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문발차' 노동이사제…勞 "임원추천위 참여"도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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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130곳 대상노동이사제가 4일부터 시행되면서 파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노동계가 벌써부터 노동이사의 노조원 자격 유지와 함께 이사회 안건 부의권, 공기업 사장을 뽑는 임원추천위원회 참여 등을 요구하면서 노동이사의 권한과 책임을 둘러싼 정부와 노동계의 힘겨루기가 이뤄질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노동계 "상임이사 수준 권한 달라"
안건 부의권·문서 열람권 등 주장
조합원 자격유지 등 수위 높여
근로자 과반 동의 확보 절차 불명확
곳곳이 구멍…"당분간 혼선 지속"
"도입 빨라지나" 민간기업은 불안
요구 수위 높이는 노동계
노동이사제는 원래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였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임기 내내 별다른 진전 없이 답보상태가 이어졌다. 그러다 지난 대선 때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을 방문한 자리에서 노동이사제 도입에 찬성하면서 급물살을 탔다. 노동계 표를 의식한 행보라는 지적이 나왔지만 이후 올해 1월 노동이사제 도입을 담은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 일부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이달 4일부터 시행하게 됐다.노동이사제가 시행되면 130개 공공기관은 노동이사를 한 명씩 선임해야 한다. 한국전력, 인천국제공항공사, 한국도로공사, LH(한국토지주택공사) 등 공기업 36곳과 한국무역보험공사, 사립학교교직원연금공단, 공무원연금공단 등 준정부기관 94곳이 대상이다.노동이사 선출은 노조 등을 통해 이뤄진다. 과반수 노조가 있는 경우 노조 대표가 추천한 2인 이내 후보자가, 과반수 노조가 없는 경우 직접·비밀·무기명 투표로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얻은 2명 이내 후보자가 임원추천위원회에 추천된다. 노조 위원장이 자신을 ‘셀프 추천’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후 공공기관 운영위의 심의·의결을 거쳐 기획재정부 장관이 노동이사를 임명한다. 노동이사는 3년 이상 재직한 근로자 중에서 뽑아야 하며, 임기는 2년이고 1년 단위로 연임이 가능하다.
노동이사 선임 시점은 공공기관마다 다를 전망이다. 이사회 정원이 다 차지 않았다면 4일 이후 곧바로 노동이사 선임 절차가 이뤄질 수 있다. 반면 정원이 꽉 차 있다면 새로운 결원이 생겼을 때부터 노동이사 선임 절차가 시작된다.노동계는 벌써부터 요구 수위를 높이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소속의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는 3일 국회 토론회에서 노동이사의 권한을 다른 비상임이사보다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노동이사가 공공기관의 상임이사를 선임하는 임원추천위에도 참여해야 하며, 근로조건 결정과 관련한 심의·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노동이사의 이사회 ‘안건 부의권’과 ‘문서 열람권’ 허용도 요구했다. 상임이사 수준의 권한과 정보를 달라는 것이다. 이는 노동이사를 비상임이사로 규정한 기획재정부 경영 지침과 배치된다.
한국노총도 노동이사의 노조 조합원 자격 유지와 함께 유급 및 근무 기간 인사평가 점수 보장 등을 요구했다. 기재부 경영지침에 따르면 노동이사 업무에 대한 보수는 지급되지 않는다. 다만 업무 수행에 드는 실비 정도만 지급된다. 이 같은 무급제 노동이사를 유급제로 바꿔달라는 게 노동계의 요구다. 노동계는 경영 지침은 물론 공운법 시행령 개정도 요구할 방침이다.
노동이사 지위 두고 공기업도 혼선
노동이사제를 둘러싼 규정이 여전히 미비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노동이사 추천을 위한 근로자 과반수 동의 절차가 명확하지 않다. 과반수 노조가 없다면 전체 근로자 5%의 추천을 받아 입후보한 근로자 중 전체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얻은 2명을 임추위에 추천하게 된다. 하지만 사업장이 전국에 퍼져 있는 기관이나 복수노조 사업장 등에서는 투표 방식이나 절차 및 공정성을 두고 논란이 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투표 주관자가 노조인지 회사인지도 미정이다. 경영 지침에도 아무런 내용이 없다.금융부문 공공기관 노조의 한 간부는 “불확실한 영역이 많아 당분간 혼란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다른 기관 도입 사례를 살피면서 12월 정도 노동이사제 도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민간기업들도 노동이사제 도입 과정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한 대기업 제조업체 임원은 “공공기관을 테스트베드로 삼고 민간기업에 도입을 압박하는 게 수순인 만큼 공공기관 도입 과정을 눈여겨보고 있다”고 말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