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아 로버츠가 오페라를 보다 눈물지은 까닭은[김희경의 영화로운 예술]
입력
수정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여인 비비안(줄리아 로버츠). 그는 매력적인 사업가 에드워드(리차드 기어)와 함께 데이트를 즐깁니다. 그러던 중 오페라 한편을 보러 가는데요.
비비안은 난생 처음 보는 오페라를 낯설어 합니다. 하지만 이내 그 매력에 흠뻑 빠집니다. 공연이 끝나갈 때쯤엔 눈시울을 붉히죠. 에드워드는 그런 비비안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다, 마음이 복잡해진 듯 애잔한 눈빛을 보냅니다. 게리 마샬 감독의 영화 '귀여운 여인'(1990) 속 한 장면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 영화를 사랑하고, 기억하실 겁니다. 해당 장면에서 빨간 드레스를 입고 설레는 표정으로 오페라를 바라보던 비비안의 모습도 정말 인상적이었죠.
그런데 오페라를 재밌게 보던 비비안은 왜 눈시울을 붉혔을까요. 에드워드는 왜 그렇게 비비안을 바라봤을까요.
'라 트라비아타' 중 '축배의 노래'. /메트로폴리탄오페라 유튜브 채널 두 사람이 함께 본 오페라는 이탈리아 출신의 음악가 주세페 베르디(1813~1901)의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입니다. '춘희'라는 제목으로도 많이 알고 계신 작품이죠. 베르디의 대표작이자, 세계에서 가장 많이 공연된 오페라로 꼽힙니다.
오페라의 내용을 알고 나면 두 사람의 행동이 이해되실 겁니다. 오페라의 원작은 알렉산더 뒤마 2세의 동명 소설입니다. 매춘부 비올레타가 귀족 청년 알프레도를 만나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담았죠. 두 사람은 열렬히 사랑하지만, 알프레도의 아버지로 인해 헤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비올레타는 결국 폐결핵에 걸려 죽음을 맞이합니다.
영화 속 비비안은 비올레타와 유사점이 많습니다. 비비안도 길거리를 전전하는 매춘부로 나옵니다. 에드워드를 만나 사랑하게 되는 점도 비슷합니다. 비비안의 이름도 비올레타에서 따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비비안이 오페라를 보며 눈시울을 붉힌 것은 비올레타에 동질감을 느끼고 감정 이입을 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에드워드는 그 슬픔을 알고 애틋하게 바라본 겁니다. 이 작품을 만든 베르디는 '오페라의 왕'이라 불릴 만큼 다양한 오페라를 만들었습니다. '리골레토' '아이다' '나부코' 등 그의 작품들은 오늘날까지도 자주 무대에 오르고 있습니다. '리골레토' 속 '여자의 마음'이란 아리아도 많은 분들이 좋아하십니다. "시간 좀 내주오. 갈 데가 있소"라는 가사로 각색돼 국내 광고 음악으로도 사용됐죠.
'리골레토' 중 '여자의 마음'./메트로폴리탄오페라 유튜브 채널 베르디의 작품 중 '라 트라비아타'는 그의 인생 자체를 담은 오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사랑 이야기를 그렸기 때문이죠. 베르디는 무려 12년 동안의 사귀었던 여인이 있었습니다. 소프라노였던 주세피나 스트레포니입니다.
그는 스트레포니를 만나기 전, 다른 여성과 결혼을 해 두 자녀를 두었습니다. 그런데 결혼 4년 만에 부인과 자녀들이 모두 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베르디는 큰 충격을 받고 슬픔에 빠졌습니다. 스트레포니는 그런 베르디의 곁을 묵묵히 지켰고,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됐습니다.
두 사람이 만난 게 된 것은 오페라 덕분이었습니다. 베르디가 친구의 요청으로 오페라 '나부코'를 만들게 됐는데, 이 작품에 스트레포니가 출연하게 됐습니다.
스트레포니는 원래 유명하고 인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결혼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전 연인의 아이들을 낳게 됐습니다. 이를 이유로 인기를 잃어갔는데요.
하지만 베르디의 오페라로 다시 재기에 성공했습니다. 베르디도 이 작품을 하며 고통을 딛고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위로가 되어줬습니다. 그런데 베르디의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은 두 사람 사이를 크게 반대했습니다. 스트레포니의 과거 때문이었죠. 스트레포니 스스로도 자신이 베르디의 부인이 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 관계 발전을 주저했습니다.
하지만 베르디는 절대적인 믿음과 깊은 사랑으로 그의 곁을 지켰습니다. 부모의 반대에도 헤어지지 않았죠. 온갖 소문을 만들어낸 마을 사람들도 멀리 했습니다. 이후엔 스트레포니와 함께 마을을 떠나 시골로 향했습니다.
베르디는 이 과정에서 느꼈던 심적 고통, 그럼에도 굳건히 지켜온 사랑을 가득 담아 '라 트라비아타'를 만들었습니다. 마흔 살이 되던 해에 첫 공연을 열어,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펼쳐 보였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초연은 실패했습니다. 당시 관객들은 이 오페라가 지나치게 실험적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베르디는 유연한 태도로 작품을 일부 수정했고, 재연은 대성공을 거뒀습니다.
작품의 주요 아리아도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중 '축배의 노래'는 광고에도 사용돼 많은 분들이 잘 알고 계십니다.
