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공방(漢詩工房)] 오늘의 날씨, 김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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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더 라이피스트오늘의 날씨
김태영
뉴스에서
기상캐스터가 오늘은 파란 하늘을
하루 종일 볼 수 있을 거라고 합니다.
하늘에서 시원한 바람이
사람들 마음속에 불어온다고 합니다.꽃에서는 하루 종일
은은한 향기가 난다고 합니다.
뉴스에서
기상캐스터가 오늘의 날씨는
희망이라고 합니다.
[태헌의 한역]
今日天氣(금일천기)新聞天氣預報云(신문천기예보운)
靑天今日可周望(청천금일가주망)
天邊一陣風(천변일진풍)
吹到心中凉(취도심중량)
地上數種花(지상수종화)
盡日隱隱香(진일은은향)
新聞天氣預報云(신문천기예보운)
今日天氣是希望(금일천기시희망)
[주석]
今日(금일) : 오늘. / 天氣(천기) : 날씨.
新聞(신문) : (신문이나 방송 따위의) 뉴스. 새 소식. 우리가 “신문”으로 부르는 종이로 된 소식지를 오늘날 중국에서는 주로 ‘報(보)’, ‘日報(일보)’로 칭한다. / 預報(예보) : 예보, 예보하다. / 云(운) : ~라고 하다.
靑天(청천) : 푸른 하늘. / 可周望(가주망) : 두루 볼 수 있다. 원문의 “하루 종일”이 아래 시구에서도 보이고 있어 중복을 피하기 위하여 고쳐 표현한 것이다.
天邊(천변) : 하늘 가. / 一陣風(일진풍) : 한 줄기 바람. ※ 이 구절과 아래 구절은 원시를 약간 의역하는 과정에서 원시에는 없는 시어들이 더러 보태졌다.
吹到(취도) : <바람이> 불어서 ~에 이르다. / 心中(심중) : 마음속. / 凉(량) : 시원하다.
地上(지상) : 땅 위.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 없는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 數種(수종) : 몇 종. 이 역시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 없는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 花(화) : 꽃
盡日(진일) : 하루 종일. / 隱隱(은은) : 은은하다, 은은하게. / 香(향) : 향기, 향기롭다.
是(시) : ~이다. 영어의 be 동사에 해당하는 한자이다. / 希望(희망) : 희망.
[한역의 직역]
오늘의 날씨뉴스에서 날씨를 예보하길
파란 하늘을 오늘 두루 볼 수 있을 거랍니다.
하늘 가 한 줄기 바람이
마음속으로 시원하게 불어온다고 합니다.
땅 위의 몇 가지 꽃들이
하루 종일 은은하게 향기 낸다고 합니다.
뉴스에서 날씨를 예보하길
오늘의 날씨는 희망이라고 합니다.
[한역 노트]
역자는 오늘 소개하는 이 시를 책이나 인터넷이 아닌 서울의 어느 지하철역 역사(驛舍)에서 만나게 되었다. 그것도 흔히 만날 수 있는 지하철역 승강장 스크린 도어에서가 아니라, 어느 교회가 역사 내에 설치해둔 “시 항아리”에서였으니, 만남의 인연치고는 매우 특별했다고 할 수 있다. 역자가 “광화문역” 역사 내의 “시 항아리”에서 이 시를 만나게 된 데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있었다.
올 봄에 원래는 지인 내외가 세종문화회관에서 관람할 예정이었던 “춤” 공연이 하나 있었는데, 지인 집안에 불가피한 일이 생겨 뜻하지 않게 역자가 그 공연을 지인과 함께 보러가게 되었다. 역자가 광화문역 8번 출구로 향해 가는 길에 얼핏 “시 항아리”라는 것을 보고는 지나쳤다가, 그 옛날 80년대 다방에서 담배 재떨이가 장착된 운세 자판기(?)에 재미 삼아 100원짜리 동전을 넣고 그날의 운세를 뽑아보고는 했던 추억이 순간적으로 떠올라, 지인에게 선물할 요량으로 아주 작은 시 두루마리를 딱 하나만 집어 들었는데, 거기에 적힌 시가 바로 이 시였다.
