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와 법률문제는 분리할 수 없다

ESG 논의의 핵심으로 다시 되돌아봐야할 시점이다. ESG는 재무적 요소를 경시하면서 비재무적 요소만을 고려하는 것이 아니다. 두 요소를 균형 있게 고려하는 것이 기업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가능케 한다는 믿음이다. 경제 환경 변화에 따라 두 요소 사이의 고려 비중이 변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한경ESG] ESG와 법⑫
코웨이 임직원들이 ESG 경영의 하나로, 산책하며 쓰레기를 줍는 ‘리버 플로깅’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사진=코웨이 제공. 사진은 기사와 무관
ESG(환경·사회·지배구조)에 대한 비관적 시각이 늘고 있다. 러·우전쟁 발발 초기만 해도 서방 기업은 인권이나 세계평화 같은 가치 추구를 위해 재무적 손실을 감수하면서 러시아 내 사업을 철수했다. EU도 경제 제재의 일환으로 러시아산 석유와 석탄 수입을 금지하는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러시아가 천연가스 수출을 통제하고 급기야 EU 내 에너지 위기 가능성이 제기되자 탈석탄에 앞장서던 독일 정부조차 지난 6월 석탄화력발전소를 재가동하는 결정을 내렸다.최근에는 연말에 폐쇄 예정이던 원자력발전소 3기의 가동 연한 연장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어떤 나라보다 탈원전 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원자력발전을 EU 그린 택소노미에 포함하는 것을 앞장서 반대하던 독일이었기에 비록 일시적 조치겠지만, 이러한 입장 변화는 경제적 어려움 앞에서는 ESG도 별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기업이나 금융기관이 ESG 경영이나 투자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이를 가장하는 그린워싱(greenwashing)에 대한 우려도 계속된다. 도이치뱅크 계열사인 DWS는 ESG 펀드 실적을 과장했다는 의혹에 따라 독일 연방금융감독청(BaFin)과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 미국의 BNY멜론 투자자문은 ESG 펀드와 관련해 오인 가능성이 있는 투자정보를 기재했다는 이유로 미국증권위원회(SEC)의 조사를 받다가 150만 달러의 벌금을 납부하기로 합의했다. 골드만삭스에 대해서도 비슷한 이유로 SEC의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영국의 유명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도 지난달 특집을 통해 ESG에 대한 비판에 동참했다. 환경·사회·거버넌스 목표는 서로 충돌하고 측정하기도 어렵기에 온실가스 배출 감축 외 ESG 목표는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고개 드는 회의론, ESG 논의 성숙 계기로게다가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고 각국 중앙은행과 정부들이 기준금리 인상과 양적긴축 정책을 취함에 따라 세계적 경기침체 우려가 엄습하고 있다. 위기에 대비하고 비용을 절감해야 하는 기업에 이해관계자를 배려하고 사업을 친환경, 친사회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비용을 지출하라는 주장은 어쩌면 사치처럼 들릴 수 있다. 경제 환경 변화에 따라 ESG에 대한 비판적 견해가 늘어나는 것도 놀랍지는 않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변화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미국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의 2019년 성명서와 블랙록 래리 핑크 회장의 연례 서한을 통해 촉발된 세계적 ESG 열풍은 이렇게 몇 년 만에 수그러들고 말 것인가? 인류가 직면한 환경·사회 문제를 법률이나 정부 규제뿐 아니라 투자자나 시장의 메커니즘을 통해 해결하자는 ESG 논의는 허상에 불과한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ESG 논의의 핵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ESG란 회사가 경영과 관련한 의사결정을 하고, 투자자가 투자와 관련한 의사결정을 함에 있어 재무적 요소뿐 아니라 환경·사회·지배구조 같은 비재무적 요소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을 말한다. ESG 논의는 재무적 요소와 비재무적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자는 것이지, 재무적 요소를 경시하면서 비재무적 요소만을 고려하자는 주장이 결코 아니다. ESG 논의의 핵심은 재무적 요소와 비재무적 요소를 균형 있게 고려하고 이해관계자를 적절하게 배려하는 것이 회사의 지속 가능한 발전과 투자자의 장기적 투자수익에 기여한다고 보는 데 있다.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경제 환경 변화에 따라 재무적 요소와 비재무적 요소에 대한 고려 비중이 변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친환경에너지 가격이 크게 상승하면 이에 대한 비중을 일시적으로나마 줄이는 것이 기업의 ESG 평가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는 있지만, 종합적으로는 기업의 이익에 부합할 수 있다. 물가상승으로 소비자들이 제품의 친환경·친사회적 요소보다 저렴한 가격을 중시하면 기업의 전략 역시 이에 따라 변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경제 환경 변화로 환경·사회 관련 규제의 도입이 늦어질 것으로 예상되면, 기업의 선제적 대비 역시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 회사의 수탁자인 경영자 입장에서 합리적 선택이 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ESG 요소가 기업가치에 미치는 영향을 정확히 평가할 수 있느냐다. 기후변화가 기업가치나 자산가치에 구체적으로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좌초자산에 대한 가치평가는 어떻게 할 것인지, 전 세계 주요 금융기관이 투자나 대출 시 기업의 ESG 수준을 고려하는 상황에서 자금조달 비용은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같은 것이다. 이러한 논의를 통해 ESG가 단순한 구호가 아닌, 기업의 지속 가능한 발전과 위험 조정 수익율(risk adjusted return) 증가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냉정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 문제들은 이사나 자산운용사의 선관주의 의무와도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이러한 점에서 최근 ESG에 대한 비판이 ESG 논의를 보다 성숙시키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 기대한다.

공시에서 평가·라벨링까지 법제도화 과제이제 지난 1년간 연재해온 기고를 마무리하려 한다. ESG는 회사의 경영방식이나 금융기관의 투자와 자산운용 방식을 변화시킬 큰 흐름이다. 전 세계 주요 연기금, 국부펀드, 금융기관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ESG 요소를 고려해 투자와 대출을 시행하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 최상단에 있는 기업들이 거래 대상을 선정하는 데 인권경영이나 탄소배출 같은 ESG 수준을 고려한 지도 꽤 됐다. EU를 중심으로 여러 나라가 인권 실사를 의무화하고 있으며, 기후변화 문제를 중심으로 비재무적 공시 관련 법제도도 강화하고 있다. 비록 속도 차이는 있겠지만, ESG 경영과 투자는 이제 돌이키기 어려운 지점에 이르렀다.

하지만 아직도 논의가 필요한 법률문제가 많다. 주주중심주의와 이해관계자주의, 회사의 목적이 무엇인지 같은 근본적 논의부터 공시·인증·평가로 이어지는 ESG 정보 법제도 수립, ESG 펀드나 채권의 라벨링(labeling) 문제, 이사회 다양성과 노동이사제, 권고적 주주제안과 ESG 주주행동주의 같은 지배구조 문제, 그린워싱을 비롯한 각종 분쟁 가능성, 인권경영과 공급망 관리, 에너지전환 과정에서의 다양한 이해관계 조정 같은 것들이다. 그동안의 연재가 ESG 법률 문제의 중요성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법제도를 수립하는 데 도움이 되었기를 바란다.

정준혁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