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수상한 외화 송금이 무려 8.5조, 가상자산 활용 돈세탁 막아야

국내 은행을 거쳐 해외로 빠져나간 수상한 외화 송금 규모가 8조5000억원(약 65억4000만달러)을 넘는다고 한다.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이 지난 6월 총 2조5000억원가량의 비정상적인 외화 송금 사례를 포착해 보고했는데, 금융감독원 현장 검사 결과 4조1000억원으로 늘어났다. 이어 금감원이 모든 은행으로 대상을 확대하자 지난해 1월부터 올 6월까지 이뤄진 미심쩍은 외화 송금액이 8조원 이상으로 불어났다.

이 중 상당액이 국내 암호화폐 가격이 해외보다 높게 형성되는 ‘김치 프리미엄’을 노린 차익 거래와 연관됐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에서 구입한 암호화폐를 국내 거래소에서 더 비싼 가격에 판 뒤 환치기 세력들이 거래 차익을 실현하기 위해 은행을 통해 해외로 송금했다는 것이다. 거래 대부분이 국내 암호화폐거래소에서 이체된 자금이 다수의 개인과 법인을 거쳐 무역법인 계좌에 모인 뒤 수입대금 지급 명목으로 홍콩 일본 미국 등 해외로 송금되는 형태로 이뤄졌다.검찰과 국가정보원까지 나서면서 불법 자금 등 국내외 ‘검은돈’이나 북한이 불법 취득한 가상자산을 세탁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불거지고 있다. 한국 외환시장이 국제 환치기 세력의 놀이터로 전락한 사실이 확인된다면 그 자체로 충격적이지만, 국제 자금 세탁소로 이용됐다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테러·적성국 등의 자금과 연계돼 있다면 미국 법에 따라 미 은행 계좌 폐쇄와 같은 국제 문제로도 비화할 수 있는 사안이다. 금감원을 비롯해 검찰·관세청 등이 철저한 수사를 통해 수상한 송금의 실상을 한 점 의혹 없이 밝혀내야 하는 이유다.

이번 사태로 자금세탁 방지와 관련한 은행 내부 통제와 감독당국의 적발 시스템에 큰 구멍이 있음이 드러났다. 은행들은 수천억원에 달하는 페이퍼컴퍼니의 해외 송금을 의심 없이 무사통과시켰고, 감독당국은 은행이 자진신고할 때까지 이상 징후를 걸러내지 못했다. 늦었지만 불법 거래가 재발하지 않도록 은행 외환 업무 관련 통제 수준을 높이는 동시에 이상 금융거래 적발을 담당하는 금융정보분석원(FIU)의 대응 능력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암호화폐 등 가상자산이 곳곳에서 불법 외환 거래와 돈세탁 수단으로 활용되는 추세인 만큼 이에 대한 대비에도 감독당국은 서둘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