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서 한국인 스타트업 성장 빨라져…유니콘 20~30개 더 나온다" [서기열의 실리콘밸리인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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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하 프라이머사제파트너스 대표 인터뷰"한국인이 미국에서 창업한 스타트업이 유니콘으로 성장한 회사가 벌써 5곳이나 나왔습니다. 앞으로 이런 성장이 더 빨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앞으로 이런 한국계 유니콘이 더 많이 나올 수 있도록 초기 단계에서 마중물 역할을 더 적극적으로 할 생각입니다."
"한국계 네트워크 역량 키워 투자 선순환 구조 만들자"
한국인 스타트업 유니콘 벌써 5개..창업 초기 시드 투자 집중
실리콘밸리에서 한국인이 창업한 스타트업에 중점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벤처캐피털(VC) 프라이머사제파트너스의 이기하 대표는 한국계 스타트업의 향후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미국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한국계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여러 번 강조했다.○"한국인 네트워크 강화 필요"
이 대표가 실리콘밸리에서 스타트업에 투자를 시작한 것은 2005년 '사제(師弟·스승과 제자)파트너스'를 설립하면서부터다. 이 대표는 "누구나 배우고 가르칠 수 있다는 뜻을 담아서 회사 이름을 지었다"며 "벤처 업계에서 한국인 창업자들을 돕는 역할을 해보고 싶었다"고 창업 당시를 회상했다.
미국 주류 사회를 찬찬히 뜯어보았더니 한국보다도 인맥으로 많은 부분이 좌지우지된다는 것을 느꼈다. 특히 미국 사회에서 소수 민족끼리 끌어주고 있는 부분에 주목했다. 인도계, 중국계는 어떤 조직에서든 자기 인맥을 끌어주면서 세력을 키워나가는 것이 확연하게 보였고, 유대계는 그런 면에서 엄청난 파워를 자랑했다. 이에 비해 한국인들은 이런 네트워크를 끈끈하게 만들지 못하고 있었다. 이 대표는 "한국인들이 사업을 잘할 능력이 있다고 믿었고, 돈을 구하기 힘든 창업 초기 단계에 시드 머니를 투자하면 서로 윈윈할 수 있을 거라고 봤다"고 했다.사제파트너스 시절에 본계정으로 투자한 스타트업들은 이미 상당한 규모로 성장했다.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피스컬노트는 최근 뉴욕 증시에 상장하며 성공한 한국계 스타트업으로 자리매김했다. 화물트럭의 위치정보를 클라우드를 통해 자산과 직원 등에 연결하는 플릿업도 미국에서 시작한 사업을 중남미로 확장하며 성장하고 있다. 호갱노노, 데일리호텔 등은 다른 투자자에게 매각되며 성공적으로 엑시트한 사례로 꼽힌다. 2014~2017년에 주로 투자한 플릿업, 미소, 아이디어스, 자비스, 큐픽스 등 스타트업의 기업가치는 수천억원대로 성장했다는 게 이 대표의 설명이다.○"한국계 유니콘 더 많이 나올 것"
뜻이 맞는 사람들을 모아 프라이머사제파트너스로 규모를 키운 뒤 2018년부터는 투자자로부터 총 500억원을 출자받은 펀드로 한국인이 창업한 스타트업에만 투자하고 있다. 2020년부터 지난해 주로 투자했는데 업스테이지, 닥터나우, 빌드블록 등의 스타트업의 가치는 1000억원 넘길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게 이 대표의 설명이다. 이 대표는 향후 한국인 스타트업의 미국에서 성장 속도가 더 빨라질 것으로 내다봤다."한국인 스타트업이 미국 시장에서 유니콘으로 5곳입니다. 이들이 설립된 건 5~10년 전인데 유니콘이 된 건 최근 1~2년 사이 일이지요. 앞으로 20~30개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인도, 이스라엘, 중국계 못지않게 한국인 창업자들이 많아질 겁니다."
이렇게 한국인 스타트업의 성공 가능성을 높게 보는 이유는 한국인 특유의 문화에서 기인한다. 이 대표는 "미국에서 태어난 한국인 2세나 최근 미국으로 넘어와 일하고 있는 한국인들이 최근 과감하게 창업에 나서고 있다"며 "영어도 잘하면서 미국 사회에 녹아들 수 있고, 한국 특유의 경쟁적인 문화에 익숙해 미국 사회에서도 근면함과 성실함 등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스타트업의 성장에 필요한 게 초기 자금이다. 이 대표는 "아직 미국에는 차별이 존재한다"며 "창업한 지 얼마 안 된 스타트업이 매출도 안 나오는 상태에서 미국 주류 VC의 투자를 받기란 하늘의 별 따기"라고 했다. 그 와중에 투자받지 못하면 좋은 아이디어도 사장될 수밖에 없는 게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 대표는 "그 간극을 한국에 본사를 둔 VC나 미국에서 설립된 한국계 VC가 메워주고 있다"며 "투자 이후 사업이 궤도에 올라 매출이 나오기 시작하면 주류 VC들도 투자에 나서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몰로코는 타이거글로벌로부터, 눔은 세쿼이아에서 투자받은 게 그 예다. 그는 "이런 마중물 역할을 하는 투자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서비스형 소프트웨어 분야 주목
프라이머사제파트너스는 지난해 2호 펀드를 결성했다. 지난해 10월 첫 투자를 받기 시작해 현재 투자금 1000억원 이상을 모았다. GS리테일, 한화생명 등 국내 대기업들도 참여했다. 통상 투자 규모는 3억~20억원 정도로 시드 단계의 투자가 주를 이룬다. 아직 1년이 되지 않았지만, 현재 투자한 스타트업은 22곳에 이른다.
이 대표는 "한국인들이 잘하고 있는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분야의 스타트업을 눈여겨보고 있다"며 "얼굴을 보지 않고도 물건을 팔 수 있는 온라인 마케팅이 뜨면서 이 분야에 투자를 늘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꿈이요? 한국인이 창업한 스타트업을 뒷바라지하고, 성장을 돕고, 상장까지 연결해주는 게 제 일이겠죠. 그러면 자연스럽게 한국인 네트워크가 커질 테고 이 실리콘밸리에서 한국인 스타트업 생태계가 단단히 뿌리 내릴 수 있지 않을까요. 선배 창업자가 성공하고, 다시 후배 창업자를 육성해나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데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실리콘밸리=서기열 특파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