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로 망한 스타트업 대표…다시 규제로 일어섰다 [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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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는 기업의 발목을 잡기도 하지만 때로는 전에 없던 시장을 만들어내고 기업들에 새로운 먹거리 기회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특히 신산업이 부상하고 관련 규제들이 생겨나면서 규제에 대응하고 이를 활용할 줄 아는 능력을 키우는 것은 매우 중요해졌습니다. 이른바 '레그테크(regulation+tech)'가 선진국을 중심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것도 이 같은 흐름 때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규제에서 그 사업 기회를 찾는 신생 스타트업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레그테크 스타트업이 윌로그입니다. 공교롭게도 윤지현 윌로그 대표는 한때 규제로 운영하던 사업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수년 뒤, 그는 오히려 규제를 적절히 이용하고 수혜를 누리는 스타트업의 대표가 됐습니다. 윤 대표는 “규제에는 착한 규제도, 나쁜 규제도 없다”는 도발적 화두를 던집니다. 새로운 문제를 풀어가며 시장을 정의하는 것은 결국 이용자에게 최대 효용성이 돌아가기 위함이며, 이를 위해선 규제 당국을 ‘파트너’로 삼을 줄도 알아야 한다는 이유에서입니다.
한경 긱스(Geeks)가 윤 대표를 만나 윌로그의 성장 스토리를 들어봤습니다.
윤 대표는 일련의 사태 이전부터 관련 사업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소형 센서를 만들어 물류 과정에서 상품의 온도와 습도, 충격 등 정보를 관리하는 하드웨어(HW)와 소프트웨어(SW)를 개발 중이었습니다. 지난해 5월 소형 센서 ‘QTQ(One Time QR-code)’의 프로토타입은 데이터의 소실 가능성이 없는 최초의 장비를 목표로 했습니다. 마침 의약품 수송에 관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분위기가 무르익자, 윌로그는 식약처와의 소통을 늘렸습니다. 2주간 제약업계 담당자 321명을 대상으로 수송 규칙 변경에 대한 인식조사결과를 벌이고, 이를 식약처에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답변 결과로는 응답자 61%가 강화된 개정안에 대해 ‘모른다’고 답했으며, 선진 대응 사례와 추가적인 정보가 필요하다는 수치가 각각 45%와 36%를 기록한 수치를 공유하며 현장과 규제 당국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려 했습니다. 코로나19로 촉발된 백신 물류 수송 영역에 대한 관심은 식약처 입장에서도 새롭게 정의해야 할 영역이었습니다. 마침 정보기술(IT)과 서비스형소프트웨어(SaaS)를 토대로 시장에 새롭게 나서려는 윌로그는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었습니다.윤 대표는 “한국바이오의약품협회 등 주로 법안에 관여한 협회들을 통해 정보와 의견을 전달했다”며 “어차피 새로운 시장에 기준점을 누군가 잡아야 하고, 식약처가 혼자 하기 힘든 일이라면 현장을 진짜 아는 업체가 직접 나서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고 강조했습니다. “매출이 얼마나 늘어나는가는 중요하지 않았다”는 것이 윤 대표 말입니다.
문제는 예상보다 빠르게 터졌습니다. 우리 정부는 출입국관리법 제20조 등을 통해 외국인 유학생에 따른 시간제 근로 및 아르바이트를 규제하고 있습니다. 유학(D-2) 또는 일반연수(D-4)의 체류자격을 가진 이들이 아르바이트를 하려면 일정 수준의 한국어 능력을 보유하고 교내 유학생 담당자의 확인을 받아야 하며, 이외에도 근무시간과 업무 허용 분야에 대해 엄격한 규제가 따릅니다. 윤 대표는 “갑자기 일하던 중국인 유학생 한 명에게 일하는 것이 불법이라는 연락이 왔다며, 본인이 추방당할 뻔했다는 말을 해왔다”며 “더이상 관련 사업을 할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윤 대표는 한국에서 하던 모든 사업을 접고 베트남으로 떠났습니다. ‘제대로 된 창업’을 하기 전, 해외 경험을 쌓는 것을 미룰 수 없어서였습니다. 마침 졸업 마지막 학기였던 윤 대표는 베트남의 외국계 광고대행사에서 1년간 일하기로 하고 출국했습니다.
