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굴 당하고, 불 타고, 유적 갈아엎기까지…구멍 '뻥' 뚫린 지자체 문화재 관리

도굴된 구미 '황상동 고분군'
CCTV 없어 소행 '오리무중'

"비전문가가 문화재 담당 원인"
문화재청 "전문가 의무배치 추진"
사진=연합뉴스
지방자치단체 소관 문화재가 수난을 겪고 있다. 여러 차례 도굴되거나 불에 타는가 하면, 복원 공사를 한답시고 귀중한 유적을 갈아엎는 일까지 벌어졌다. 지방 문화재를 관리하는 시스템 전반에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16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4~6세기 삼국시대 유적인 경북 구미시 ‘황상동 고분군’(사적 470호)이 최근 도난 문화재로 등록됐다. 구미시 관계자는 “누군가 구덩이를 팠다가 덮은 흔적을 발견했는데, 유물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쇠꼬챙이로 찔러본 흔적이 있었다”며 “도굴일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하지만 문화재를 언제, 누가, 얼마나 훔쳐갔는지는 오리무중이다. 현장에 폐쇄회로TV(CCTV)가 없어서다. 관련 전문가는 “2008년 숭례문 화재 사건 이후 정부 차원에서 재난 방지·방범용 문화재 CCTV를 설치하고 있지만 지방에는 아직 CCTV 없이 방치된 문화재가 많다”고 했다.

지난해 12월 대구 고산서당의 본당 건물이 전소된 것도 CCTV가 없어 화를 당한 사례다. 고산서당은 퇴계 이황 선생이 머무르며 제자들을 가르친 곳으로 대구시 지정 문화재 15호다. 화재 당시 CCTV가 설치돼 있지 않아 불을 빠르게 잡지 못했고, 화재 원인을 규명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었다.

이달 초에는 국내 최대 규모 고인돌 유적인 경남 김해시 구산동 지석묘(사진)가 정비공사 중 원형이 훼손된 사실이 드러나 문화계의 공분을 샀다. 공사업체가 문화재청의 발굴 허가도 받지 않은 채 주변에 깔려 있던 바닥돌을 하나하나 빼서 씻은 뒤 다시 박아넣은 것이다. 공사 과정에서 인근 청동기시대 집터와 유물이 상당수 뭉개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김해시가 전문가 입회와 현장 검토도 없이 일반 토목업체에 공사를 맡긴 게 참사를 불렀다. 문화재청은 김해시에 법적 조치를 취할지 검토하고 있다.전문가들은 이런 사고가 잇달아 터지는 근본 원인으로 비전문가가 문화재 행정을 담당하는 지방자치단체 인사 시스템을 꼽는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대다수 지자체에서 문화재 관련 업무를 일반직 공무원이 담당하는데, 이들은 1~2년 주기로 순환근무하다 보니 전문성이 떨어진다”며 “각 지자체에 문화재 전문가를 의무 배치하는 입법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