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폭우 속의 義人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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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장 장마에 폭우까지 겹친 2020년 8월 섬진강 제방 붕괴로 마을 전체가 물에 잠긴 전남 구례읍. 순식간에 불어난 물로 수심이 2m를 넘었다. 인근에서 작업 중이던 최봉석·손성모 씨는 소형 낚시 보트를 타고 2층 창가와 지붕에서 구조를 요청하던 노인들을 대피시켰다. 이들은 보트가 파손된 줄도 모른 채 6시간 이상 사투를 벌이며 마을 사람 40여 명을 구조했다.
그해 휴가 중이던 박승현 하사는 삼척에서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피서객 2명을 맨몸으로 구조했다. 부산에서는 한 젊은이가 폭우로 침수된 지하차도의 물속으로 뛰어들어 배수로의 이물질을 제거함으로써 대형 사고를 막았다. 모두 구명조끼도 없이 스스로 재난 현장에 뛰어든 의인(義人)이다.지난 8~9일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진 수도권에서도 이 같은 ‘시민 영웅’의 활약이 빛났다. 20대 군무원 표세준 씨는 서울 서초동 6차선 도로에서 목까지 차오른 물에 고립된 여성 운전자를 발견하고 헤엄쳐 다가가 플라스틱 주차금지대를 잡게 하며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킨 뒤 말없이 현장을 떠났다.
강남역 인근에서는 한 남성이 맨손으로 배수관 뚜껑을 들어 올린 뒤 구멍을 막고 있던 쓰레기를 하나하나 걷어내 물길을 열었다. 이 덕에 빗물이 하수구로 금세 빠져나갔다. 의정부 용현동에서도 중년 남성이 배수로에 쌓인 비닐 등을 빼냈다. 이를 본 여성이 종량제봉투를 들고 와 도왔다. 두 사람은 물길이 막히면 다시 뚫는 일을 반복했다.
경기 의왕시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는 인근 산에서 쓸려 내려온 흙 때문에 산사태가 발생할 상황이 벌어지자 새벽 1시에 주민 40여 명이 장대비를 뚫고 긴급 방어선을 구축했다. 물폭탄에 오도 가도 못하던 택시기사를 구한 ‘새벽 의인’도 있었다. 소셜미디어에서는 이들 ‘시민 히어로’ ‘강남 슈퍼맨’ ‘의정부 영웅’의 용기에 찬사와 고마움을 표시하는 댓글이 온종일 넘쳤다.의인이란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남을 도우려 의로움을 행하는 사람이다. 이들이 있어 우리는 모진 세파에 휩쓸리지 않고 희망을 꿈꿀 수 있다. 러시아 문호 톨스토이도 “인생이란 폭우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퍼붓는 빗속에서 춤추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며 “자신을 희생하는 의인들에 의해 인류 사회는 개선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그해 휴가 중이던 박승현 하사는 삼척에서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피서객 2명을 맨몸으로 구조했다. 부산에서는 한 젊은이가 폭우로 침수된 지하차도의 물속으로 뛰어들어 배수로의 이물질을 제거함으로써 대형 사고를 막았다. 모두 구명조끼도 없이 스스로 재난 현장에 뛰어든 의인(義人)이다.지난 8~9일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진 수도권에서도 이 같은 ‘시민 영웅’의 활약이 빛났다. 20대 군무원 표세준 씨는 서울 서초동 6차선 도로에서 목까지 차오른 물에 고립된 여성 운전자를 발견하고 헤엄쳐 다가가 플라스틱 주차금지대를 잡게 하며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킨 뒤 말없이 현장을 떠났다.
강남역 인근에서는 한 남성이 맨손으로 배수관 뚜껑을 들어 올린 뒤 구멍을 막고 있던 쓰레기를 하나하나 걷어내 물길을 열었다. 이 덕에 빗물이 하수구로 금세 빠져나갔다. 의정부 용현동에서도 중년 남성이 배수로에 쌓인 비닐 등을 빼냈다. 이를 본 여성이 종량제봉투를 들고 와 도왔다. 두 사람은 물길이 막히면 다시 뚫는 일을 반복했다.
경기 의왕시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는 인근 산에서 쓸려 내려온 흙 때문에 산사태가 발생할 상황이 벌어지자 새벽 1시에 주민 40여 명이 장대비를 뚫고 긴급 방어선을 구축했다. 물폭탄에 오도 가도 못하던 택시기사를 구한 ‘새벽 의인’도 있었다. 소셜미디어에서는 이들 ‘시민 히어로’ ‘강남 슈퍼맨’ ‘의정부 영웅’의 용기에 찬사와 고마움을 표시하는 댓글이 온종일 넘쳤다.의인이란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남을 도우려 의로움을 행하는 사람이다. 이들이 있어 우리는 모진 세파에 휩쓸리지 않고 희망을 꿈꿀 수 있다. 러시아 문호 톨스토이도 “인생이란 폭우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퍼붓는 빗속에서 춤추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며 “자신을 희생하는 의인들에 의해 인류 사회는 개선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