그는 도착한 지 석달 만에 또 사업을 벌입니다. 다니던 회사는 반년 만에 퇴사했습니다. 윤 대표는 “베트남에는 한국 음식이 인기가 많은데, 8명이 모여서 1만 8000원짜리 치킨을 한 조각씩 먹고 사진을 찍어대는 모습을 보고 한국 음식을 팔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습니다. 한국에서 친구들을 불러 곧바로 ‘오빠스(오빠들)’이라는 제육볶음 가게를 차렸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을 홀로 중국 국제학교에서 보내고, 대학 시절에도 자취를 했던 그는 요리에 자신이 있었습니다. 윤 대표는 “베트남 점심 가격이 1000원에서 2000원 정도 했는데, 3000원에 팔아도 줄을 서서 먹었다”며 “약 1년 정도 운영했는데, 특히 젊은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다”고 했습니다. 첫 식품사업은 넓은 의미로 윌로그의 시작이 됐습니다.
늦은 군 복무로 잠시 공백기를 가진 윤 대표는 2017년 현재의 동업자인 배성훈 공동대표를 만나 식자재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대전 지역 학교와 정부기관 등에 단체급식용 식재료를 납품하던 그는 약 2년간의 사업 경험을 통해 물류업계를 배웠습니다. “신선식품을 취급하다 보면, 예를 들어 파가 3일은 싱싱해야 하는데 하루 만에 시들 때가 있어요. 양배추는 색이 변해요. 아직 변할 때가 아닌데 빨리 죽는 것이죠.” 식자재의 유통 과정 부실 문제는 언론에도 수차례 보도되며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었지만, 정작 어디서 어떻게 잘못됐는지는 복잡한 유통과정 때문에 알기가 어려웠습니다.당시의 신선식품이나 의약품 배송 과정엔 소수의 외국계 업체들이 만드는 타코메타(종이 출력 기반 운반차 온도 측정기)나 USB 형태의 기록 기기가 혼합해 쓰였습니다. 운반자가 조작하기 쉽다는 점은 업계 사람들의 공공연한 비밀이었습니다. 윤 대표는 “기록기기 전원을 다 꺼버리고 추후 다시 시동을 걸어도 데이터가 연속된 것처럼 문제없이 뽑을 수 있었다”며 “대형 운반업체를 대상으로 ‘신뢰성을 더해주겠다’는 전략을 짜서 기기를 개발하고 영업망을 늘려갔다”고 전했습니다.
윌로그가 개발한 QTQ는 성인 남자 손바닥보다 작은 HW입니다. 특장차 내부나 컨테이너, 의약품 수송용기 등에 부착해서 씁니다. 온도, 습도, 충격 등을 기록하는데 데이터 검증 값을 QR코드와 관제 SW로 표출시켜줍니다. 모든 데이터는 클라우드 서버에 업로드시켜 위·변조 위협을 없앴습니다. 2019년 개발에 착수했는데, 프로토타입 완성에만 꼬박 2년이 걸렸습니다. 만들고도 영업망을 뚫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대형 업체 판로를 뚫는 전략이 주효했습니다. 돈이 더 들어도, 제품 신뢰성을 또 다른 무기로 내세울 법한 규모를 갖춘 곳들입니다. 지난달 국내 의약품 운송시장의 약 70%를 차지하는 동아쏘시오홀딩스 계열사 용마로지스와 물류 협약을 체결한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다시 윤 대표에게 규제에 대해 물었습니다. 스타트업과 규제에 대한 근본적인 관계를 질문하자, 그는 두 가지 분류를 들었습니다. 한 가지는 풀고자 하는 문제, 새롭게 정의될 시장 자체가 기존 규제와 상충하는 경우였습니다. 두 번째가 법이 없는 경우입니다. 그의 ‘중국어 선생님’ 서비스는 전자, 윌로그의 비즈니스 모델은 후자에 가까웠습니다.
