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스타코비치의 왈츠 2번'…슬픔·그리움·애잔함으로 그려낸 첫사랑 [김희경의 영화로운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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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승 감독 '번지점프를 하다'
대학시절 첫사랑이 들려준 왈츠
다층적인 감정 겹겹이 담아내
쇼스타코비치의 젊은시절 작품
자유분방한 그의 스타일 잘 드러나
이후 스탈린이 검열·통제 시작하자
체제 선전용 영화음악 만들기도
김대승 감독의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2000·사진)에 나오는 장면이다. 배경 음악은 러시아 출신 음악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1906~1975)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모음곡’ 중 ‘왈츠 2번’. 태희의 콧노래에 맞춰 음악이 흐르고, 노을 아래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함께 춤을 춘다. 20여 년이 흐른 지금도 많은 사람이 기억하는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와 같은 장면이다.영화 덕분에 이 음악도 국내에서 떴다. 첫 부분은 우아하면서도 경쾌하다. 그러다가 슬픔, 그리움, 애잔함 등으로 갈아탄다. 한 작품에 놀라울 만큼 다층적인 감정을 겹겹이 담아냈다. 영화 속 장면과도 잘 어울린다. 인우는 이 음악을 듣고 첫사랑 태희를 떠올리며 그리워한다.
이후 쇼스타코비치가 보여준 행보는 많은 논란을 낳았다. 정책홍보 영화음악 등 스탈린 선전용 작품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에 “스탈린의 독재를 앞장서 도왔다”는 꼬리표가 달린 이유다. 일각에선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한 것” “자신의 음악에 교묘하게 체제 비판 의식을 담았다”며 쇼스타코비치를 옹호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의 과오가 희석되지는 않는다.
쇼스타코비치가 젊은 시절 했던 ‘과감한 도전’을 스탈린 체제가 들어선 뒤에도 계속 이어갔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그랬다면 ‘훌륭한 음악가’를 넘어 ‘최고의 음악가이자 행동하는 지성’으로 추앙받았을 것이다. 예술과 정치 사이에서 고민하는 이 땅의 예술가들에게 쇼스타코비치는 어떤 말을 들려주고 싶을까.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