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C업계 "모태펀드 축소 말아달라"…이영 중기부 장관 "속도 조절 협의 중"

윤석열 새 정부에서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한국모태펀드의 출자 규모를 축소할 조짐을 보이자 벤처투자(VC)업계가 한목소리로 우려를 표했다. 2005년에 결성된 모태펀드는 8조2153억원 규모로 커지면서 국내 벤처산업을 키우는 마중물 역할을 해왔다.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3일 서울 서초동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서 열린 '벤처투자 활성화를 위한 벤처투자업계 간담회'에서 “벤처투자시장이 성숙 단계에 이른 만큼 이번 정부에서만큼은 정부 주도 대신 민간 주도의 모태펀드 조성의 물꼬를 터야 한다”며 “다만 최근 경기침체 여파로 속도 조절이 필요해 정부 부처 간에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모태펀드 예산, 당분간은 유지돼야"

이날 간담회는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3고' 위기로 벤처투자 시장의 위축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벤처투자업계의 건의사항을 듣고 향후 벤처·창업 정책에 반영하기 위해 마련됐다.

지성배 한국벤처캐피탈협회 회장은 “민간에서 매칭할 수 있는 자금이 채권 시장으로 쏠리고 있는 데다 내년부터 보험사의 IFRS17 적용으로 벤처투자 장벽이 높아지기 때문에 민간에서의 펀드 결성이 어려워졌다”며 “펀드 결성 시한을 한시적으로 유예해달라”고 요청했다.

김창규 다올인베스트먼트 대표는 "벤처펀드에 자금을 대는 민간 출자자(LP)들이 정부의 기조를 '나쁜 사인'으로 보고 있다"며 "업계가 시간을 갖고 대처할 수 있도록 당분간은 모태펀드 규모를 유지해달라"고 말했다.김세연 UTC인베스트먼트 대표는 "펀드 구성이 언젠가는 민간 주도로 패러다임이 바뀐다는 사실 자체에는 동의한다"면서도 "다만 시간이 필요하고, 대기업들의 스타트업 투자 수요를 파악하는 등 보다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해보인다"고 말했다. 또 김종필 KB인베스트먼트 대표는 "VC업계의 목소리 뿐만 아니라 반대로 정부 차원에서도 업계에 주문할 이야기들을 공유해달라"고 했다.

송은강 캡스톤파트너스 대표는 “이번 위기의 수렁이 얼마나 깊을지 모른다”며 “과거 위기 때마다 더욱 타격이 큰 중소기업 예산은 오히려 늘렸다”고 꼬집었다. 이어 "향후 1~2년 반 정도 위기가 지속된다고 볼 때 이 기간 동안 정부가 예산을 확보해 대응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이 장관은 “지금까지 모태펀드가 벤처투자시장 마중물 역할을 해왔지만, 이제는 정부 주도 모태펀드에 힘을 더 줄 때는 아닌 것 같다”며 “오히려 어떻게 하면 해외에서 대규모 펀드레이징을 유치하기 위해 해외 기업설명회(IR) 로드쇼에 나서겠다”고 강조했다.

'셀프 수탁' 'M&A 활성화' '지역 투자' 등 주문

VC들이 민간 주도로 벤처펀드를 결성할 경우 수탁기관에 자금을 맡기기 어렵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벤처투자법상 VC는 20억원 이상 규모의 펀드를 결성할 경우 은행이나 증권사 등 금융기관에 자금을 수탁해야 한다.

송인애 본엔젤스파트너스 대표는 "모태펀드의 자금이 들어있지 않다는 이유로 수탁을 거절당하기 일쑤"라며 "1000억원대 자금을 맡기는데도 수탁기관이 마치 '결재'를 받으러 오라는 듯이 과도한 수준의 간섭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신기술금융사업자는 자금을 스스로 관리하는 '셀프 수탁'이 가능한데 벤처투자조합은 왜 안되는지 중기부가 나서서 고민해달라"고 덧붙였다.이에 박용순 중기부 창업진흥정책관은 "수탁기관을 증권사 뿐만 아니라 자금을 관리할 수 있는 다양한 검증된 기관까지 포함하는 등 여러 방식의 개선책을 고민하고 있다"며 "필요시 법령 개정도 고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수합병(M&A) 전문 VC인 TS인베스트먼트의 김웅 대표는 "회수 시장 활성화를 위해 M&A 전문 펀드가 대형화돼야 한다"며 "모태펀드는 산업은행이나 한국성장금융에 비해 이 분야 출자 비중이 낮은데 늘려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특수목적법인(SPC)를 펀드 하나 당 한 곳만 설립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해서도 명확한 규정이 없다"고 지적했다.

대구 기반 VC인 인라이트벤처스의 박문수 대표는 "지방 스타트업에 전문으로 투자하는 펀드는 규모가 여전히 작다"며 "그나마도 수도권 지역 기업들이 지방에 단순히 연구소를 세우고 지원받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방에서도 유니콘 기업이 나올 수 있도록 힘써달라"고 주문했다.

김종우/허란 기자 jong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