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PRO] "네·카 대신 구글 사라"…큰 손 고수가 변심한 이유

블라인드 인터뷰
"낙폭이 과도한 건 맞지만 앞으로 네이버와 카카오가 성장성을 보여줄지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지금 성장주에 투자를 할 거라면 차라리 구글에 투자해보세요"
사진=뉴스1
최근 한 자산운용사 대표 A씨는 기자에게 이같이 말했다. 평소 국내 대표 성장주인 네이버, 카카오를 선호하던 그가 변심한 이유가 궁금해졌다. 물론 여전히 그는 자신의 포트폴리오에 두 종목을 담고 있다. 얼마 전엔 금리 인상 직격탄을 맞아 하염없이 추락하던 네이버와 카카오를 소액이지만 추가로 매수하기도 했다. 낙폭이 과도한 만큼 반등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판단에서다.

그럼에도 차라리 해외로 눈을 돌려 구글에 투자할 것을 권했다. 연말께 성장주에 반등의 기회가 찾아오면 네이버와 카카오를 정리할 생각이라고도 귀띔했다. 그의 변심 이유를 정리했다. (물론 A대표가 고객 자금으로 운용하는 펀드에는 네이버, 카카오 이외에 여러 종목이 담겨있다. 다만 두 종목의 등락에 따라 펀드 수익률이 좌우될 수 있는 만큼 그의 의견은 '블라인드 인터뷰'를 통해 익명으로 전한다.)

8년 만에 가장 낮은 PER

A대표가 구글을 추천한 첫 번째 이유는 매력적인 '밸류에이션' 때문이다. 2일(현지시간 기준) 구글의 모회사인 알파벳의 주가수익비율(PER)은 20배 수준이다. PER은 기업 주가를 주당순이익(EPS)으로 나눈 수치로 이 숫자가 작을수록 해당 종목이 현재 주가가 기업 실적 대비 저평가돼있다고 판단한다.


알파벳의 현재 PER은 2014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그는 "역사상 가장 낮은 수준의 PER을 확인했다면 구글(알파벳) 투자를 주춤할 이유가 없다"며 "내년부터 성장성도 서서히 살아날 가능성이 높은 만큼 포트폴리오에 담아볼 만한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네이버와 카카오의 경우 현재 PER이 30배 수준이다.

A대표는 시장 기대치를 밑돈 2분기 실적은 이미 주가에 반영돼있다고 분석했다. 알파벳은 올 2분기 매출 697억달러, 영업이익 194억달러를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2.6%, 0.5%씩 증가한 수치지만 당초 시장 컨센서스(추정치 평균)를 소폭 밑돌았다. 투자자들은 실적 발표 후 알파벳을 집중 매수했다. 악재가 선반영된 상황에서 나름 선방했다는 평가 덕에 실적 발표 직후인 지난 27일 하루 새 7% 넘게 주가가 급등하기도 했다.그는 "기업의 실적은 후행 지표"라고 했다. "어닝서프라이즈나 어닝쇼크가 발표된 후 주가 출렁이는 경우가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실적 발표 이전에 호재와 악재가 주가에 반영되기 마련"이라며 "특히 매력적인 주식의 경우 악재 속에서 기대감이 발견된다면 주가가 반등하는 모멘텀이 된다"고 말했다.

알파벳이 발표한 2분기 실적에 대해 시장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A대표는 "금리인상, 인플레이션 우려 탓에 광고 시장이 위축된 데다 미국 기업에겐 악재인 달러 강세 기조 속에서 큰 충격 없이 버텨냈다"고 평가했다. 실제 2분기 구글 광고 매출액은 562억9000만달러로 시장 전망치(558억9000만달러)를 넘어섰다. 이 가운데 검색 광고 부문은 매출이 작년 2분기에 비해 13.5% 증가해 컨센서스를 웃돌았다. 그는 "내년부터는 올해 부진했던 실적에 대한 기저효과로 성장률이 도드라질 수 있다"며 "글로벌 경제 여건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연말께 성장주, 특히 알파벳 투자를 고려해볼 만하다"고 조언했다. AI(인공지능) 기술을 기반으로 한 구글의 신사업 분야도 회사를 한 단계 더욱 성장시킬 가능성이 높아보인다는 분석도 덧붙였다.
(A대표만 알파벳을 추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 금융정보업체 팁랭크에 따르면 현지 애널리스트 30명 가운데 28명을 알파벳을 '매수'하라는 투자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제시된 가장 높은 목표주가는 165달러, 평균 목표주가는 현재 주가보다 20%가량 높은 141.28달러다.)

바닥은 맞는데 성장성은 글쎄...

A대표는 7월 FOMC 이후 지난 6월의 물가가 고점이었다고 생각하는 투자자들이 증가하고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 "물가가 정점을 찍었으니 미국 중앙은행이 자이언트스텝(한꺼번에 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 대신 점진적인 금리인상 카드를 꺼낼 확률이 높다"며 "주가가 앞으로 더 이상 크게 빠질 가능성이 낮다는데 시장 참여자 대부분이 동의하는 분위기"라고 부연했다.

성장주에 기회가 올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성장주를 짓누르던 금리 인상 기조가 시장에서 사그라들 경우 그간 낙폭이 컸던 성장주에 대한 매력도가 다시 상승할 것이란 판단에서다. 최근 올해 들어 30% 가까이 하락한 네이버와 카카오를 추가 매수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중장기 투자를 선호하는 A대표는 네이버, 카카오의 성장성에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고 한다. '과연 기대했던 만큼 성장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서다.

실제 네이버와 카카오의 연간 실적 컨센서스는 큰 폭으로 하락하고 있다. 소비 둔화로 광고 시장이 다소 쪼그라든 영향이 크지만 이를 상쇄할 미래 비전이 더 큰 문제라는 게 A대표의 시각이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네이버의 경우 연초 8조3641억원으로 예상되던 연간 매출 예상치가 8조1608억원(1일 기준)까지 떨어졌다. 영업이익 추정치 역시 같은 기간 1조6240억원에서 1조4277억원으로 12.1% 하락했다.

카카오의 경우 상황이 더 나쁘다. 연초 대비 매출 추정치 하락폭(-2.2%)은 크지 않지만 영업이익 추정치가 7개월 새 1조372억원에서 7513억원으로 30%가량 급감했다.(현재 국내 증권사의 목표주가 평균은 네이버가 36만8750원, 카카오가 10만8412원이다.)

그나마 카카오보단 네이버가 낫다?

A대표는 둘 중 하나를 사야 한다면 네이버가 반등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그는 "두 종목 모두 거리두기 해제 이후 야외활동이 늘면서 온라인 소비가 줄었기 때문에 2분기 실적까진 시장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주력 사업 수익성이 개선될 가능성이 카카오보다 네이버가 높기 때문에 성장주에게 기회가 찾아온다면 네이버가 더욱 빠르게 반등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그러면서 "어차피 두 종목도 경기 둔화 시기에 큰 폭으로 반등하기 어렵다고 본다면 자회사 상장 등 가치가 훼손될 여지가 있는 카카오보다는 보다 안정적인 네이버가 낙폭과대로 인한 반등 이익을 기대하기 적합해보인다"고 덧붙였다. 다만 네이버와 카카오 모두 기존 사업 이외에 추가 성장성을 보여줘야만 주가가 힘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웹툰을 필두로 한 콘텐츠 분야를 비롯해 두 회사가 확장하고 있는 여러 사업 가운데서 기존 광고 부문이나 커머스 부문을 대체할 가능성이 어느 정도 엿보여야만 성장주로서 매력을 갖게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박재원 기자 wonderf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