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 대책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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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윤 < 한국외대 명예교수·前 한일경제협회 부회장 >최근 한국 중소기업 경영구조의 취약성으로 인해 제기된 세 가지 이슈가 주목받고 있다.
첫 번째, 조선 산업이 그간의 침체상태에서 벗어나 새로운 수요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협력사인 중소기업들이 생산에 필요한 근로자들을 확보하지 못해 생산 활동에 큰 차질을 빚고 있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조선업 협력사에 국한되지 않는다. 중소 제조업 전반에 걸쳐 미충원 인력이 16만명을 넘을 정도로 심각한 구인난에 직면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된 이유는 근로 인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근로자들의 중소기업 취업에 대한 동기 유발에 실패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두 번째는, 이번에 크게 문제가 된 대우조선해양 하도급 업체 노동조합에 의해 야기된 극단적 방식의 노동 분규다. 투쟁의 대상이 교섭당사자인 하도급 업체가 아닌 원청 기업을 상대로 했다는 점에서 합리성이 결여된 것이지만, 하청 업체의 취약한 경쟁력과 열악한 근로조건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중소기업계의 공통적인 취약성을 드러냈다고 하겠다.
세 번째, 한국 중소기업이 생산하는 부품·소재 산업에서 어느새 대중국 우위 구조가 깨지고 이제는 중국 제품이 국내 시장에 침투해 들어와 시장 점유율을 높여 대중 무역적자로 전환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현상들이 야기된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한국 중소기업의 경쟁력 약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간 중소벤처기업부 및 중소기업진흥공단 등을 중심으로 중소기업 육성을 위한 많은 노력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왜 여전히 취약구조를 못 벗어나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첫째,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비해 약한 존재라는 점에만 주목해 지나친 보호 정책에만 급급했다. 여러 형태로 중소기업에 유리한 금융 지원을 하고 중소기업 고유 분야를 지정해 이들 분야에는 대기업 참여를 배제하는 등의 정책 환경을 조성해 왔다. 정책이 규정한 중소기업 범주를 넘어서면 기존 혜택을 못 받기 때문에, 중소기업들이 경쟁을 통해 체질을 개선하고 사업 규모를 키우지 못한 측면이 있다.
둘째, 하청 중소기업이 원청 기업과의 긴밀한 협력적 발전 관계를 형성하지 못했다. 일본의 경우 기술이나 경영 노하우, 나아가 자금 지원에서 원청 기업이 가진 우월한 요소를 중소기업이 충분히 활용하고 있는 데 반해 한국 중소기업은 그러한 발전 기회를 갖지 못했다.
셋째, 원청 기업과의 협력 관계가 약한 만큼 수주 대금 책정에 있어서도 교섭력이 강한 원청 기업에 유리하게 결정돼 하청 중소기업으로서는 종업원의 임금 수준을 낮게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은 원청 대기업 근로자 대비 하청 중소기업 근로자의 임금비율이 대략 1.2대 1 정도, 구미 선진국의 경우도 1.6~1.7대 1 정도인 데 비해 한국은 2대 1로 중소기업의 임금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일본 대졸자들이 중소기업 취업을 크게 꺼리지 않는 데 비해 한국의 경우엔 취업을 못한 젊은이들이 많지만 중소기업 취업을 꺼리고 있다. 이에 따라 중소기업의 우수인력 확보가 어려워지고 인력이 모자라 중소기업 발전 저해 요인이 되고 있다.그렇다면 어떻게 헤야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지금까지와 같은 보호 일변도 정책을 지양하고 철저하게 경쟁해 살아남는 기업을 더 지원해주는 방향으로 정책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 경쟁력이 약한 기업은 탈락할 것이고, 이들 탈락한 기업을 경쟁력이 강한 기업이 흡수·합병하도록 유도하면 된다. 그렇게 하면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은 대규모화하고 나아가 중견기업으로 성장해갈 것이다. 중소기업의 대규모화는 규모의 경제, 범위의 경제를 실현할 뿐 아니라 보다 강화된 자금력을 바탕으로 보다 능률적 생산을 위한 디지털화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중소기업의 대규모화나 중견기업화는 우수인력 채용으로도 이어져 그만큼 경쟁력이 더욱 강해질 것이다.
둘째, 원청 대기업과의 협력 관계를 강화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원청 대기업이 가진 기술력·경영력·자본력을 원청 기업 경쟁력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하청 중소기업이 활용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하청 중소기업의 경쟁력이 높아지면 그만큼 원청 기업의 경쟁력 강화로도 이어질 것이다.셋째, 원청 대기업과 하청 중소기업 간 납품 단가 결정에 정책 당국이 적절히 개입해야 한다. 물론 납품단가 결정은 원칙적으로 양자 간 협상으로 정해질 사안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원청 기업의 높은 교섭력에 입각한 일방적 결정으로 인해 중소기업 근로자의 임금 수준이 낮아지고 결과적으로 한국 중소기업의 대외 경쟁력이 약화됐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하청 중소기업 근로자의 지나친 저임금은 적절한 수준까지 상향 조정돼야 한다.
이같은 방법을 통해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임금 수준을 높이면 더 많은 대졸자들이 중소기업 취업을 선택하는 환경이 조성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인적 자본의 생산적 활용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한국경제가 유엔에서도 인정할 정도로 선진 경제화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중소기업의 취약성과 중소기업 근로자의 상대적 저임금은 상술한 바와 같은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켰고 경제적·사회적 불안을 야기했다. 한국경제의 안정적 발전을 위해선 결코 이대로 방치할 수 없는 사안이다. 중소기업 근로자의 적정 임금 실현 및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가 시급히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