윤 대표는 풀고자 하는 문제의 크기에 대해 말했습니다. 그는 “윌로그의 모델은 당국을 파트너로 삼고 새로운 시장을 스타트업이 정의해가는 영역이지만, 이런 형태가 항상 맞는 것도 아니다”며 “내 아이템이 시장에 꼭 필요하다는 확신만 있다면 기존 규제를 혁파해내고 큰 성공을 거두는 경우도 많다”고 했습니다. 명확하게 해결하고자 하는 목표, ‘사명’이 뚜렷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만 지금 이 시각에도 황당한 규제 때문에 사업이 백척간두 위기에 놓인 스타트업은 존재합니다. 일각에서는 정부 부처가 규제 개선에 대한 의지가 있더라도, 행정 처리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스타트업에겐 위협이 될 수 있다고도 지적합니다. 윤 대표는 이를 숙명으로 생각하되, 다각도의 소통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휴지 만드는 업체를 스타트업이라고 하지 않듯, 문제를 새롭게 정의할 때는 다양한 상황이 생길 수 있다”며 “시장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청취하려는 이들도 많으니, 당국과 협회의 소통 채널을 통해 관계를 꾸준히 다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참, 한 가지 더
신약 개발 스타트업, AI로 도약한다인공지능(AI)으로 새로운 의약품을 만드는 기술 스타트업이 부상하고 있습니다. 신약 개발은 복잡한 화합물의 조합을 따져야 하기 때문에 오랜 시간과 비싼 비용이 요구된다. AI가 이런 과정을 줄이도록 스타트업이 나서고 있습니다.
AI 스타트업 심플렉스는 최근 삼진제약과 신약개발 공동 연구 협약(MOU)을 체결했습니다. 심플렉스의 AI 신약 후보물질 발굴 플랫폼 'CEEK-CURE'를 적용해 후보 물질을 확보하고, 지적재산권은 공동 소유하기로 했습니다. 심플렉스는 지난해 SK케미칼과도 MOU를 체결한 바 있습니다. '설명 가능한 AI' 구현을 목표로 후보 물질을 탐색하는 것이 특징입니다.서울아산병원 혈액종양내과 전문의인 김이랑 대표는 스타트업 온코크로스를 이끕니다. 온코크로스는 대웅제약, JW중외제약과 함께 자사 AI 플랫폼 '랩터 AI'를 이용한 신약 후보 물질 탐색 및 약물 적응증 확인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항암 신약 분야서도 AI가 활약하고 있습니다. 지난 16일 AI 스타트업 스탠다임은 김학균 국림암센터 박사와 공동연구 계약을 체결한 바 있습니다.
이시은 기자 see@hankyung.com
우리나라에서도 규제에서 그 사업 기회를 찾는 신생 스타트업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레그테크 스타트업이 윌로그입니다. 공교롭게도 윤지현 윌로그 대표는 한때 규제로 운영하던 사업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수년 뒤, 그는 오히려 규제를 적절히 이용하고 수혜를 누리는 스타트업의 대표가 됐습니다. 윤 대표는 “규제에는 착한 규제도, 나쁜 규제도 없다”는 도발적 화두를 던집니다. 새로운 문제를 풀어가며 시장을 정의하는 것은 결국 이용자에게 최대 효용성이 돌아가기 위함이며, 이를 위해선 규제 당국을 ‘파트너’로 삼을 줄도 알아야 한다는 이유에서입니다.
한경 긱스(Geeks)가 윤 대표를 만나 윌로그의 성장 스토리를 들어봤습니다.
