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창한 자연림이 감싼 3개의 연못…얕보면 다치는 '장미의 가시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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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시그니처 홀'그저 아름다웠다. 티잉구역에서 그린까지 한눈에 담기는 전경을 마주하자 옛사람들이 왜 이 지역을 ‘서원(瑞原·상서롭고 복된 땅)’이라고 불렀는지 단박에 알 듯했다. 원래의 지형 그대로 쭉 뻗은 페어웨이 양옆에 소나무, 참나무, 산벚나무로 울창한 숲이 우거져 있다. 골프장이 들어서기 전부터 이 터를 지켜온 자연림이다. 홀 양옆 해저드와 분수, 폭포가 만들어내는 입체감은 홀에 조형적 아름다움을 더한다. 경기 파주 서원밸리CC의 얼굴인 서원코스 2번홀(파5). 일명 ‘장미의 가시 홀’이다.
(7) 서원밸리CC - 서원코스 2번홀
설계 맡은 이재충 "하늘이 내린 홀"
병풍 같은 금병산이 바람 막아
인위적인 변경 최소화해 완성
레드티 기준 451야드 길지 않아
장타자들 '2온' 욕심 내지만
해저드·개울 등 '복병' 많아
네번의 대회에서 이글은 세번뿐
프로들조차 쉽게 공략 못해
아름다움 뒤에 가시를 숨긴 홀
서원밸리CC는 수도권 북부의 대표적 명문 골프장이다. 골프장을 병풍처럼 둘러싼 금병산이 바람을 막아줘 겨울에는 덜 춥고 여름이면 덜 덥다. 1996년 동아그룹이 이 터에 골프장을 짓기 시작했으나 1997년 외환위기로 공사가 중단됐다. 대보그룹이 이를 인수해 2000년 문을 열었다.회원제 18홀 7030야드로 시작한 서원밸리CC는 퍼블릭 27홀인 서원힐스CC, 쇼트게임장, 서원아카데미 등으로 덩치를 키워 수도권 북부 최대 규모로 자리잡았다. 매년 7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대보하우스디 오픈, 11월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 시즌 최종전 LG시그니처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이 이곳에서 열린다.코스는 티클라우드CC, 파인리즈CC 등을 설계한 이재충 설계가의 작품이다. 그는 2번홀에 대해 “하늘이 내린 홀”이라며 “인공적인 개입을 최소화해 완성도를 높였다”고 했다. 자연 그대로 이미 완벽한 터였다는 얘기다.
레드티에 섰다. 그린까지 거리는 451야드, 화이트티에서는 514야드로 길지 않은 파5홀이다. 장타자들이라면 2온을 욕심낼 법한데 이석호 서원밸리CC 대표는 “이 홀에선 이글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양옆에 있는 해저드, 페어웨이를 가로지르는 개울이 복병입니다. 그린 뒤편은 낭떠러지고요. ‘장미의 가시 홀’이라고 불리는 이유죠. 곳곳에 가시를 숨기고 있어요.”데이터업체 CNPS에 따르면 지금까지 열린 네 번의 KLPGA투어 대회를 통틀어 이 홀에서 이글이 단 세 번 나왔다. 프로들에도 이글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홀이다.
캐디는 드라이버를 건네며 “내리막이어서 페어웨이가 실제보다 좁아 보인다”며 “자신있게 치라”고 했다. 자연림이 뿜어내는 상쾌한 공기를 한껏 들이마신 뒤 코어와 하체에 단단하게 힘을 줬다. 기분 좋게 정타를 맞은 티샷은 약 160야드를 날아 첫 번째 벙커 인근 페어웨이에 안착했다.
세컨드샷 지점에 가자 드디어 ‘가시’가 속속 눈에 들어왔다. 좌우에 자리잡은 해저드와 그 둘을 연결하며 페어웨이를 가로지르는 개울은 위협적이었다. 이 대표는 “지난달 대보하우스디 오픈에서 이소영 프로(25)가 이 자리에서 이 홀의 가시에 찔렸다”고 했다. 당시 경기 상황이 떠올랐다. 이소영은 1라운드 10번홀까지 4언더파로 선두권을 달렸지만 이쯤에서 친 세컨드샷을 왼쪽 해저드에 빠뜨렸다. 벌타를 받고 다시 친 공은 해저드 앞 러프에 빠졌고 결국 더블보기를 범했다.
긴 러프·그린 뒤 낭떠러지
긴장을 풀고 세컨드샷을 힘껏 날렸다. 5번 유틸리티를 맞고 110야드 넘게 날아간 공은 다행히 개울을 넘겼지만 10㎝ 가까이 우거진 러프에 파묻혔다. 그린 입구까지의 거리는 122야드. 온그린을 노리며 5번 아이언으로 힘껏 내리찍었다. 임팩트의 찰진 느낌과 함께 헤드를 감는 러프가 느껴졌다. 약 110야드를 날아간 공은 오른편 벙커 옆에 자리잡았다.핀까지 남은 거리는 약 40야드. 여태껏 잘 피해온 가시에 찔린 곳이 바로 여기였다. 그린스피드 3.2(스팀프미터 기준)의 단단한 그린을 맞은 공은 보란듯이 오른쪽 뒤편 낭떠러지로 사라졌다. 벌타를 받고 겨우 그린에 올려 2퍼트. 골프매거진이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파5홀’로 꼽은 곳에서 2타를 잃고 홀아웃했다.
서원코스 9홀은 정성스레 관리된 정원을 걷는 느낌을 준다. 밸리코스 9홀은 긴 전장에 너른 페어웨이로 호쾌하고 도전적인 플레이를 즐길 수 있다. 밸리코스 4~6번홀은 ‘아멘 코너’다. 서원밸리CC의 또 다른 명물이다. 구깃구깃한 그린으로 골퍼를 시험에 들게 하는 4번홀(파4), 그린 앞쪽에 크게 입을 벌리고 있는 벙커에서 씨름해야 하는 5번홀(파4), 긴 전장에 다른 홀보다 스피드가 20~30%는 빠른 단단한 그린으로 무장한 6번홀(파4)을 끝내면 절로 ‘아멘’이 나온다.정회원은 총 400명, 하루 80개 팀을 8분 간격으로 운영한다. 모든 홀을 걸어서 라운드를 즐기며 나무와 잔디를 손수 관리하는 최등규 대보그룹·서원밸리CC 회장의 모습도 종종 볼 수 있다. 비회원 그린피는 주중 23만원, 주말 29만원이다.
파주=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