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스타일' 쿨했지만…젊은 네이버 CEO 취임 이후 주가는 부진 [황정수의 테크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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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초중반 네이버 경영진애플, 구글, 테슬라, 메타플랫폼 같은 실리콘밸리 유명 테크기업의 대표(CEO)들은 분기마다 실적설명회(콘퍼런스콜)에 나와서 애널리스트들의 질문에 직접 답합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직설적입니다. 어떤 질문엔 한숨을 푹 쉬며 싫은 티를 내기도 합니다. 구글의 순다르 피차이는 친절합니다. 답할 때 질문자의 이름을 언급합니다. 'Thanks, Doug'(고마워, 더그) 'Good question, Stephen'(좋은 질문이야, 스티븐) 이런 식입니다. 애플의 팀 쿡은 담백합니다.
美 구글 CEO처럼
실적설명회에서 소통
"의도된 적자, 카카오와 다르다"
솔직, 당당한 설명 호평
주가는 하락세
성장성 우려 여전
CEO마다 대화 스타일엔 차이가 있지만 공통점도 있습니다. 경영 현황에 대해 최대한 솔직한 태도로 소통하려고 한다는 겁니다. 실적 전망과 관련한 CEO의 비관적인 발언 때문에 주가가 크게 하락하는 경우도 있지만, 다음 설명회 때도 소통의 수준이 낮아지지 않습니다.
실적 우려에 '쿨하게' 반응한 40대 초반 CEO
한국을 대표하는 주요 테크기업들의 콘퍼런스콜은 어떨까요. 지난 5일 열린 네이버 콘퍼런스콜은 실리콘밸리 스타일과 비슷했습니다. 지난 3월 취임한 최수연 CEO와 김남선 최고재무책임자(CFO)가 나와 경영 현황을 설명했습니다. (국내 제조 대기업 CEO들은 콘퍼런스콜에 어지간해선 직접 안 나옵니다. 2020년 11월 당시 이석희 SK하이닉스 CEO가 콘퍼런스콜에서 마이크를 잡았을 때 화제가 됐을 정도입니다.)40대 초중반(최 CEO 1981년생, 김 CFO 1978년생)의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솔직하다', '소통하려고 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네이버는 주요 사업부별 손익을 처음 공개했습니다. 핵심 사업인 웹툰이 속해 있는 콘텐츠 부문에서 2분기 영업손실 950억원을 기록했습니다. 네이버가 야심 차게 진행 중인 해외 웹툰 사업의 손실 영향이 큽니다.
당연히 애널리스트들의 질문이 집중됐습니다. "콘텐츠 적자 폭이 늘어나는 것 같다", "웹툰 성장세가 둔화하거나 일부 시장에선 감소하고 있는 것 같다. 우려할 만한 상황 같다"는 불편한 질문도 나왔습니다.네이버의 경영진들은 '쿨'하게 반응하더군요. 적자 폭 증가에 대해 최 CEO는 "의도된 적자라고 봐주면 좋을 것"이라고 받아쳤습니다. 해외 시장 확장을 위해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고 사람도 많이 뽑았기 때문에 일정 기간 적자가 나는 건 '당연하다'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2~3년 내 글로벌에서도 영업이익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자신감도 나타냈습니다.
김 CFO도 당당했습니다. "카카오처럼 해외 웹툰 사업에 수익성 개선을 위해 매출 성장 속도를 조절할 수 있냐"는 질문에 대해 단호하게 선을 긋더군요. 그는 "우리는 비용 관리를 위해 성장을 조절하는 그런 전략을 펼치지 않을 것"이라며 "(마케팅비가 증가하긴 했지만) 중요한 건 집행의 효율화"라고 강조했습니다.
