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사제 허용, 동성결혼···변화 요구에 고심하는 가톨릭
입력
수정
루피니 교황청 장관"교회는 각 시대의 언어로 말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현대화가 변화하는 세상의 틀에 맞춰 모든 게 바뀌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교회 본래의 메시지" 강조하면서도···
"교회, 시대의 언어로 말해야 할 의무 있어"
파올로 루피니 교황청 홍보부 장관은 17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동성결혼 합법화, 여성 사제 허용 등 변화의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가톨릭 교회는 어떻게 새로운 세대와 소통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세상의 틀에 맞추느라 교회가 본래의 메시지를 묽게 만들 수는 없다"고 답했다. 우회적으로 현재 가톨릭 교리를 고수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루피니 장관은 시그니스 세계총회를 계기로 한국을 찾았다. 4년마다 열리는 시그니스 세계총회는 전 세계 가톨릭 언론인이 교류하고 함께 종교와 언론의 역할을 성찰하는 자리다. 올해는 서울에서 이달 16~18일 3일간 개최된다.
오늘날 가톨릭 교회는 여러 변화 요구를 마주하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최근 아시아 최대 가톨릭 국가인 필리핀에서는 동성결혼 허용 법안이 상원에 제출됐다. 로빈 파딜라 상원의원은 "필리핀이 동성 커플에게도 편견 없이 평등한 권리를 부여하고 기본적인 사회보장제도에 접근하도록 할 때가 됐다"고 입법 취지를 설명했다.
가톨릭 교리는 아직까지 결혼을 남자와 여자 사이에 이뤄지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동성 결합 또는 결혼을 허용하지 않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동성애자의 인간적 권리가 침해돼선 안 된다는 입장이지만, 동성 결합 및 결혼에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여성 사제 허용 여부도 쟁점이다. 교황청은 시대 변화에 발맞추고 여성 신도들의 참여를 확대하기 위해 여러 개혁을 단행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달 세계 각국의 주교를 뽑는 심사위원 역할을 하는 교황청 주교부 위원에 여성 3명을 새로 임명했다. 교황청 역사상 최초로 있는 일이다. 하지만 여성 사제는 허용하지 않는다. "여성은 절대로 주교에 임명될 수 없는데 그 선출 절차에 여성이 일정한 역할을 한다는 건 아이러니"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루피니 장관의 답변에는 변화와 교리 간 고민이 묻어난다. 그는 "교회에서, 어느 누구도 하느님의 사랑에서 제외될 수 없다"며 "아버지의 자비와 애틋한 사랑에서 아무도 제외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때로 다른 이들을 돕는 좋은 방법은, 요구하는 무언가를 주는 것보다는 그들과 동행하고, 그들을 (교회로) 초대해 사랑과 은총의 선물이 되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교황청은 천주교 교리, 규율, 전례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3단계 절차를 지난해 10월 시작했다. 사제의 결혼 허용, 여성 사제, 동성애 등이 주요 의제가 될 전망이다.3단계 개혁 중 1단계는 전 세계 각 교구 단위로 가톨릭 개혁에 관한 평신도 의견을 수렴하고, 2단계는 대륙별로 주교들이 모여 개혁 주제들을 공식 의제로 다듬는다. 마지막 3단계로 내년 10월 바티칸에서 전 세계 주교들이 한 달간 토론 모임을 갖고 개혁 논의를 할 예정이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