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우 기자의 키워드 시사경제] 'R'의 정의가 대체 뭐냐…위키피디아 난장판 된 사연

경기침체
미국은 올 들어 경제성장률이 하락하는 와중에도 낮은 실업률을 유지하고 있다. 텍사스주의 한 레스토랑에 붙은 구인광고. /AFP연합뉴스
지난달 말 위키피디아에서 Recession(경기침체)이란 단어를 놓고 한바탕 ‘편집 전쟁’이 벌어졌다. 한 네티즌이 ‘일반적으로 2개 분기 연속 국내총생산(GDP)이 감소하면 경기침체’라는 내용을 추가했는데, 위키피디아 관리자가 ‘출처가 불분명하다’며 지워버린 게 발단이었다. 이후 재등록과 삭제를 반복하며 1주일 만에 180회 넘는 수정이 이뤄졌다. 결국 위키피디아는 한동안 신규 이용자가 편집에 참여할 수 없도록 자물쇠를 채웠다. 미국 경제지 포천은 “나라 전역을 달군 경기침체 논쟁이 인터넷 백과사전으로 번진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에선 경제학회가 공식 판단한다는데…

최근 미국에서는 경제가 하강기에 진입했는지 아닌지를 놓고 갑론을박이 팽팽하다. 통상 시장이 ‘기술적 경기침체’로 간주하는 두 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이 현실화하면서다. 미국 GDP 증감률은 올 1분기 -1.6%에 이어 2분기 -0.9%(연율 기준)를 기록했다. 다만 이 기준은 대다수 전문가와 언론이 그렇게 본다는 것이지 공식적인 경기침체를 의미하진 않는다.미국에서 경기침체 여부를 판단하는 곳은 경제학자들의 연구 모임인 미국경제학회(NBER) 산하 경기사이클판정위원회(BCDC)다. 이들은 경기침체를 ‘경제 전반으로 퍼지고 몇 달 이상 지속되는 경제활동의 커다란 감소’로 규정한다. 채점표처럼 딱 떨어지는 기준이 있는 게 아니라 소득, 지출, 고용, 생산 등을 종합적으로 보고 판단한다. 이 단체가 ‘오피셜’ 경기침체를 선언하기까지 1년 이상 걸리는 경우도 많다.

역사적으로 두 분기 연속 역성장은 공식적인 경기침체 선언으로 이어진 적이 많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례도 있는 만큼 GDP만 보고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견해가 있다. 위키피디아의 편집 전쟁 역시 이렇게 정리됐다. “경기침체의 정의는 국가와 학자에 따라 다양하지만, 2개 분기 연속 실질GDP 감소를 일반적으로 사용한다.”

보통은 “두 분기 연속 역성장하면 경기침체”

미국 정부는 현 상황이 경기침체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실업률이 사실상 완전고용 수준인 3%대를 유지(7월 3.5%)하는 데다 실물경제의 3분의 2를 떠받치는 소비가 여전히 성장세(2분기 1.0%)라는 점이 주된 근거다.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도 “미국 경제에서 아주 잘 기능하고 있는 영역이 너무나 많다”며 “경기침체 상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경제신문 기자
반면 아직은 아니어도 조만간 경기침체를 피할 수 없다는 비관론도 만만치 않다. Fed의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으로 자금 조달 비용이 늘어난 기업들이 채용을 줄여나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 재무장관 출신인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는 “경제가 연착륙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위험을 외면한다면 나중에 더 큰 고통이 따를 것”이라고 했다. 특히 건설, 부동산 등 금리에 민감한 업종이 출렁거리면 경제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