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포스트 홍콩을 위한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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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재철 한국금융투자협회장 jaichel.na@kofia.or.kr홍콩 센트럴지역에는 글로벌 금융그룹의 아시아 본부와 금융회사 수백 개가 몰려 있다. 역내 금융인의 출장지역 1순위로 꼽히기도 한다. 홍콩이 아시아의 금융중심지로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홍콩의 위상이 최근 흔들리고 있다. 그 발단은 2020년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과 코로나19 사태였다. 자유로운 활동의 제약을 우려한 많은 글로벌 기업이 홍콩을 떠났다. ‘제로 코로나’의 엄격한 감염병 규제와 국경 봉쇄는 특히 금융권 고급 인력의 이탈을 가속화했다.
작년 10월 아시아증권산업금융시장협회(ASIFMA)가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 홍콩지역 금융회사의 73%가 인재를 잡아두는 데 곤란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홍콩 이외 지역으로 인력과 업무 기능을 옮기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는 응답도 48%에 달했다.홍콩에서 글로벌 기업이 빠져나오는 사이, 아시아 각국은 포스트 홍콩 지위를 차지하려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기업 친화적인 규제 환경과 영어가 통용되는 국제도시라는 이점을 무기로 글로벌 금융회사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일본 역시 파격적인 세금 우대 정책과 외국인 금융인력 유입 정책을 발표하는 등 적극 나서고 있다. 외신들은 홍콩을 대신할 아시아의 새로운 금융허브는 어디가 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아쉽게도 우리나라는 후보군에 거론조차 되지 않고 있다. 2003년 ‘동북아 금융허브’ 전략을 발표한 이후 우리나라는 글로벌 금융중심지가 되려고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2008년 금융중심지법을 제정했고, 2009년에는 서울 여의도와 부산 문현을 금융중심지로 지정했다. 다섯 차례에 걸쳐 금융중심지 기본계획을 수립하기도 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나라가 글로벌 금융중심지로 발돋움하는 것은 요원해 보인다. 지난 3월 영국 컨설팅그룹 지옌이 발표한 국제금융센터지수(GFCI) 순위는 서울이 12위, 부산이 30위였다. 여전히 세계 유수 금융중심지와 비교하면 격차가 크다.
금융중심지 전략은 우리나라가 금융강국 도약을 위해 반드시 달성해야 하는 목표다. 우리나라가 포스트 홍콩이 되려면 무엇보다 규제 환경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바꿔야 한다. 경직된 주 52시간 근로제는 완화하고 세금 체계는 좀 더 기업 친화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영어를 상용화하는 교육 인프라를 구축하고 자유로운 외환 거래는 금융중심지의 필수 요소인 만큼, 현재의 과도한 외환 규제는 합리적으로 조정해야 한다.
짧은 기간 안에 전면적으로 규제를 완화하기 어렵다면 특구를 설치해서 시범 적용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아울러 비대면 금융환경 확산과 가상자산 부상에 대응해 우리의 우수한 디지털 인프라를 바탕으로 디지털 금융허브로 포지셔닝하는 전략도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