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혼 배우자 '총수 친족' 지정에…SK·SM그룹 규제 영향권

공정위, 36년 만에 총수 친족범위 대폭 개편

계열사 주식 보유현황 공시해야
사익편취 금지 규제도 적용 받아

친족 수 8938명→4515명으로
계열사 수는 거의 변동 없을 듯

中企 계열편입 유예 기준도 완화
R&D 비중 5%→3% 이상으로
공정거래위원회가 10일 예고한 대로 공정거래법 시행령이 개정되면 대기업집단의 총수(동일인) 친족은 약 9000명에서 4500명 수준으로 절반가량 줄어든다. 총수의 친족으로 분류되는 혈족과 인척의 범위를 줄이기로 했기 때문이다. 1986년 공정거래법 도입 후 36년 만에 규제를 대폭 완화한 것이다. 하지만 총수 관련 규제를 받는 계열사 수는 거의 변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개정안대로면 총수의 사실혼 배우자가 총수의 친족으로 새로 포함된다. 이에 따라 총수 친족 규제를 둘러싼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친족, 사익편취 규제 대상

공정위는 매년 대기업집단을 지정하며 계열사 현황은 물론 ‘친족’과 ‘관련자’ 등 특수관계인의 계열사 주식 보유 현황을 파악해 제출할 의무를 총수에게 부과하고 있다. 총수가 자료 제출을 누락하거나 허위자료를 내면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총수의 친족은 사익편취(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에도 해당한다.개정안에 따르면 총수의 사실혼 배우자 중 법률상 친생자 관계인 자녀가 있는 경우 총수의 친족에 포함된다. 시행령이 개정되면 SM그룹 2대 주주 격인 김혜란 씨가 내년 대기업집단 지정 때 총수의 친족과 동일인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크다. 우오현 SM그룹 회장의 사실혼 배우자인 김씨는 SM그룹 지주회사 격인 삼라와 우방산업 지분을 각각 12.31%, 삼라마이다스 자회사인 동아건설산업 지분을 5.68% 보유하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사실혼 배우자 김희영 씨와 그가 이사장을 맡고 있는 T&C재단은 ‘동일인 관련자’로 돼 있지만 현행법상 친족은 아니다. 하지만 개정안대로면 김 이사장은 내년 대기업집단 지정 때 총수의 친족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사익편취 규제를 추가로 받는다. SK 계열사들이 총수 일가가 20% 이상 지분을 보유한 계열사에 일감 몰아주기를 할 경우 제재를 받는데, 친족 지정 시 김희영 씨도 총수 일가에 포함된다.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사실혼 배우자 서미경 씨는 신 전 회장이 사망한 상태라 총수의 친족 여부 검토 대상이 되지 않는다. 다만 서씨의 자녀는 이미 법률상 롯데가의 일원으로, 친족으로 신고돼 있다.개정안엔 친족 범위를 ‘혈족 6촌·인척 4촌 이내’에서 ‘혈족 4촌·인척 3촌’ 이내로 줄이는 방안도 담겼다. 5촌 당숙(할아버지와 형제의 자녀)과 6촌 재종형제(당숙의 자녀) 등 ‘얼굴도 알기 힘든’ 사람은 친인척에서 빠지는 것이다.

개정안대로라면 현재 60개 집단 8938명인 총수의 친족은 4515명으로 절반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하지만 계열사 수는 3~4개에 그칠 것으로 알려졌다. 황원철 공정위 기업집단국장은 “현행 제도 내에서도 친족이 독립 경영하는 회사는 분리 친족으로 인정받아왔기 때문에 영향을 받는 숫자가 적은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 총수’ 여전히 불씨

외국인 총수 지정 문제는 여전히 논란의 불씨로 남았다. 공정위는 한국계 외국인이 지배하는 기업집단의 등장과 외국 국적을 지닌 총수 2~3세 증가를 감안할 때 외국인 총수 지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외국인을 총수로 지정할 경우 통상 마찰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을 공정위에 전달했다.개정안에는 대기업이 투자한 중소·벤처기업이 대기업집단 편입을 7~10년간 유예받을 수 있는 매출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 요건을 5% 이상에서 3% 이상으로 완화하는 방안도 담겼다. 윤수현 공정위 부위원장은 “시행령 개정안이 통과되면 기업집단의 과도한 의무가 완화되고 규제의 실효성과 형평성도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기업 부담을 완화하는 방향이라 타당하다”면서도 “총수의 친족이 공정위에 자료를 제출할 때 누락이나 오류가 있어도 총수에게 책임 소재를 묻는 구조는 동일하다”고 지적했다. 주진열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 토론회에서 “한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의 경쟁법은 대기업집단 자체를 규제하지 않는다”고 했다.

김소현 기자 alp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