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사 집단 반발에…대한항공 '난기류'

임단협 부결…입장차 '팽팽'

항공 수요 겨우 살아나는데…
노조 "고통분담 동참, 더 줘야"
사측 "10% 인상은 역대 최고"

6년 만에 조종사 파업 가능성
"수출물류·항공업 타격 불보듯"
올 들어 화물사업 호황과 여객 수요 회복으로 실적 신기록 행진을 이어가던 대한항공이 조종사 노동조합과의 임단협(임금 및 단체협상) 실패라는 뜻밖의 암초를 만났다. 당초 노사는 올해 임금 10% 인상에 잠정 합의했지만 조합원 투표에서 부결되면서 노조 집행부가 전원 사퇴하는 내홍을 겪었다. 그럼에도 임금 임상률을 놓고 노사 입장 차이가 좁혀질 기미를 보이지 않아 최악의 경우 6년 만에 조종사 파업이 현실화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임금 10% 인상에도 부결

9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는 이달 초 조합원 투표를 거쳐 남진국 기장을 신임 위원장으로 선출했다. 기존 집행부가 임단협 잠정 합의안 부결의 책임을 지고 지난달 총사퇴한 데 따른 것이다. 대한항공 노조는 2000여 명의 조종사로 구성된 조종사 노조와 정비, 객실승무원 등으로 구성된 일반 노조로 나뉘어 있다.
사측과 두 노조는 지난 6월 말 올해 임금 총액 기준 10%를 인상하는 안에 잠정 합의했다. 그동안 합의하지 못한 2020년과 2021년 임금은 코로나19 고통 분담 차원에서 동결하기로 했다. 2년간의 동결을 감안해 올해 임금 10%를 인상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임금 인상과 별도로 비행수당 및 체류비도 인상하기로 합의했다. 잠정 합의안은 일반 노조 조합원 투표에선 가결됐지만, 조종사 노조 조합원 투표에선 반대가 과반을 기록해 부결됐다.

조종사들은 잠정 합의안이 공개된 직후부터 거세게 반발했다. 코로나19 사태 발생 직후 유급휴직을 비롯한 사측의 고통 분담에 적극 동참한 데다 회사가 역대급 실적을 내고 있는 상황에서 추가 임금 인상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실제로 대한항공은 코로나19 여파에도 화물영업 호조에 힘입어 지난해 창사 이후 최대치인 1조4179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올 상반기 영업이익은 1조5243억원으로, 지난해 영업이익을 벌써 추월했다. 글로벌 주요 항공사들도 조종사들에게 두 자릿수의 높은 임금 인상률을 제시하고, 각종 수당을 올려주고 있다는 것이 조종사 노조의 주장이다.

좁혀질 기미 없는 협상

노사 양측은 신임 노조 집행부가 구성되는 대로 협상에 나서겠다는 계획이다. 임단협 세부협상은 일러야 다음달 추석 연휴 이후에나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문제는 노사 간 입장이 조율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10%는 역대 최고 수준의 임금 인상률이라는 것이 사측의 설명이다.대한항공 소형기 부기장 연봉은 각종 수당을 제외하고 평균 1억2000만원, 대형기 기장은 2억원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진국 노조위원장도 조합원들에게 보낸 당선 소감문에서 “임단협 해결 방안이 마땅하지 않은 상황이어서 고민이 깊다”고 밝히기도 했다.

새 집행부는 최후의 카드로 파업을 배제하지는 않겠다는 계획이다. 대한항공 조종사 파업은 2016년 12월 이후 한 차례도 없었다. 다만 조종사들이 파업에 들어가도 항공 운항이 전면 중단되지는 않는다. 항공운수사업은 2006년 필수공익사업장으로 지정돼 전면 파업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파업할 경우 국제선은 80%, 국내선은 50%의 조종인력을 유지해야 한다. 2005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조종사 파업으로 수출 물류가 차질을 빚자 이듬해 정부가 지정했다.

다만 코로나19의 엔데믹 전환으로 항공 수요가 살아나고 있는 시점에 조종사 파업이 현실화하면 수출 물류에 차질을 빚고, 승객들의 불편이 가중될 전망이다. 부활 기미를 보이고 있는 항공업 전반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