취임 이후 주가 부진...성장성 우려 여전
콘퍼런스콜은 인상적이었지만 주가는 힘을 못 썼습니다. 이날 네이버 주가는 낙폭을 확대해 2.38% 내린 26만7000원에 마감했습니다.네이버 경영진 취임 이후 주가는 어떨까요. 최 CEO와 김 CFO가 공식 취임한 지난 3월14일 이후 현재까지 네이버 주가는 32만9000원에서 26만7000원으로 18.8% 하락했습니다. 같은 기간 22.7% 하락한 경쟁사 카카오보다는 낫지만, 구글 모회사 알파벳 A(-6.7%)보다는 더 부진한 성적입니다.'성장주의 성장세가 둔화하고 있다'는 우려 때문이겠죠. 네이버의 버팀목인 디지털 광고 시장에 대한 전망은 낙관적이지 않습니다. 최 CEO가 "견고함을 보인 글로벌 테크 회사(구글)와 마찬가지로 경기를 덜 타는 검색 광고(검색창에 키워드를 넣었을 때 상단에 표시되는 광고) 사업의 안정성을 입증했다"고 강조했지만, 검색 광고도 경기를 탈 수밖에 없습니다. 대기업 위주 디스플레이 광고(화면의 일정 부문에 떠 있는 광고)의 둔화세는 더욱 뚜렷한 상황입니다.경영진들이 '미래를 위한 투자 때문에 나타난 의도된 수익성 악화'라고 표현했지만, 주주 입장에선 우려할 수밖에 없습니다. 네이버의 2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0.2% 증가하는 데 그쳤습니다. 작년, 재작년 20%대를 기록했던 영업이익률은 16.4%로 낮아졌습니다.개인적으론 미래 성장에 대한 비전도 경쟁사 대비 '덜 구체적'이란 느낌을 받았습니다. 지난 4일 카카오의 콘퍼런스콜에서 남궁훈 CEO는 오픈 채팅 사업 육성, 카카오톡 '친구'탭, 프로필 업그레이드 같은 눈에 보이는 전략을 제시했습니다.
네이버 경영진들도 이날 '멤버십 프로그램의 재정비', '일본 소프트뱅크와 Z홀딩스의 긴밀한 협력', '성과형 광고 고도화' 같은 내용을 언급했지만, 시장에선 '아쉽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증권사들이 콘퍼런스콜 이후 내놓은 분석보고서 제목을 봐도 온도 차가 느껴집니다. 카카오는 '코로나가 끝나도 문제없다', '오픈 채팅 발상의 전환', '벌써 기대되는 4분기 실적', '우려 속에 찾은 희망' 같은 긍정론이 많습니다. 네이버는 지난 금요일에 실적발표를 한 탓에 증권사 리포트가 아직 많이 안 나오긴 했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 '절반의 성장과 비용 효율화' 같이 상대적으로 신중한 느낌이 강합니다.
국내에선 '착한 기업', 해외에선 '강한 기업' 요구
네이버는 복잡한 상황에 처해 있는 회사입니다. 우선 국내에선 '사업자, 파트너들의 부담을 최소화하는' 착한 기업이 될 것을 강요 받고 있습니다. 국민의 삶을 편하게 해줬지만 '골목상권 침해' 같은 부정적 시선이 여전하기 때문입니다.동시에 해외 콘텐츠 시장에선 경쟁자들을 압도할 수 있는 강력한 기업이 돼야합니다. 지난 3월 최 CEO와 김 CFO가 공식 임명됐을 때 네이버가 부여한 미션을 살펴봤습니다. 회사는 "글로벌 네이버’로 발돋움하기 위한 인선"이라며 "글로벌 톱티어(Top-tier) 인터넷 기업으로 도약하는 데 경영의 모든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착한 기업과 강한 기업. 좀처럼 양립하기 어려운 두가지 목표를 네이버 경영진들은 어떻게 풀어갈까요. 마침 다음 콘퍼런스콜이 열리는 내년 11월은 최 CEO와 김 CFO의 내정 사실이 공개된 이후 1년을 향해가는 시점입니다. '허니문'이 끝나갈 그 때에도 두 경영자가 지금처럼 외부와 소통하며 우호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