백신 상온 노출 파동이 부른 나비효과
윌로그는 최근 대목을 맞이했습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시행하는 ‘생물학적 제제 등의 제조, 판매관리규칙 일부개정령’의 계도기간이 지난달 종료되면서입니다. 이른바 ‘콜드체인 규제’로 불리던 정책입니다. 지난해 7월 개정 및 공포된 내용으로, 최근 6개월간은 법을 어겨도 처벌되지 않았지만 이제는 다릅니다. 업무정지 행정처분은 물론, 입허가 취소 조치까지 내려질 수 있습니다.개정령이 규제하는 세부내용은 ‘보관 시 준수사항(제5조, 제6조)’입니다. 쉽게 말하면 백신 등 의약품을 수송할 때, 내용물이 변질되지 않기 위해 갖가지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 것입니다. 수송설비 내부에 온도기록장치를 설치하고 2년 동안 기록을 보관하도록 하고, 차량이나 수송용기를 사전에 검증할 것 등을 정의했습니다. 같은 달 의약품 등 안전에 관한 규칙 역시 계도기간 없이 시행됐는데, 냉장·냉동 의약품을 운송할 때 자동온도기록장치를 필수적으로 갖추고, 적정 온도를 유지했는지 따지도록 했습니다.지난 2020년 있었던 인플루엔자(독감) 백신 상온 노출 파동이 계기가 됐습니다. 정부가 독감 무료 접종 사업을 벌이며 500만 명분의 백신을 마련했는데, 수송 단계에서 일부가 상온에 노출돼 변질 위험에 처한 것입니다. 백신은 수송 과정에서 2도~8도를 벗어날 경우 품질에 이상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 사태는 이듬해 독감 접종 후 이상반응 신고가 2000건을 넘어서며 불안감을 키웠습니다. 당시 질병관리청은 “독감 백신의 콜드체인 이상 논란 등으로 불신에 의한 접종 기피 현상이 발생했으며, 예년에 비해 이상 반응 신고 사례가 현저히 급증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지난해에는 충북 음성, 광주광역시 등에서 코로나19 백신이 상온에 노출되면서 백신 유통 과정이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습니다. 사회적으로 백신의 수송안전성에 대한 요구가 커지던 시기입니다.윤 대표는 일련의 사태 이전부터 관련 사업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소형 센서를 만들어 물류 과정에서 상품의 온도와 습도, 충격 등 정보를 관리하는 하드웨어(HW)와 소프트웨어(SW)를 개발 중이었습니다. 지난해 5월 소형 센서 ‘QTQ(One Time QR-code)’의 프로토타입은 데이터의 소실 가능성이 없는 최초의 장비를 목표로 했습니다. 마침 의약품 수송에 관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분위기가 무르익자, 윌로그는 식약처와의 소통을 늘렸습니다. 2주간 제약업계 담당자 321명을 대상으로 수송 규칙 변경에 대한 인식조사결과를 벌이고, 이를 식약처에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답변 결과로는 응답자 61%가 강화된 개정안에 대해 ‘모른다’고 답했으며, 선진 대응 사례와 추가적인 정보가 필요하다는 수치가 각각 45%와 36%를 기록한 수치를 공유하며 현장과 규제 당국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려 했습니다. 코로나19로 촉발된 백신 물류 수송 영역에 대한 관심은 식약처 입장에서도 새롭게 정의해야 할 영역이었습니다. 마침 정보기술(IT)과 서비스형소프트웨어(SaaS)를 토대로 시장에 새롭게 나서려는 윌로그는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었습니다.윤 대표는 “한국바이오의약품협회 등 주로 법안에 관여한 협회들을 통해 정보와 의견을 전달했다”며 “어차피 새로운 시장에 기준점을 누군가 잡아야 하고, 식약처가 혼자 하기 힘든 일이라면 현장을 진짜 아는 업체가 직접 나서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고 강조했습니다. “매출이 얼마나 늘어나는가는 중요하지 않았다”는 것이 윤 대표 말입니다.