그날 임시에는 시 두루마리를 전해주는 것을 깜빡했다가 나중에야 사진을 찍어 지인에게 보내주었더니, 이 시를 한역(漢譯)하여 칼럼으로 집필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즉각적으로 보내왔다. 그리하여 역자가 그 무렵에 일찌감치 한역을 해두었다가 오늘에 이 칼럼으로 발표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공연이 없었다거나, 역자가 “시 항아리”를 그냥 지나쳤다거나, 지인의 제안이 없었더라면, 역자는 이 시를 만나지 못했거나 만났다 하더라도 칼럼으로 진행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그 어느 고마운 교회가 “시 항아리”라는 것을 그곳에 설치해두지 않았다면, 누구도 오늘 이 칼럼을 마주하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다. 심지어 지인의 집에 생긴 불가피한 일 또한 인연(因緣)의 한 끈이 되었으니, 인연이란 이처럼 관계의 끈이 이어지고 이어져서 만들어지는 오묘한 그 무엇이 아닐까 싶다.
이제 오늘의 시를 보도록 하자. 이 시에서 파란 하늘을 종일 볼 수 있으리라는 것과,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리라는 것과, 꽃이 은은하게 향기를 풍기리라는 것은 마지막 연에 나오는 “희망”을 뒷받침하는 심상(心象)으로 쓰였다. 곧,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우리에게 쾌적함을 제공하고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바로 희망이라는 뜻으로 읽힌다. 우리가 거창한 데서가 아니라, 이런 사소한 데서 행복을 느끼게 되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 사소한 것이 주는 안온함을 우리가 정말로 고맙게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희망이란 게 뭐 별 것이겠는가? 그런 안온한 상태가 비교적 잘, 그리고 오래 이어지기를 바라는 것이 바로 우리가 갈구하는 희망이 아니겠는가?
시인이 “오늘의 날씨는 희망”이라고 하였듯이, 이 시에서의 맑은 날씨는 당연히 희망을 상징한다. 그러나 날씨가 언제나 맑을 수만은 없다. 그래도 맑은 날이 더 많기를 바라는 게 우리네 심사이다. 그런 만큼 우리는 희망 속에서 산다고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희망은 잠자고 있지 않는 인간의 꿈”이라고 하였다. 꿈속의 꿈이 아니라 현실 속의 꿈이 바로 희망이라는 뜻이다. 꿈꾸는 자에게는 희망이 있으므로 맑은 날씨 또한 그만큼 많아질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맑은 날씨는 곧 우리의 마음을 맑게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내 마음이 맑아졌다면 역설적으로, 비가 내리고 눈이 내려도 ‘맑은 날씨’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이 이 시에서 희망을 얘기하기 위해 빌려온 장치는 날씨 예보, 곧 일기예보이다. 대개 자연과학적인 사실을 객관적으로 전하기 마련인 일기예보에 이처럼 인문학적인 감수성의 옷을 입힌 것은, 시인이 시인이기도 하지만 독실한 신앙인이기도 하기에 가능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곧, 시인에게는 이 시에서의 일기예보가 절대자가 들려주는 희망의 메시지로 간주되었을 공산이 크다.
“시 항아리” 속의 시 한편이 일차적으로 역자와 역자의 지인에게 준 위안으로 따지자면, 애초에 시인의 시가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희망”이 되었다고 할 수도 있을 듯하다. 우리가 서로에게 파란 하늘과 시원한 바람과 향기로운 꽃처럼 작은 희망이 되어줄 수 있다면,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이 땅이 바로 우리가 염원(念願)하는 낙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병원에 계신다는 시인에게 역자의 이 변변치 못한 글 하나가 작은 희망이라도 되어줄 수 있다면, 역자에게는 더할 수 없는 다행이겠다.
역자는 4연 10행으로 이루어진 원시를 칠언 4구와 오언 4구가 섞인 8구로 된 고시로 한역하였다. 동일하게 반복되는 시어를 약간 고쳐 표현하기도 하고, 더러 원시에 없는 말을 임의로 보태기도 하였다. 짝수구마다 압운하였으므로 이 한역시의 압운자는 ‘望(망)’·‘凉(양)’·‘香(향)’·‘望(망)’이 되어, 압운자 ‘望(망)’이 중복된 것처럼 보이지만, 첫 번째 운자인 ‘望(망)’과 마지막 운자인 ‘望(망)’의 뜻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에 유의하기 바란다.
2022. 8. 16.<한경닷컴 The Lifeist> 강성위(hansh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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