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이 삼켰던 스무살 소녀, 4년만에 다시 서울을 삼켰다

빌리 아일리시 내한공연

몽환적 음색 가진 美 팝스타
우울증에도 활발한 음악활동
폭우 뚫고 관객 2만명 몰려
대형 콘서트장에 어울릴 법한 가수들이 있다. 화려한 군무를 선보이거나 폭발적인 고음으로 관객을 압도하는 가수들이다.

미국 팝스타 빌리 아일리시(20·사진)는 이 가운데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는 단순한 비트와 몽환적인 음색이다. 그런데도 콘서트마다 ‘구름 관객’을 몰고 다닌다. 지난 15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26 빌리 아일리시’에서도 그랬다. 세차게 내린 비에도 고척스카이돔은 2만 명이 넘는 관객으로 가득 찼다.콘서트장은 화려한 무대 영상과 난무하는 레이저로 마치 전자음악(EDM) 축제를 방불케 했다. “오늘만큼은 마음껏 소리지르고, 뛰고, 춤춰달라”는 아일리시의 외침에 1층은 물론 2층 관객까지 일어나 발을 굴렀다.

2015년 데뷔한 아일리시는 빌보드 차트 1위는 물론 그래미상까지 받은 세계적인 팝스타다. 특유의 우울하고 몽환적인 곡으로 미국 Z세대(1996~2010년 출생)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아일리시는 자신이 앓은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솔직하게 고백해 비슷한 병으로 괴로워하는 10대들에게 힘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내한 공연은 2018년 8월 이후 4년 만이다. 20분 만에 티켓이 다 팔릴 정도로 국내에도 팬이 많다. 아일리시는 첫 곡 ‘베리 어 프렌드(Bury a Friend)’를 부를 때부터 30m 길이의 무대를 뛰어다녔다. 원래는 잔잔한 노래지만 드럼 소리를 키워 흥을 돋웠다. ‘엔디에이(NDA)’를 부를 땐 레이저로 분위기를 띄웠다. 기타 리듬에 맞춰 레이저를 하나씩 켰다.이번 공연은 아일리시의 다채로운 매력을 볼 수 있는 자리였다. ‘아이 돈트 워너 비 유 애니 모어(IDWBYA)’ 등 강렬한 비트의 곡 이외에 가창력으로 승부하는 곡도 여럿 선보였다. 공연 도중 관객이 무대 위로 던진 태극기를 들어 펼쳐 보이기도 했다.

아일리시는 연신 관객을 향해 “사랑한다, 고맙다”를 외쳤다. 그는 “4년 전 오늘 여기서 콘서트를 했는데, 다시 오게 돼 너무 기쁘다”고 했다. 아일리시는 마지막 곡 ‘굿바이(Goodbye)’가 끝난 뒤 마지막 인사말을 건넸다. “정말 고맙고 사랑한다, 서울! 굿나잇!”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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