베트남서 사업 경험 쌓아 '재도약'
윤 대표는 연쇄창업가입니다. 과거엔 규제 때문에 사업을 포기한 적도 있습니다. 규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지금과는 반대의 모습입니다.그는 건설업체를 일궈낸 조부를 따라 어릴 적부터 사업가를 꿈꿨습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며 크고 작은 사업에 도전했습니다. 주로 외국인 유학생에 관련한 아이템을 구상했는데, “용돈 깨나 벌었다”는 것이 그의 얘깁니다. 유학생들의 한국어 이름을 지어주고 캘리그래피 등을 만들어 파는 사업을 했습니다. 또 한 가지 구상했던 아이템이 ‘중국어 과외선생님’입니다. 윤 대표는 “대학에서 공부하는 중국인 친구들 중,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여유 있는 학생들은 시간이 넘쳤고 그렇지 못한 학생들은 최저시급보다 아래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이들을 중국어 선생님으로 매칭시키는 사업을 했다”고 했습니다.문제는 예상보다 빠르게 터졌습니다. 우리 정부는 출입국관리법 제20조 등을 통해 외국인 유학생에 따른 시간제 근로 및 아르바이트를 규제하고 있습니다. 유학(D-2) 또는 일반연수(D-4)의 체류자격을 가진 이들이 아르바이트를 하려면 일정 수준의 한국어 능력을 보유하고 교내 유학생 담당자의 확인을 받아야 하며, 이외에도 근무시간과 업무 허용 분야에 대해 엄격한 규제가 따릅니다. 윤 대표는 “갑자기 일하던 중국인 유학생 한 명에게 일하는 것이 불법이라는 연락이 왔다며, 본인이 추방당할 뻔했다는 말을 해왔다”며 “더이상 관련 사업을 할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윤 대표는 한국에서 하던 모든 사업을 접고 베트남으로 떠났습니다. ‘제대로 된 창업’을 하기 전, 해외 경험을 쌓는 것을 미룰 수 없어서였습니다. 마침 졸업 마지막 학기였던 윤 대표는 베트남의 외국계 광고대행사에서 1년간 일하기로 하고 출국했습니다.
그는 도착한 지 석달 만에 또 사업을 벌입니다. 다니던 회사는 반년 만에 퇴사했습니다. 윤 대표는 “베트남에는 한국 음식이 인기가 많은데, 8명이 모여서 1만 8000원짜리 치킨을 한 조각씩 먹고 사진을 찍어대는 모습을 보고 한국 음식을 팔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습니다. 한국에서 친구들을 불러 곧바로 ‘오빠스(오빠들)’이라는 제육볶음 가게를 차렸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을 홀로 중국 국제학교에서 보내고, 대학 시절에도 자취를 했던 그는 요리에 자신이 있었습니다. 윤 대표는 “베트남 점심 가격이 1000원에서 2000원 정도 했는데, 3000원에 팔아도 줄을 서서 먹었다”며 “약 1년 정도 운영했는데, 특히 젊은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다”고 했습니다. 첫 식품사업은 넓은 의미로 윌로그의 시작이 됐습니다.
늦은 군 복무로 잠시 공백기를 가진 윤 대표는 2017년 현재의 동업자인 배성훈 공동대표를 만나 식자재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대전 지역 학교와 정부기관 등에 단체급식용 식재료를 납품하던 그는 약 2년간의 사업 경험을 통해 물류업계를 배웠습니다. “신선식품을 취급하다 보면, 예를 들어 파가 3일은 싱싱해야 하는데 하루 만에 시들 때가 있어요. 양배추는 색이 변해요. 아직 변할 때가 아닌데 빨리 죽는 것이죠.” 식자재의 유통 과정 부실 문제는 언론에도 수차례 보도되며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었지만, 정작 어디서 어떻게 잘못됐는지는 복잡한 유통과정 때문에 알기가 어려웠습니다.당시의 신선식품이나 의약품 배송 과정엔 소수의 외국계 업체들이 만드는 타코메타(종이 출력 기반 운반차 온도 측정기)나 USB 형태의 기록 기기가 혼합해 쓰였습니다. 운반자가 조작하기 쉽다는 점은 업계 사람들의 공공연한 비밀이었습니다. 윤 대표는 “기록기기 전원을 다 꺼버리고 추후 다시 시동을 걸어도 데이터가 연속된 것처럼 문제없이 뽑을 수 있었다”며 “대형 운반업체를 대상으로 ‘신뢰성을 더해주겠다’는 전략을 짜서 기기를 개발하고 영업망을 늘려갔다”고 전했습니다.
