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마지막 퍼즐은 35년차 기자…'尹 이미지' 바꿀까 [김인엽의 대통령실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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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정 홍보기획비서관# 지난달 5일, 윤석열 대통령은 출근길 회견(도어스테핑)에서 '박순애 교육부장관의 인사 검증 부실'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전 정권 지명된 장관 중에 이렇게 훌륭한 사람 봤어요?"라고 답했습니다. 거듭 '인사 부실' 지적이 나오자 기자들을 향해 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격앙된 목소리로 "다른 정권들하고 비교를 해 보세요"라고 했습니다.
85일 공석에 '대통령 PI 형성 안돼' 지적 제기
홍보수석 추천…김여사 관련 인물과 활동도
YTN 국회팀장·정치부장·선임기자 등 역임
13대 국회부터 현장취재, 2005년 DJ 대담 기획
정치에서도 홍보·기획 역량이 지지율 좌우
이날 논란이 된 것은 대통령의 말만이 아니었습니다. 격앙된 말투와 기자들을 향한 손가락질 등 행동과 태도가 하루 종일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당시 대통령의 대화 상대는 기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카메라 너머에는 국민들이 있었습니다. 출근길 회견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던 유권자들은 흥분한 대통령을 마주해야 했습니다.이런 것들을 PI(President Identity)라고 합니다. 국가나 기업의 리더의 총체적인 정체성을 뜻하는 말입니다.
외부에 비치는 최고경영자의 모습은 그 조직의 이미지에 상당한 영향을 미칩니다. 국민에게 보이는 윤 대통령의 말과 행동은 곧 윤석열 정부의 이미지이기도 합니다.
취임 100일을 앞둔 지금 윤 대통령 지지율은 쉼 없이 내리막을 달렸습니다. 많은 이유가 거론되지만 대통령실 안팎에서는 이 PI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 같은 역할을 할 자리가 85일 동안 공석으로 남아있었습니다. 바로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입니다.
취임 85일만에 맞춰진 퍼즐…35년차 방송기자 낙점
대통령실이 지난 3일 홍보기획비서관 인사를 발표했습니다. 35년 경력의 언론인 이기정 전 YTN 선임기자가 그 주인공이었습니다. 위안부 피해자 비하 논란으로 사퇴한 김성회 전 다문화종교비서관을 제외하고 모든 비서관급 인선이 완료된 것입니다.대통령실 핵심관계자는 이날 브리핑을 통해 “이 비서관은 정치부 기자였고, 방송 제작 경험이 오래됐다”며 “대통령 PI, 홍보·기획 등에서 지금까지 우리가 했던 것보다 훨씬 더 세련되고 업그레이드된 전략과 일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이 비서관은 1988년부터 기자 생활을 시작한 베테랑 언론인입니다. 그해 CBS에 입사했고 1994년 보도전문채널인 YTN으로 직장을 옮겼습니다. YTN에서는 국회부장, 정치부장, 정책기획팀장, 취재1부국장, 디지털뉴스센터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대부분의 경력은 정치부에서 보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13대 국회 때부터 정치부 기자 생활을 시작한 그는 평화민주당, 자유민주당, 한나라당 등 여러 정당을 두루 출입했습니다. 2005년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대담을 기획하기도 했습니다. 당시는 김 전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2년 뒤였습니다. 대담은 6·15 남북공동성명 5주년을 맞아 이뤄졌습니다.이 비서관을 추천한 이는 최영범 홍보수석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성균관대학교 3년 선배인 데다가 기자 시절 정치·사회부 현장에서 인연을 맺은 사이였다고 합니다.여기에 이 비서관이 과거 김건희 여사와 친분이 있는 인사들과 문화예술단체 활동을 함께 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김 여사가 영향력을 행사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습니다.
이 비서관은 2021년 대한민국장애국제무용제(KIADA) 조직위원회 조직위원으로 활동했는데, 당시 조직위원회에는 김건희 여사 팬클럽인 '건희사랑' 회장을 지낸 강신업 변호사가 포함돼 있었습니다. 김 여사와 봉하마을에 동행해 논란이 됐던 김량영 충남대 무용학과 겸임교수(전 코바나컨텐츠 전무)도 조직위원 중 한 명이었습니다.이 비서관은 이 같은 의혹에 대해 “초창기인 10여 년 전부터 개인적 관심에 의해 장애인무용제 조직위원으로 활동했다”며 “이후 조직위원으로 합류한 분들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고 해명했습니다.
이 비서관은 김 여사와의 관계에 대해선 “35년간 기자 생활을 하면서 김 여사뿐 아니라 윤 대통령과도 인연은 있었다”며 “그렇다고 따로 만나고 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대통령 말·무대·배경…'대외 이미지' 책임져야
앞서 말했듯 홍보기획비서관은 대통령의 메시지와 이미지를 관리하는 역할을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의 발언, 무대와 그 배경, 이를 촬영하는 영상 구도까지 신경 써야 합니다. 대통령이 외부에 어떻게 비칠까 끊임없이 고민하는 자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난달 27일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민통합위원회 출범식에는 '우리나라 대한민국'이라는 문구가 뒷걸개(백드롭)에 들어갔습니다. 흔히들 쓰는 '우리나라'라는 표현을 통해 국민통합의 의지를 다진 것입니다. 그간 대통령실은 행사 주관 기관이 백드롭 문구를 제안하면 홍보기획비서관실이 이를 협의하는 방식으로 뒷걸개 문구를 조율해왔다고 합니다. 담당 비서관이 없어 행정관들이 한 명씩 전담 행사의 기획을 책임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정치권에서도 홍보·기획 담당자들의 역할은 막중합니다. 특히 정당은 정당명, 당색, 슬로건 등의 변화를 통해 지지율 반등을 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의 대표적인 홍보·기획 전문가로는 손혜원 전 의원이 꼽힙니다. 디자이너 출신의 손 전 의원은 당명을 새정치민주연합에서 더불어민주당으로 바꿨고, 초록에서 파란색으로 점차 바뀌는 지금의 당색을 확립했습니다.국민의힘이라는 지금의 당명을 만든 사람 역시 디자이너 출신인 김수민 전 의원입니다. 빨강·노랑·파랑 3색을 사용해 보수와 중도 진보를 아우르는 당의 정체성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대선 기간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등에 걸린 현수막도 그의 작품이었습니다. '아이 낳고 살만한 세상이라 느꼈으면'이라는 문구와 함께 윤 대통령이 자신의 볼을 만지는 아이를 지켜보는 사진이 담겼습니다. 이 포스터는 '아이가 없어서 부모들의 마음을 잘 알지 못할 것'이라는 윤 대통령에 대한 유권자의 생각을 바꾸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받았습니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 반등과 이를 위한 이미지 쇄신이 필요한 시점에서 홍보·광고업계 종사자가 아닌 언론인이 홍보기획비서관을 맡는 것에 대한 의문 부호가 따라붙기도 합니다. 홍보수석실은 이미 언론인 출신들로 꾸려져 언론에 대응하기에 충분한 인적 구성이라는 점도 이같은 생각에 무게를 더합니다. SBS 논설위원을 지낸 최 수석을 비롯해 조선일보에서 이직한 강인선 대변인과 강훈 국정홍보비서관, 동아일보 기자를 지낸 이재명 부대변인, 매일경제신문에 다녔던 김영태 국민소통관장 모두 기자 출신입니다.['대통령실 사람들'은 용산 시대를 열어가는 윤석열 대통령비서실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대통령실과 관련해 더욱 다양한 기사를 보시려면 기자페이지를 구독해주세요]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