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눈밖에 날라…중국과 반도체 협력 '여지' 남긴 정부 [강경주의 IT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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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주의 IT카페] 61회
미국, 반도체 공급망서 중국 배제 가속화
대통령실 관계자 "중국과 반도체 협력 지속"
대만·일본, 미국과 반도체 동맹 행보 강화
"미국은 반도체를 안보로 인식…우리는 경제로 접근"
'칩4 동맹' 대신 '반도체 협의' 표현 사용
6일 반도체 업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대통령실 관계자는 지난 4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에서 펠로시 의장과 윤석열 대통령과의 통화 내용을 묻는 다수 기자들의 질문에 "칩4 문제가 거론되지 않았다"고 밝혔다.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2시30분부터 약 40분간 펠로시 의장과 통화를 했다. 펠로시 의장과 동행한 수잔 델베네 연방 하원의원은 윤 대통령에게 '반도체 칩과 과학법'(반도체법)을 언급, "양국이 수혜를 누리며 협력 방안을 논의하자"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미 하원은 지난달 28일 자국의 반도체 발전과 기술 우위를 위해 2800억달러(한화 약 363조3000억원)를 투입하는 반도체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미국 내에서 '국가 안보 법안'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중국 배제에 방점이 찍혔단 평가다.
펠로시 의장, 대만서 반도체 광폭 행보
정부에서 그동안 '칩4 동맹' 표현을 쓰지않는 분위기는 감지됐지만 '중국과 맞춤형 반도체 협력'을 한다는 워딩은 처음 전해진 것이어서 외교가와 반도체 업계가 그 파장에 주목하고 있다.미국 정부는 반도체 공급망 네트워크 회의 개최 계획을 우리 정부에 전달하고 이달 말까지 참석 여부를 알려 달라고 하면서 사실상 참여를 강요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중국과 반도체 협력을 지속한다는 말은 미국의 전략과 정면 배치된다는 지적이다.미국은 반도체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시키기 위한 작업에 전력을 쏟는 중이다. 미 의회가 최근 통과시킨 반도체법은 중국에 맞서 미국이 중심이 되는 세계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한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 미국은 또 중국 반도체 기업을 견제하기 위해 장비 수출 금지 등 수출 통제 방안을 수립하기 위한 검토도 진행 중이다. 이 방법은 중국의 특정 기업이 아니라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장비나 기술을 대상으로 해 한국을 비롯해 중국에서 반도체를 생산하는 모든 기업에 적용된다.
블룸버그는 "미국 정부가 중국의 경제적 야망을 억제하려는 시도를 가속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미 상무부 대변인은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에 대한 중대한 국가안보 위험을 해결하기 위해 (중국의) 첨단 반도체 제조 노력을 저해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 건드리지 않는 게 우선"
국내 반도체 업계의 속내는 복잡하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서 전체 낸드플래시 생산량의 40%가량을 생산 중이고 쑤저우에는 반도체 패키징 공장이 돌아가고 있다. SK하이닉스도 중국 우시에 D램 공장을 두고 있다. 이곳에서 전체 D램 생산량의 절반가량을 생산한다. 인텔에서 인수한 낸드플래시 공장도 다롄에 있다. 국내 반도체 수출의 60%가 중국을 향하고 있다는 점이 우리 정부와 업계의 고민이다.반도체 기업의 한 임원은 "태풍에 방향을 잃고 헤매는 배에 올라탄 심정"이라고 하소연했다. 그는 "기업 차원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앞으로 펼쳐질 시나리오 등을 준비하는 정도"라며 "중국이 중요한 시장이지만 그래도 미국을 건드리지 않는 게 우선이지 않겠나"라고 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칩4 동맹에서 빠지면 반도체 소부장 공급이 완전히 막힐 수도 있다"며 "반도체 장비 상위 네 곳 중 세 곳이 미국과 일본 기업이고 핵심 기술은 미국을 반드시 거쳐야 하기 때문에 지금 시점에서 중국과 협력을 한다는 정부 관계자의 의견 표출은 굉장히 위험하다는 게 업계의 인식"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도 지난 4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미국은 중국을 배제하고 안정적인 반도체 생산·공급망을 만드는 것이 미래 산업의 핵심자원인 반도체 주도권을 가져오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며 "(칩4 동맹이) 영화 '대부'의 '거절할 수 없는 제안'과 같다. 이번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아시아 순방은 칩4 가입에 대한 결정의 순간이 임박했음을 상기시킨다"고 분석했다.
그는 "우리가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최강자라고 하나 이는 미일과의 생태계 공생 속에서 이루어진 성과임을 직시해야 한다"며 "우리가 칩4 가입 요구를 거절했을 때 감당해야 할 손실의 크기를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어 "미국은 반도체를 '안보'로 인식을 하는데 우리는 '경제'로 접근하고 있어 엇박자"라며 "미국에 반도체 공급망은 핵우산에 버금갈 정도로 보안에 있어 중대한 사안"이라고 짚었다.끝으로 "만약 미국이 한국을 칩4에서 배제하거나 우리 정부의 미적지근한 대응에 따른 조치로 차등 대우를 할 경우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며 "이런 결과를 감수하고서라도 중국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단기적인 것에 불과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