윌로그가 개발한 QTQ는 성인 남자 손바닥보다 작은 HW입니다. 특장차 내부나 컨테이너, 의약품 수송용기 등에 부착해서 씁니다. 온도, 습도, 충격 등을 기록하는데 데이터 검증 값을 QR코드와 관제 SW로 표출시켜줍니다. 모든 데이터는 클라우드 서버에 업로드시켜 위·변조 위협을 없앴습니다. 2019년 개발에 착수했는데, 프로토타입 완성에만 꼬박 2년이 걸렸습니다. 만들고도 영업망을 뚫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대형 업체 판로를 뚫는 전략이 주효했습니다. 돈이 더 들어도, 제품 신뢰성을 또 다른 무기로 내세울 법한 규모를 갖춘 곳들입니다. 지난달 국내 의약품 운송시장의 약 70%를 차지하는 동아쏘시오홀딩스 계열사 용마로지스와 물류 협약을 체결한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사명'은 명확히, 소통은 다양하게
윌로그 법인은 지난해 5월 설립됐습니다. 의약품 운송 이외에도 전자부품, 신선물류 분야에서 사업을 확장하고 있지만 아직은 갓 1년을 넘긴 신생 스타트업입니다. 투자유치 라운드로 보더라도, 올해 1월 한화투자증권으로부터 시리즈A 2차 투자를 유치한 것이 마지막입니다.다시 윤 대표에게 규제에 대해 물었습니다. 스타트업과 규제에 대한 근본적인 관계를 질문하자, 그는 두 가지 분류를 들었습니다. 한 가지는 풀고자 하는 문제, 새롭게 정의될 시장 자체가 기존 규제와 상충하는 경우였습니다. 두 번째가 법이 없는 경우입니다. 그의 ‘중국어 선생님’ 서비스는 전자, 윌로그의 비즈니스 모델은 후자에 가까웠습니다.
윤 대표는 풀고자 하는 문제의 크기에 대해 말했습니다. 그는 “윌로그의 모델은 당국을 파트너로 삼고 새로운 시장을 스타트업이 정의해가는 영역이지만, 이런 형태가 항상 맞는 것도 아니다”며 “내 아이템이 시장에 꼭 필요하다는 확신만 있다면 기존 규제를 혁파해내고 큰 성공을 거두는 경우도 많다”고 했습니다. 명확하게 해결하고자 하는 목표, ‘사명’이 뚜렷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만 지금 이 시각에도 황당한 규제 때문에 사업이 백척간두 위기에 놓인 스타트업은 존재합니다. 일각에서는 정부 부처가 규제 개선에 대한 의지가 있더라도, 행정 처리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스타트업에겐 위협이 될 수 있다고도 지적합니다. 윤 대표는 이를 숙명으로 생각하되, 다각도의 소통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휴지 만드는 업체를 스타트업이라고 하지 않듯, 문제를 새롭게 정의할 때는 다양한 상황이 생길 수 있다”며 “시장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청취하려는 이들도 많으니, 당국과 협회의 소통 채널을 통해 관계를 꾸준히 다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참, 한 가지 더
신약 개발 스타트업, AI로 도약한다인공지능(AI)으로 새로운 의약품을 만드는 기술 스타트업이 부상하고 있습니다. 신약 개발은 복잡한 화합물의 조합을 따져야 하기 때문에 오랜 시간과 비싼 비용이 요구된다. AI가 이런 과정을 줄이도록 스타트업이 나서고 있습니다.
AI 스타트업 심플렉스는 최근 삼진제약과 신약개발 공동 연구 협약(MOU)을 체결했습니다. 심플렉스의 AI 신약 후보물질 발굴 플랫폼 'CEEK-CURE'를 적용해 후보 물질을 확보하고, 지적재산권은 공동 소유하기로 했습니다. 심플렉스는 지난해 SK케미칼과도 MOU를 체결한 바 있습니다. '설명 가능한 AI' 구현을 목표로 후보 물질을 탐색하는 것이 특징입니다.서울아산병원 혈액종양내과 전문의인 김이랑 대표는 스타트업 온코크로스를 이끕니다. 온코크로스는 대웅제약, JW중외제약과 함께 자사 AI 플랫폼 '랩터 AI'를 이용한 신약 후보 물질 탐색 및 약물 적응증 확인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항암 신약 분야서도 AI가 활약하고 있습니다. 지난 16일 AI 스타트업 스탠다임은 김학균 국림암센터 박사와 공동연구 계약을 체결한 바 있습니다.
이시은 기자 s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