“즐기자, 술잔과 노래와 웃음이 밤을 아름답게 꾸민다. 이 낙원 속에서 우리에게 새로운 날이 밝아온다.” 이 아리아는 오페라 초반에 나오는 곡으로, 귀족들이 한바탕 화려한 파티를 열어 향락을 즐기는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베르디가 46살이 되던 해, 두 사람은 드디어 결혼을 했습니다. 동거했던 12년을 포함해 무려 50여년 동안 서로 아끼고 사랑했죠. '라 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가 비극적으로 죽어갔던 것과 다른 해피엔딩입니다. 연인 뿐 아니라 가족, 친구, 동료 등 다양한 관계를 이어가는 법을 베르디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라 트라비아타'는 '길을 잃은 여인'이란 뜻의 이탈리아어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길을 잃지 않게 등불이 되어주고, 묵묵히 옆을 지키는 것. 그것이 함께 해피엔딩을 만들어 가는 법이 아닐까요.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비비안은 난생 처음 보는 오페라를 낯설어 합니다. 하지만 이내 그 매력에 흠뻑 빠집니다. 공연이 끝나갈 때쯤엔 눈시울을 붉히죠. 에드워드는 그런 비비안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다, 마음이 복잡해진 듯 애잔한 눈빛을 보냅니다. 게리 마샬 감독의 영화 '귀여운 여인'(1990) 속 한 장면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 영화를 사랑하고, 기억하실 겁니다. 해당 장면에서 빨간 드레스를 입고 설레는 표정으로 오페라를 바라보던 비비안의 모습도 정말 인상적이었죠.
그런데 오페라를 재밌게 보던 비비안은 왜 눈시울을 붉혔을까요. 에드워드는 왜 그렇게 비비안을 바라봤을까요.
오페라의 내용을 알고 나면 두 사람의 행동이 이해되실 겁니다. 오페라의 원작은 알렉산더 뒤마 2세의 동명 소설입니다. 매춘부 비올레타가 귀족 청년 알프레도를 만나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담았죠. 두 사람은 열렬히 사랑하지만, 알프레도의 아버지로 인해 헤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비올레타는 결국 폐결핵에 걸려 죽음을 맞이합니다.
영화 속 비비안은 비올레타와 유사점이 많습니다. 비비안도 길거리를 전전하는 매춘부로 나옵니다. 에드워드를 만나 사랑하게 되는 점도 비슷합니다. 비비안의 이름도 비올레타에서 따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비비안이 오페라를 보며 눈시울을 붉힌 것은 비올레타에 동질감을 느끼고 감정 이입을 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에드워드는 그 슬픔을 알고 애틋하게 바라본 겁니다. 이 작품을 만든 베르디는 '오페라의 왕'이라 불릴 만큼 다양한 오페라를 만들었습니다. '리골레토' '아이다' '나부코' 등 그의 작품들은 오늘날까지도 자주 무대에 오르고 있습니다. '리골레토' 속 '여자의 마음'이란 아리아도 많은 분들이 좋아하십니다. "시간 좀 내주오. 갈 데가 있소"라는 가사로 각색돼 국내 광고 음악으로도 사용됐죠.
그는 스트레포니를 만나기 전, 다른 여성과 결혼을 해 두 자녀를 두었습니다. 그런데 결혼 4년 만에 부인과 자녀들이 모두 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베르디는 큰 충격을 받고 슬픔에 빠졌습니다. 스트레포니는 그런 베르디의 곁을 묵묵히 지켰고,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됐습니다.
두 사람이 만난 게 된 것은 오페라 덕분이었습니다. 베르디가 친구의 요청으로 오페라 '나부코'를 만들게 됐는데, 이 작품에 스트레포니가 출연하게 됐습니다.
스트레포니는 원래 유명하고 인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결혼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전 연인의 아이들을 낳게 됐습니다. 이를 이유로 인기를 잃어갔는데요.
하지만 베르디의 오페라로 다시 재기에 성공했습니다. 베르디도 이 작품을 하며 고통을 딛고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위로가 되어줬습니다. 그런데 베르디의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은 두 사람 사이를 크게 반대했습니다. 스트레포니의 과거 때문이었죠. 스트레포니 스스로도 자신이 베르디의 부인이 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 관계 발전을 주저했습니다.
하지만 베르디는 절대적인 믿음과 깊은 사랑으로 그의 곁을 지켰습니다. 부모의 반대에도 헤어지지 않았죠. 온갖 소문을 만들어낸 마을 사람들도 멀리 했습니다. 이후엔 스트레포니와 함께 마을을 떠나 시골로 향했습니다.
베르디는 이 과정에서 느꼈던 심적 고통, 그럼에도 굳건히 지켜온 사랑을 가득 담아 '라 트라비아타'를 만들었습니다. 마흔 살이 되던 해에 첫 공연을 열어,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펼쳐 보였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초연은 실패했습니다. 당시 관객들은 이 오페라가 지나치게 실험적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베르디는 유연한 태도로 작품을 일부 수정했고, 재연은 대성공을 거뒀습니다.
작품의 주요 아리아도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중 '축배의 노래'는 광고에도 사용돼 많은 분들이 잘 알고 계십니다.
“즐기자, 술잔과 노래와 웃음이 밤을 아름답게 꾸민다. 이 낙원 속에서 우리에게 새로운 날이 밝아온다.” 이 아리아는 오페라 초반에 나오는 곡으로, 귀족들이 한바탕 화려한 파티를 열어 향락을 즐기는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베르디가 46살이 되던 해, 두 사람은 드디어 결혼을 했습니다. 동거했던 12년을 포함해 무려 50여년 동안 서로 아끼고 사랑했죠. '라 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가 비극적으로 죽어갔던 것과 다른 해피엔딩입니다. 연인 뿐 아니라 가족, 친구, 동료 등 다양한 관계를 이어가는 법을 베르디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라 트라비아타'는 '길을 잃은 여인'이란 뜻의 이탈리아어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길을 잃지 않게 등불이 되어주고, 묵묵히 옆을 지키는 것. 그것이 함께 해피엔딩을 만들어 가는 법이 아닐까요.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