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기아, 美 전기차 사업 '가시밭길'

인플레이션 감축법 하원도 통과
기아 "시행전 車계약 서둘러야"
미국 하원이 지난 12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과시키면서 글로벌 완성차업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북미산 원자재 비중을 높여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이 법안에 대응하는 게 쉽지 않아서다. 중국산 원자재 비중을 IRA 기준 아래로 낮추지 못하면 대당 7500달러(약 980만원)의 보조금을 받을 수 없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기아 미국법인은 딜러사에 “이 법안이 시행되면 전기차와 플러그인하이브리드카(PHEV)는 세액공제 혜택(보조금)을 못 받으니 대기 고객과 계약 체결을 서둘러달라”는 서한을 보냈다. “급변한 전기차 세금 정책이 사업에 큰 지장을 준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현대자동차와 기아는 전기차를 전량 한국에서 제조해 수출하기 때문에 보조금 혜택을 받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IRA 보조금을 받으려면 북미에서 전기차를 생산해야 한다. 또 그 전기차에 적용하는 배터리 부품과 원자재는 미국 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에서 조달해야 한다. 배터리 원자재의 비중은 2024년 50%부터 2027년 80%까지 해마다 10%포인트 늘어난다. 배터리 부품의 북미산 비중 규정은 한층 더 빡빡하다. 2024년 60%에서 매년 10%포인트 증가해 2029년 100%가 된다.

글로벌 컨설팅 및 시장조사 업체들도 완성차업체들과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앨릭스파트너스는 오토모티브뉴스에 “어떤 차량이 보조금을 받으려면 최소 4년의 준비 과정이 필요할 것”으로 내다봤다. 더 부정적인 전망도 있다. 웰스파고는 “이미 중국으로 넘어간 원자재 공급망을 재정비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며 “미국 또는 미국과 FTA를 체결한 국가에서 현재 니켈 11%, 코발트 6%를 조달하는데 이를 대체하는 것은 거의 실현 불가능에 가깝다”고 분석했다.벤치마크미네랄인텔리전스도 비슷한 의견을 내놨다. 이 회사는 “2025년 이전에 IRA 규제를 맞추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며 “배터리 공장 건설은 최소 2년 남았는데 광산 및 제련시설 건설은 10년 걸린다”고 꼬집었다. 이어 “미국이 전기차를 만들고 싶다면 중국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해외 자원 개발 사업이 위축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미국산으로 분류되지 못하면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없어서다. 피치솔루션스는 8일 보고서를 통해 “광산기업이 새로운 리튬 염호나 광산 개발보다 수익성이 입증된 기존 프로젝트를 인수하려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형규 기자 k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