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집에 불나도 이럴 거냐"…늦장 대응에 뿔난 상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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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난리에 경찰·소방서 업무마비“추석이 코앞인데 하늘도 무심하시지….”
119 신고해도 기약없어 '발동동'
9일 오전 11시 서울 동작구 이수역 인근 남성사계시장. 혼수 가게의 이불과 베개는 거리에 널부러져 있고, 약국에는 약이 든 상자들이 흙탕물에 젖은 채로 뒤엉켜 위태롭게 쌓여있었다.상인들은 밤사이 휩쓸고 간 물폭탄의 흔적을 지우느라 사투를 벌였다. 입구부터 오물로 뒤덮힌 의자, 자전거 등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폭우로 피해를 입은 상인들이 복구작업을 하며 생긴 쓰레기들이다.오전 5시부터 가게에 나와 침수된 가게를 정리하고 있던 한 상인은 “어제 밤 8시부터 지금까지 소방서, 경찰서, 주민센터에 수십번 도움을 요청했지만 기다려달라는 말만 되풀이 했다”며 “하루가 지났는데도 소방차 사이렌 소리 한 번 듣지 못했다”며 울상을 지었다.상인들은 빗물을 조금이라도 빼내기 위해 양동이까지 동원하며 안간힘을 썼다. 기상청에서 10일까지 최대 300mm 이상 비소식을 예보했기 때문이다. 25평 규모로 게임장 운영하는 박모씨(49)는 “게임기 70대가 물에 잠겨 1억원 가량 경제적 손실을 봤다”며 “인근 주민센터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도와줄 수 있는 직원이 없다는 안내를 받아 황당했다”고 말했다.인근에 출동한 소방관들과 상인 사이에서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일부 상인들의 도와달라는 요청에 한 소방관이 “순서를 기다려달라”고 말하자 한 상인이 “당신 집에 불이 나도 기다리라고 말할 수 있냐”며 고성을 지른 것이다. 서울시 소방재난본부 관계자는 “서울시 모든 소방관이 출동해 복구작업에 뛰어들고 있다”며 “소방차 진입이 어려운 지역이 많아 작업이 조금씩 늦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물건이 없어질 우려에 경찰관 도움을 구하는 시민도 있었다. 문모씨(60)가 운영하는 8평 규모의 편의점은 내부에 가득 찬 흙탕물이 빠지면서 물건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는 “아침부터 경찰서와 소방서에 전화했지만 통화 연결도 안됐다”며 “10여년 전에도 이렇게 침수된 적이 있는데 대응이 달라진 게 없다”고 말했다.
권용훈 기자 fac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