랑과 주체적 권리, 이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다룬 가장 최근의 에피소드는 여러 감상을 들게 했다.
'우영우'에는 악역, 즉 '빌런'이 없는데 이는 캐릭터를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퇴색되지 않길 바라는 작가의 의도가 반영된 결과다. 이와 관련해 '우영우'를 집필한 문지원 작가는 "사실 가장 큰 어려움은 우영우가 가진 자폐 그 자체, 거기서 생겨난 편견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특별히 도드라지는 악당을 설정하지 않았다"고 밝혔다.문 작가는 "박은빈 배우에 의해 훌륭하게 연기된 우영우라는 캐릭터를 많은 분이 예뻐해 주고 사랑해주는 것도 맞지만, 자폐로 인해 생긴 여러 어려움이나 어두운 부분 또한 보여주려고 했다. 다만, 그 방식을 고민했다"며 "자폐인에게 상처를 주게 될까 봐 농도에 대해 고민하고 글을 썼다"고 전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