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트럼프 비웃던 FT 편집국장 "엘리트 편견에 빠져 당선 생각도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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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있다는 착각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2016년 대선 후보 시절 TV 토론에서 ‘빅리(bigly)’라는 말을 썼다. 어린아이나 쓸 법한 엉터리 단어였다. 미국 엘리트들은 “저렇게 무식한 사람이 대통령이 될 리 없다”며 비웃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미리 예견해 세계적인 스타 기자가 됐고, 당시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의 미국판 편집국장으로 재직 중이던 질리언 테트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질리언 테트 지음
문희경 옮김
어크로스
344쪽│1만7800원
하지만 엘리트주의에 신물이 나 있던 미국 서민들은 트럼프에게 강한 친밀감을 느꼈다. 트럼프가 ‘단순무식한 말’을 할수록 지지율은 치솟았다. 테트는 “당시 주류 언론들이 대선 결과 예측에 실패한 건 언론인이 자신들의 편견을 당연시하고 진짜 유권자의 마음에는 무관심했기 때문”이라고 회고한다.테트는 저서 <알고 있다는 착각>에서 “현대 사회의 대부분 실패는 자신이 상황을 제대로 알고 있다는 착각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책은 이런 실패 사례들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각종 글로벌 기들의 실패, 각국 정부의 코로나19 방역 실패 등 여러 경영·경제 케이스와 저자가 직접 취재한 정책 현장의 일화 등을 소개한다.
인류학 박사인 저자가 제안하는 해결책은 “인류학을 통해 여러 문제를 다른 각도로 보라”는 말로 요약된다. 예컨대 여러 경영학 연구에 따르면 직원들을 출근시키는 회사가 재택근무를 하는 회사보다 평균적으로 나은 성과를 낸다. 이런 현상은 인류학의 ‘센스메이킹’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센스메이킹이란 사람들이 잡담 등 사소한 대면 상호작용을 통해 상황을 이해하게 된다는 뜻이다.
‘인류학자의 사고법’이라는 책의 부제를 보고 깊이 있는 인문학적 통찰을 기대한 독자라면 실망할 수도 있다. 인류학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저자가 인류학 박사논문을 쓸 때의 경험담과 취재 무용담의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외국에서 사업할 때는 현지인의 특성을 잘 이해해야 한다” 등 저자가 인류학적 사고의 전유물처럼 언급하는 문구 대부분은 경영·경제 등 다른 사회과학에서 수십 년 전부터 가르치고 있는 내용이다. 10편에 달하는 각 에피소드는 통일성 없이 나열돼 있다는 인상을 준다.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미국 월스트리트에 흐르던 기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도입 초창기 미국 재계 인사들의 분위기 등 현장감 있는 기록을 읽을 수 있는 건 장점이다. 상세한 취재 경위가 적혀 있어 언론학도들이 참고할 만하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