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한파에…성장기업 'IPO 자금조달' 급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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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락장에 대형 IPO 잇단 고배하반기 들어서도 기업공개(IPO) 시장이 좀처럼 활기를 찾지 못하고 있다. 올 들어 갑자기 전통적인 자금조달 창구로서 역할을 못하면서 시장 전체 투자 분위기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조(兆) 단위 IPO 대표 기업도 연이어 고전을 면하지 못하면서 분위기를 바꿀 계기를 찾기 어렵다. 그나마 소부장(소재·부품·장비) IPO가 연이어 흥행에 성공하며 ‘가뭄의 단비’가 되고 있다.
올 사상 최고액 기대하다 찬물
넥스트칩·성일하이텍·새빗켐 등
내실 갖춘 소부장 기업들만 선전
○LG엔솔 빼면 IPO 공모액 80% 급감
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7월 말 기준 올해 국내 IPO 공모액은 14조2251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IPO 공모액은 6조6374억원이었다. 하지만 국내 기업공개 사상 최대어였던 LG에너지솔루션(공모액 12조7500억원)을 제외하면 올해 공모액은 1조4751억원에 불과하다.IPO 기업 수도 줄었다. 지난해 7월말까지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에 상장한 기업은 총 49곳(스팩 상장 제외)이었다. 올해는 40곳으로 감소했다.
앞서 업계에서는 올해 IPO 공모액이 30조원을 넘기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바라봤다. LG에너지솔루션을 비롯해 현대엔지니어링, 현대오일뱅크, 카카오엔터테인먼트, SSG닷컴, 컬리 등 조 단위 기업가치를 노리는 기업 10여곳 이상이 증시 입성을 대기하고 있었다.하지만 올해 국내외 주식시장이 하락세로 돌아서자 IPO 시장 역시 차갑게 식었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의 금리 인상 등 긴축 정책과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장기화, 인플레이션에 따른 경기 침체 우려 등이 투자 심리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이에 공모에 나선 대형 IPO 기업은 줄줄이 고배를 마셨다. 올해 현대엔지니어링과 대명에너지, 보로노이, SK쉴더스, 원스토어, 태림페이퍼 등이 수요예측 부진을 이유로 상장을 철회했다. 이 중 보로노이와 대명에너지는 몸값을 40% 이상 낮춰 재도전해 간신히 증시에 입성했다.
침체된 IPO 시장 분위기를 바꿀 ‘게임 체인저’ 후보로 꼽히던 기업들도 줄줄이 발길을 돌렸다. 현대오일뱅크는 거래소의 상장 예비 심사까지 통과하고도 시장 상황을 이유로 상장 계획을 철회했다. 상장 예비 심사 청구를 앞두고 CJ올리브영 역시 상장 작업을 중단했으며, 카카오모빌리티는 주요 주주의 지분 매각을 검토하고 있다.연내 상장을 목표로 했던 SSG닷컴과 비바리퍼블리카, 야놀자 등도 내년 이후로 상장 시기를 미뤘다. 대내외 악재 속에서 무리하게 상장을 추진하기보다는 실적 개선에 집중해 기업가치를 제고하는 쪽으로 전략을 급선회한 모습이다.
○소부장 등 내실 있는 기업 차별화
시장에서는 IPO 시장의 침체된 분위기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IB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까지는 이른바 ‘빅딜’이라면 공모 물량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수요예측 첫날부터 대규모 주문을 넣는 경우가 많았지만, 올해 들어선 마지막까지도 눈치 싸움을 벌이는 경우가 대다수”라며 “조단위 대어급 IPO가 흥행에 실패하면 자연스럽게 중소형 IPO 역시 침체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그나마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들이 선전하며 분위기 반전을 위한 불쏘시개 역할을 하고 있다. 반도체, 2차전지 등 미래 성장성이 확인된 업종인 데다 매년 안정적인 영업이익을 거두고 있다는 점이 투자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는 평가다. 5월 상장한 가온칩스를 시작으로 넥스트칩 레이저쎌 에이치에스피 등 반도체 관련 IPO 기업이 기관 수요예측과 일반 청약에서 모두 1000대 1이 넘는 경쟁률을 확보하며 흥행에 성공했다.그 뒤를 이어 2차전지 관련 기업인 성일하이텍와 새빗켐 에이치와이티씨 등도 성공적으로 증시에 입성했다. 특히 성일하이텍은 국내 증시 역대 최고 기관 수요예측 경쟁률(2269대 1)을 기록했다. 9일~10일 일반 청약을 진행하는 대성하이텍도 기관 수요예측에서 1935대 1을 확보하며 IPO 흥행 열기를 이어갔다. 대성하이텍은 2차전지 배터리 장비에 사용되는 부품을 납품하고 있다.
2차전지 분리막 제조업체인 더블유씨피(WCP)가 침체된 하반기 IPO 시장의 분위기를 반전시킬 카드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더블유씨피는 9월 중순 공모를 진행할 예정이다. 예상 시가총액은 희망 공모가 기준 최대 3조4010억원이다. IPO 업계 관계자는 “성장성이 뚜렷하고 실제 이익을 내고 있는 기업으로만 자금이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최석철 기자 dols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