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덮친 '高금리 리스크'…빚 부담에 채무 조정하고 알짜자산 판다

대출금리 치솟자 재무·사업전략 다시 짜는 기업들

기업 대출금리 年 4% 육박
금리 인상에 이자부담 '눈덩이'
투자 위축…유동성 확보 비상 걸려

대한항공, CRS 통해 비용 절감
고려아연, 유증으로 4700억 조달
한화 등 하반기 합병·분할도 급증
재무구조 개선·차입금 상환 '분주'
삼성전자 LG에너지솔루션 SK하이닉스 현대자동차 LG화학 등 국내 비금융 상장사 30곳의 올 1분기 이자비용은 7191억원에 달했다. 작년 1분기에 비해 142억원(2.0%) 늘어나는 데 그쳤다. 하지만 2분기 시장금리가 큰 폭으로 뛰어 분기 이자비용이 조만간 1조원을 웃돌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치솟는 금리에 대응해 기업들의 사업·재무 전략도 다양화·고도화하고 있다. 미래 성장동력이 아니면 돈되는 사업도 미련 없이 접는가 하면 경쟁력 없는 사업들을 흡수·합병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재무전략을 다양화하면서 분기 이자비용을 1500억원가량 줄였다.

기업들 사업재편 속전속결

9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달 이후 이날까지 분할·합병 등 사업재편을 결정한 기업(스팩 등 제외)은 한화 현대삼호중공업 코오롱글로벌 등 34곳으로 집계됐다. 작년 같은 기간(16곳)과 비교해 두 배 이상 늘었다. 이처럼 기업들의 사업재편이 급증한 건 고금리·고물가·고환율 등 ‘3고(高)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자회사를 흡수·합병해 비용을 절감하는 곳부터 늘었다. 현대삼호중공업은 운반하역 설비 제조 자회사인 현대인프라솔루션을 오는 10월 흡수합병한다. 현대인프라솔루션은 지난해에만 287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는 등 휘청이고 있다. 흡수합병 직후 설비와 자산을 재배치하고, 사업을 조정해 손실폭을 줄일 계획이다.한화그룹도 방산 계열사 뭉치기에 나섰다. 항공·우주 계열사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한화에서 물적 분할된 방산 부문을 인수하는 동시에 100% 자회사인 한화디펜스를 흡수합병하기로 했다. 몸집을 키워 방산사업 역량을 강화하고, 회사 신용등급·재무구조를 개선할 계획이다. 비슷한 이유로 롯데제과도 지난달 롯데푸드를 합병했고, 포스코인터내셔널은 포스코에너지 합병을 추진 중이다.

알짜자산을 팔아 현금을 마련하는 기업도 늘었다. 차입금을 상환하고 재무구조를 개선하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 포스코홀딩스와 동국제강은 보유한 브라질 CSP제철소 지분 각각 30%, 20%를 세계 2위 철강사인 아르셀로미탈에 매각하는 협상을 진행 중이다. 두산에너빌리티도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지난달 29일 화공업체인 두산메카텍 보유 지분 전량을 범한산업-메티스톤에쿼티파트너스 컨소시엄에 1050억원에 처분했다. 롯데케미칼은 파키스탄 자회사인 롯데케미칼파키스탄(LCPL) 보유 지분 75.0% 전량을 처분하기 위해 파키스탄 섬유업체인 노바텍스와 교섭을 벌이고 있다. 매각금액은 1800억~2000억원가량으로 예상된다.

대한항공 이자비용 1500억원 절감

빚이 10조원을 넘어서는 대한항공은 통화스와프(CRS)를 비롯한 파생상품을 활용한 재무전략으로 이자비용을 절감했다. 이 회사의 올 상반기 순이자비용은 972억원(별도 기준)으로 2019년 상반기 2646억원, 작년 상반기 2402억원과 비교해 1500억원가량 줄었다.대한항공은 올 들어 조달한 변동금리 달러 차입금을 고정금리 원화 차입금으로 조달하는 계약(CRS)을 국내외 은행과 맺었다. 통상 외화차입금은 리보 금리에 연동되는 등 변동금리를 적용받는다. 최근 치솟은 금리·환율 변화에 외화조달 차입금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외화차입금을 고정금리 원화차입금으로 바꾼 것이다. 대한항공이 CRS로 조달한 금리 수준은 이 회사의 달러·원화 회사채 발행금리를 밑돌았다. 그만큼 이자비용도 대폭 절감했다.

자본시장에서 ‘은둔의 기업’으로 통하는 고려아연은 사상 처음 3자배정 유상증자로 자금을 조달한다. 이 회사는 오는 18일 한화그룹 계열사인 한화H2에너지USA(한화H2)를 대상으로 3자배정 유상증자를 진행해 4700억원을 조달한다. 고려아연은 지난 3월 말 순차입금(차입금에서 현금을 제외한 금액)이 -9155억원으로 우량한 재무구조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2030년까지 10조원가량의 설비투자를 계획한 만큼 상당한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 투자금 마련을 위해 유상증자에 나서는 등 재무전략을 대폭 수정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