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로 중국에 손벌리지 말라"…반면교사 주문한 국가는? [글로벌 핫이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22년 7월 27일 20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20차 당대회) 준비를 위해 베이징에서 열린 성부급(省部級·성장 및 장관급) 지도간부 세미나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시 주석은 지난 10년간 임기의 성과를 자찬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경제신문의 글로벌 핫이슈입니다. 이번엔 아시아 지역의 소식을 다뤄보려고 합니다.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프로젝트, 다들 한번쯤은 들어보셨죠? 중국 주도로 고대 동서양의 교통로인 실크로드를 재현하겠다는 구상입니다. 2050년이 되기 전에 말이죠. 시진핑 국가주석이 2013년 고안했는데요, 현재까지 140여개국의 참여를 이끌어내며 활발히 추진되고 있습니다.

중국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중남미의 개발도상국들을 주로 공략합니다. 중국 자본을 대규모로 빌려줘 이들 국가의 열악한 인프라를 개선하겠다는 취지로요. 개발 차관을 제공한 뒤 자국 인력과 기업을 투입해 건설하는 것이니 돈도 벌고, 또 이들 국가와 경제·무역 및 외교 관계를 돈독히 다지면 함께 반미(反美) 전선을 구축할 수 있습니다. '일석이조'의 야욕이죠. 그런데 최근 들어 곳곳에서 파열음이 일기 시작하는 모양새입니다. 중국에 막대한 빚을 진 개도국들이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반중(反中) 심리가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했다는 분석이죠.최근 무스타파 카말 방글라데시 재무장관이 파이낸셜타임스(FT)와 진행한 인터뷰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방글라데시는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가장 먼저 환영한 아시아 국가였습니다. 현재 해외채무의 6%에 해당하는 40억달러 가량을 중국에 지고 있습니다. 카말 장관은 "다른 개도국들은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통해 빚을 지는 방식으로 인프라 투자에 나서는 방안을 재고하라"고 경고했습니다.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과 경제성장 둔화 우려가 신흥시장에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는 만큼 일대일로 프로젝트 참여에 더욱 신중해야 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무스타파 카말 방글라데시 재무장관(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출처=hindustantimes
특히 최근 스리랑카의 국가 부도를 거론했는데요. 올해 5월 18일 공식적으로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진 스리랑카를 콕 짚은 거죠. 그는 "잘못된 결정이 개도국들을 부채의 고통으로 몰아넣고 있다"며 "스리랑카 사태를 지켜 본 국가들은 이제 일대일로 프로젝트가 안겨다 줄 '빚'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또 "모든 사람들이 중국을 비난하고 있다"며 "중국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스리랑카의 부도는 그들의 책임임이 명확하다"고 거듭 날을 세웠습니다.

또 눈여겨 볼 대목은 '시점'입니다. 카말 장관의 발언은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방글라데시를 방문해 셰이크 하시나 총리를 비롯한 정부 관계자들을 만난 직후 나왔습니다. 왕이 부장은 방글라데시 순방 직후 "중국은 방글라데시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장기적 전략 파트너"라고 자칭했는데, 방글라데시의 국가 재정을 총괄하는 재무장관은 딴소리를 하고 있으니 말이죠. 내막이야 어찌됐든, 왕이 부장은 뒷통수가 조금 아프겠습니다.어쩌면 방글라데시는 스리랑카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스리랑카에선 디폴트 이후에도 성난 민심이 계속 들끓었고, 결국 지난달 수도 콜롬보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시위대가 대통령 집무동과 관저로 난입하고 총리 관저도 불태웠구요. 결국 고타바야 라자팍사 당시 대통령이 싱가포르로 도피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겪었습니다. 지금 국제통화기금(IMF)과 구제금융 지원 협상을 벌이고 있지만, 앞날이 쉽지 않아 보입니다.
국가 부도 이후 반정부 시위가 계속되는 스리랑카. /사진=EPA
스리랑카는 현재 국가 부채 중 22%에 달하는 110억달러가 중국 차관입니다. 중국에 진 막대한 빚 때문에 굴욕을 겪은 적도 있습니다. 2017년 남부 함반토타 항구 건설 과정에서 중국에 빌린 14억달러의 차관을 갚지 못해 결국 중국에 항만 운영권을 99년간 넘겨줘야 했었죠. 함반토타 항만 사건은 "일대일로 사업은 중국이 쳐놓은 '채무 덫'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히고 있습니다.

방글라데시는 스리랑카와 다른 길을 선택했던 적이 있습니다. 중국이 다른 나라 항만 거점 개발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남중국해와 인도양, 아프리카를 잇는 항구들을 차지해 에너지 수송로를 확보하려는 구상 때문인데요, 인도를 포위하듯 항만 거점을 개발한다고 해서 중국의 '진주 목걸이' 전략이라고 불렸었습니다.중국은 방글라데시 벵골 만에 있는 소나디아 항구 건설에도 욕심을 냈었습니다. 방글라데시는 2020년 이 프로젝트를 무효화했습니다. 대신 소나디아에서 불과 25㎞ 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마타바리항을 건설하는 데에 일본 자금을 끌어다 쓰기로 했죠. 중국에 손을 덜 벌리고 대신 일본을 선택한 건데…, 지금의 스리랑카 사태를 보면서 내심 안심하고 있지 않을까요?

전 세계 중국 돈을 빌려 쓴 국가들 사이에서 반중 심리가 커지는 건 아시아 국가들뿐만이 아닙니다. 최근 대통령 선거가 진행됐던 동아프리카 케냐에선 대선 기간 내내 반중 이슈가 후보자들의 공약을 가른 최대 쟁점이었다고 하네요. 반미 전선을 구축하려다 반중 전선을 만든 셈이 되진 않을지, 중국 정부의 고심이 깊어지는 요즘일 것 같습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