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만원 해외여행 취소했더니 수수료 470만원 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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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불도, 양도도 "절대 안 돼"부모님의 칠순을 맞아 자녀(9살·6살)와 함께 사이판으로 6인 가족휴가를 떠나려던 A씨. 한 대형 여행사의 ‘에어텔(항공+호텔)’ 상품을 예약해 800만원가량을 결제했다. 하지만 A씨의 배우자가 출발 9일 전 질병 진단을 받아 4주간의 치료를 권고받았다.
해외여행 '취소 수수료' 폭탄
어쩔 도리가 없는 상황에 A씨는 여행사에 “질병으로 인해 여행을 취소해야 한다”는 전화를 걸었다. 전화 너머 상담사는 “진단서 제출 시 본인은 100% 환불이지만, 나머지 5인은 전액의 70%를 수수료로 내야 한다”는 답변을 내놨다. 약 470만원의 수수료 폭탄을 떠안은 셈이다.
몇 배나 수수료 높은데 … 소비자만 모르는 '특별약관' 주의
A씨의 '특별약관'으로 인한 수수료 명목은 5명 분의 비행기 좌석 100%, 그리고 한 객실 분의 호텔 숙박료 전액이다. 항공의 경우, 일반 약관에 비해 수수료율이 30%가량 높다. 구매한 상품이 전세기 상품이었기 때문이다. 전세기의 경우 여행사가 직접 항공사를 통해 비행기의 전체 혹은 일부 좌석을 선구매하는 방식으로 거래가 이뤄진다.여행사 측에서는 “고객이 취소한 좌석이 미판매됐을 때 그 손해를 여행사가 떠안아야 한다”며 “이것이 고객에게 높은 수수료를 청구하는 이유”라고 답했다.
고객은 이러한 특별약관의 내용을 쉽게 알아챌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여행사는 ‘독점 전세기 상품’으로 홍보만 할 뿐, 적용되는 약관이 다르다는 것은 눈에 띄게 설명하지 않는다. 이후 전자서명을 받을 때에도 일반 약관과 달리 항공 수수료율이 높다는 설명도 없었다. 전세기의 이점만 보고 구매한 고객은, 취소할 때 단 한푼도 돌려받지 못하게 된다. 70% 수수료를 뗀 환불금 입금까지 완료한 여행사 측에서 집요한 가족관계증명서 제출 요구가 이어지자 혹시나 싶어 호텔 측에 직접 전화해본 A씨. 그런데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됐다. 여행사 측이 질병 사유로 호텔 측에 전액 환불을 요청하고 있었던 것. 호텔 측은 객실 1개는 이미 환불 통보했고 나머지 1개도 A씨 사정을 듣고 나자 무료 취소를 결정했다.
여행사 측에 항의했지만 오히려 “수수료 금액은 동일하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객실에 발생한 수수료가 0원으로 줄었는데도 납부해야 하는 수수료의 전체 금액에는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여행사 관계자는 “이것 또한 약관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고객이 호텔 취소 시 발생하는 수수료에 대해서 동의 서명을 했다”라며 “호텔에서 직접 무료취소를 해줬다고 해서 수수료를 줄일 수 없다”고 했다. 현지 숙박세 등 비용 인상으로 손해를 볼 때 여행사도 고객에게 인상분을 청구하지 않는 만큼, 취소 시에도 약관만을 따른다는 것. 고객에게 손해를 감수하라는 것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취소땐 수수료, 양도도 '절대 불가' … 소비자는 '진퇴양난'
A씨는 대책으로 ‘양도’를 택했다. 비행기와 호텔 모두 타인에게 넘겨주기로 했다. 수수료로 이른바 ‘허공에 날리는’ 돈이 없게끔 하고자 했던 것. 하지만 여행사로부터 이 방식도 ‘절대 불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예약했던 투숙객 외 타인의 이름으로 변경해 호텔 체크인과 항공기 탑승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여행사 측은 “우리도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관계자는 “양도 불가 조항은 호텔과 항공사에서 정하는 것이지, 여행사가 정한 기준이 아니다”며 “협력사에서 정한 대로 따를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항공의 경우, 어떤 조건에서도 발권 후 이름을 변경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발권 전이라 해도 철자가 틀리는 경우가 아니면 타인의 이름으로 변경하는 것은 안 된다. 전세기 상품뿐 아니라 일반 개별항공 상품도 마찬가지다. 호텔도 상황은 비슷하다. 특히 관광객이 몰리는 여름철 휴양지 호텔의 경우, 손해보는 것이 전혀 없음에도 ‘무조건 양도 불가’라는 조항을 내세우는 경우가 다반사다. 한 고객이 취소하더라도 그 객실을 채울 다른 고객이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항 또한 A씨 등 고객들이 예약할 때 사전 공지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사전 고지 없는 약관과 조항 때문에 휴가철 ‘취소 수수료 폭탄’을 맞는 소비자는 계속 늘 전망이다.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