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연속 적자에 생산 반토막인데…르노코리아도 임피제 소송 '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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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강도 그대로인데 임금 줄어대법원 판결에서 촉발된 임금피크제 집단소송이 제조업 전반으로 급속히 확산하고 있다. 지난 5월 ‘사업장별 내용에 따라 임금피크제는 무효가 될 수 있다’는 취지의 대법 판결이 나오면서 노동조합들이 업종을 불문하고 소송전에 뛰어들고 있다. 특히 ‘임금피크제 무효’를 외치는 노동계 목소리가 국내 산업계 파급력이 큰 자동차산업에까지 불어닥치면서 혼란이 더욱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
1인당 수천만원 돌려달라"
통상임금 소송까지 준비
"정년연장하며 노사합의로 도입
이제와서 무효라니" 르노 당황
車업계 전체로 소송 확산 우려
소송전 휩싸인 ‘적자’ 르노코리아
11일 완성차 업계에 따르면 르노코리아 노조는 임금피크제를 적용받으면서 ‘노동 강도 감소’가 없었고, ‘업무 전환’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취지로 1인당 수천만원 규모의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업계에서 짐작하는 소송 규모인 3000만원을 참여자 55명이 돌려받을 경우 소송가액은 17억원 정도지만 산업계 파급력은 이 금액과 비교할 수 없을 거란 우려가 나온다.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르노코리아 직원뿐 아니라 현대차·기아를 비롯한 또 다른 완성차 업체, 부품사들까지 소송전에 뛰어들 수 있어서다.르노코리아 임금피크제는 만 55세부터 매년 직전 연봉의 10%를 감액하는 조건이다. 르노코리아 추정 평균 연봉인 6200만원에서 5년간 임금피크제를 적용받을 경우를 단순 계산하면 마지막 해 임금은 대략 3660만원 선이다. 이에 대해 노조는 “3년만 지나도 기본급 기준으로는 최저임금 수준”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회사 측은 “정년을 연장하는 조건으로 노사 합의하에 도입한 제도”라며 “노조도 정년 연장 혜택을 감안해 임금 삭감을 받아들였다”고 반박했다.올해 스테판 드블레즈 신임 사장 취임 후 생산량 회복에 안간힘을 쓰고 있는 르노코리아에 소송전이 불거지면서 회사 측은 또 한번 ‘노조 리스크’에 직면하게 됐다. 르노코리아는 2020년과 지난해 각각 796억원, 80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2017년 26만4000대에 달했던 르노코리아 국내 생산량은 지난해 12만8000대 수준으로 반토막 났다. 내수와 수출을 합친 판매량 또한 2018년 22만7562대에서 지난해 13만2769대로 급감했다. 크리스토프 부테 르노코리아 최고재무책임자(CFO)는 공개석상에서 “스페인 바야돌리드공장의 시급은 부산공장의 62%에 불과하다”며 국내 생산성 문제를 꼬집기도 했다.하지만 르노코리아 노조는 임금피크제 소송뿐 아니라 통상임금 소송까지 준비하고 있다. 통상임금이 부당하게 적게 책정돼 각종 수당에서 손해를 봤으니 차액을 회사 측이 내놓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르노코리아 근로자 1672명이 대거 참여한 통상임금 소송에는 특히 현재 노조 집행부의 반대 세력인 ‘새미래노동조합’까지 가세해 사측의 부담을 키우고 있다.
“임피 무효” 금융권 넘어 제조업 확산
대법의 임금피크제 무효 판결 이후 소송전은 전 업종으로 확산하고 있다. 고액 연봉 때문에 임금피크제가 활발히 적용돼왔던 금융권에서는 국민은행 노조가 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제조업에서도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근로자 131명이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가 아니다”며 소송을 냈다. 하지만 사측은 “노사 합의를 거쳐 정년을 연장하는 임금피크제를 시행하고 있다”며 정면충돌 양상을 보이고 있다.민주노총 소속 포스코지회 또한 임금피크제 무효 소송을 내겠다며 참여 직원을 모집 중이다. 포스코는 지난해 노사 합의로 만 58세까지는 임금의 100%를 그대로 지급하고, 정년 전 마지막 해인 만 59세에만 10%를 감액해 90% 임금을 지급하는 임금피크제 내용을 도입했다. 그러나 노조 측은 해당 합의 이전의 감액분을 모두 돌려받아야 한다며 소송을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포스코 측은 “(지난 5월 대법 판결 대상이었던) 근로자의 정년 연장 없이 임금을 삭감하는 사례와는 다르다”고 강조했다.임금피크제 무효 소송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면서 산업계에선 대법원 판결에 대한 볼멘소리가 조심스럽게 나온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법원 판결은 존중한다”면서도 “현장에서는 너도나도 일단 소송을 걸고 보자는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박한신/곽용희 기자 p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