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울음소리 들은 게 30년도 더 됐을 거야" [인구위기, 현장을 가다/전남 고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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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군, 1990년 인구 13만 전남 최대 군 지역 명성“아이 울음소리를 들은 건 30년도 넘은 얘기에요.”
현재 8만7000여명으로 줄어...가족단위 이탈 증가
동일면 사동마을은 81% 주민 줄어 마을 사라질 위기
인구 줄면서 교통, 병원 등 복지 소외 현상도 심화
주민들 "농산물 가격 보장해줘야 사람들 들어올 것"
전남 고흥군은 1990년도만 해도 인구수 13만 명이 넘는 전남에서 가장 큰 군(郡) 지역이었다. 통계청의 인구총조사 자료를 보면 1990년 고흥군의 인구수는 13만4294명으로 당시 순천시(16만7214명)와 3만3000명 차이에 불과했다. 하지만 불과 10년이 지난 2000년 고흥군의 인구수는 8만7738명으로 5만여 명 가까이 줄었다. 너도나도 일자리를 찾아 가족 단위로 이탈했기 때문이다. 같은 해 구례군의 인구수가 2만8705명인 점을 감안하면 10년 새 군 하나보다 더 많은 인구가 줄어든 것이다. 2010년 조사에서 고흥군의 인구수는 6만3392명으로 20년 전과 비교하면 절반이 넘는 52.8%가 감소했다.지역 소멸이 우려되는 고흥군 안에서도 동일면은 상황이 가장 심각한 편이다. 나로우주센터가 있는 외나로도에 가기 전 들려야 하는 내나로도가 동일면이다. 1990년 4112명이던 동일면 인구수는 2000년 1941명으로 쪼그라들더니 지난달 기준 1420명까지 줄었다.
이중 사동마을과 소영마을은 십수년 뒤면 마을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 1990년 436명이 거주하던 사동마을은 올해 기준 87명만 남아 81.1%의 주민이 감소했고 소영마을은 같은 기간 649명에서 163명으로 74.9%가 줄었다.
김진규(68) 사동마을 이장은 “30년 전엔 120가구 정도가 몰려 살았는데 남아 있는 집은 50가구에 불과하다”며 “마을에 초등학생이 있긴 하지만 귀촌인의 자녀로, 마을에서 아이가 태어난 건 30년 전 얘기”라고 했다.사동마을은 동일면 안에서 유일하게 바다와 접하지 않은 산중 마을이다. “어로 행위 없이 농사로만 버티기 힘들었던 주민들이 배를 탈 수 있는 부산 등지로 대거 삶의 터전을 옮겼다”는 게 김 이장의 설명이다. 이 마을 주민의 평균 연령은 77세에 이른다. 60대 미만은 단 5명이다.
1990년 150가구가 살던 소영마을은 현재 87가구만 남았다. 마을에 방치된 빈집만 23채다.곽성권(57) 소영마을 이장은 “내 손주가 15년 전에 이 마을에서 태어난 것을 마지막으로 인구 유입이 끊겼다”며 “작년엔 여섯 분, 올해엔 한 분이 돌아가셔서 사람이 줄어드는 일만 남았다”고 말했다.
동일면의 유일한 초등학교인 백양초등학교는 50년 전 전교생 수가 1000명이 넘는 제법 큰 학교였다. 곽 이장은 “초등학생 시절 마을에 같은 학교 학생만 57명이었고 동창생은 28명이었다”고 회상했다. 백양초등학교는 1990년만 해도 덕흥면의 덕흥초등학교와 통합해 343명의 재학생을 유지했다. 하지만 2000년엔 107명으로 줄었다. 올해 전교생은 17명이다. ‘1면 1교’ 원칙에 따라 폐교는 면했다.
인구 감소로 인한 생활 환경은 급격히 나빠지고 있다. 동일면과 고흥읍을 잇는 대중교통수단은 하루 두차례 왕복하는 군내버스가 유일하다. 군내버스가 다닌다는 이유로 ‘천원 택시’ 등의 교통복지도 제공되지 않는다. 종합 진료를 위한 병원은 30㎞나 떨어져 있는 고흥읍에 있다. 곽 이장은 “60대까지는 자가용을 이용해 이동할 수 있지만 그 연령대 이상의 어르신이 갑자기 아프면 자가로 병원 가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씁쓸해했다.마을 주민들은 귀촌·귀농 정책과 더불어 인구 유입을 기대할 수 있는 정책으로 ‘농산물 가격 유지’를 강조했다.
김 이장은 “밭작물은 매년 농사짓는 품목마다 가격이 다르고, 폭락하는 사례도 빈번하다”며 “어떤 농사를 짓더라도 적정 수준의 이익을 보장받는다면 농촌에서 살고 싶은 사람이 더 늘지 않겠냐?”고 말했다.
고흥=임동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