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더기 세법' 본인들도 모호하자…일단 세금 부과하고 보는 국세청
입력
수정
지면A5
왜 이런 일이…"징세 편의주의"A씨는 울산에서 5층 건물을 2003년 26억원에 매입해 2017년 28억원에 팔았다. 매도 시점에 양도소득세를 납부했지만 2년 뒤 느닷없이 세무조사가 들어왔다. “제출한 매매계약서의 증빙이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관할 세무서는 A씨의 건물 매입 계약서를 인정하지 않고 2003년 매입 시점 3개월 전후의 감정평가액(17억5000만원)을 매입가액으로 산정한 뒤, 양도세 2억1000만원을 고지했다. 양도차익보다 많은 세금이 부과되자 A씨는 조세심판원에 심판청구를 신청했으나 기각됐다. 결국 행정소송까지 제기해 울산지방법원이 “영수증, 관계자 진술 등을 고려할 때 A씨 주장이 인정된다”고 판단하면서 올 1월 양도세 부과 처분 최소 결정을 받았다.
세금 적게 매기면 감사 대상
무리하게 부과 땐 불이익 없어
5년간 귀책 인정된 직원 657명
644명에 경고·주의…징계는 0명
잦은 稅法 개정도 문제
해마다 세법 여러 번 뜯어고쳐
전문가도 해석 못할 지경
100억 이상 고액 과세사건은
작년 56.4%가 국세청 오류
모호하면 ‘일단 때리자’
납세자의 조세 불복 급증에는 고질적인 ‘징세 편의주의’가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게 전문가 지적이다. 세금을 적게 부과하면 감사원의 감사 대상이지만, 세금을 무리하게 부과할 때는 과세 오류가 인정되더라도 불이익이 없기 때문이다.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이 국세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조세 불복 사건에서 귀책이 인정된 국세청 직원은 657명이다. 이 중 644명이 경고·주의 처분을 받았다. 징계는 단 한 명도 받지 않았다. 한 세무사는 “법을 적극적으로 해석해 세금을 크게 때려도 문제가 안 되기 때문에 무리한 과세가 계속되고 있어 오류도 많은 것”이라고 지적했다.잦은 세법 개정도 문제로 꼽힌다. 한 해에만 세법을 여러 번 뜯어고쳐 전문가조차 해석에 어려움을 겪다 보니 과세당국도 법이 모호할 때 ‘세금을 일단 때리고 보자’는 경향이 강해졌다는 지적이 많다. 부동산 세금이 대표적이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부터 28번의 부동산 대책을 내놓으면서 부동산 세법을 수차례 개정했다. 그때마다 주택 수와 지역, 취득 시점별로 양도소득세 취득세 등 세율이 수시로 변해 “부동산 세제가 누더기가 됐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우병탁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 팀장(세무사)은 “집값 안정이라는 정책 목적에 맞춰 세제를 급하게 건드리다 보니 법 해석을 두고 모호한 조항이 많아지면서 분쟁이 증가했다”고 말했다. 법원의 생각도 비슷하다. 김시철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는 지난 3월 ‘헌법상 조세법률주의와 세법의 해석방법론’ 논문에서 “조세가 재정 수요 충족이라는 본연의 기능을 떠나 조세정의 등 정책수단으로 기능하면서 세법이 너무 어렵고 복잡해졌다”고 분석했다.
100억원 이상은 절반이 오류
늘어난 세 부담도 조세 불복을 부추긴 원인으로 지목된다. 문 정부 첫해인 2017년 1조7000억원이던 종부세수는 지난해 6조1000억원으로 3.6배 급증했다. 양도세수는 같은 기간 15조1000억원에서 36조7000억원으로 2.4배 늘었다.최근에는 고액 과세 사건에서 많은 오류가 확인되고 있다. 지난해 조세심판원에 제기된 심판청구에서 과세액 100억원 이상 사건의 인용률은 56.4%로 전체의 절반을 훌쩍 넘겼다. 10억원 미만(43.6%), 10억~50억원 미만(36.9%), 50억~100억원 미만(38.9%) 사건보다 높다. 한 조세전문 변호사는 “100억원 이상의 고액 사건은 쟁점이 어렵든 쉽든 대법원까지 가면 승소(국세청 패소)할 것으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강하다”고 말했다. 국세청 관계자는 “동일 쟁점의 다수 사건에 재조사 결정이 내려지며 지난해 심판청구 인용률이 높게 나타났다”며 “재조사를 제외하면 100억 이상 사건의 인용률은 49.3%”라고 밝혔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