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호의 영화로 보는 삶] 모비딕의 역습

한경닷컴 더 라이피스트
출처:네이버 영화
<프롤로그>
영화<백경(Moby Dick), 1956>에서는 복수에 눈이 먼 광기에 가득 찬 선장이 자신의 욕망을 위해 많은 선원들을 멸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다. 절대적인 힘을 가진 자연과 우주의 상징으로 나오는 고래에 대항하는 모습은 마치 인류가 자신의 넘치는 욕망을 채우기 위해 자연을 파괴하고 전쟁을 일으켜 결국 스스로 몰락의 길을 걷는 모습과 닮아있다. 특히 광기와 집착에 가득 찬 선장은 현대판 정치인들이 국민들을 지옥의 뜨거운 불구덩이로 몰아넣는 혹독한 상황과 흡사하다.
출처:네이버 영화
<영화 줄거리 요약>
바다에 희망을 걸고 사는 이스마엘(리차드 베이스하트 분)은 항구에서 우연히 만난 식인종 퀴퀘크(프레데릭 레더버 분)를 만나 같이 포경선 피코트호를 타게 된다. 그 배의 선장 에이합(그레고리 펙 분)은 태평양에서 모비딕이라는 거대한 흰 고래에게 한쪽 다리를 잃고 복수를 다짐하며 광기의 항해를 선포한다. 선장의 광기를 우려한 부선장 스타벅(레오 겐 분)은 선원들이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며 반란을 꾀해보지만 배에서 신과 같은 존재인 에이합의 선동과 궤변에 굴복당해 결국 불가능한 사냥에 동참하게 된다. 에이합 선장과 선원들은 마침내 모비딕이 나타나자 운명의 결전을 맞이한다.
출처:네이버 영화
<관전 포인트>
A. 허먼 멜빌의 원작 소설은?
원작자인 허먼 멜빌이 직접 경험한 해양 생활을 바탕으로 1851년 완성한 모비딕 소설은 그의 생전에는 빛을 보지 못하고 단지 해양 모험담을 쓴 군소 작가의 한 사람으로 잊혔다. 그러다 1921년 레이먼드 위버라는 콜롬비아 대학교수이자 저명한 평론가가 정열을 기울여 쓴 멜빌에 대한 삶과 문학의 전기가 발표되고 나서 갑자가 모비딕은 재조명을 받으면서 영국과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일개 무명작가가 영국의 셰익스피어, 러시아의 도스토옙스키에 비교되는 미국의 대문호가 된 것이다. <모비딕>은 <리어왕>, <폭풍의 언덕>과 함께 영문학 3대 비극으로 꼽히기도 한다.
B. 이슈마엘이 바다로 떠난 이유는?
매사추세츠의 학교 선생이던 이슈마엘은 광활한 바다의 로맨스를 위해 이전의 삶을 접고 배를 타러 떠난다. 평소 "영혼에 우울한 기운이 엄습할 때는 다시 바다로 가야 한다. 어떤 길을 선택하든 그 길은 바다로 이어진다. 바다에서 모든 사람은 거울 앞에 서듯 자신을 발견한다"라며 바다는 우리 모두의 삶, 우주라고 생각한다. 현대인들이 자신의 잊힌 정체성을 찾기 위해 권태에 가득 찬 현실에서 벗어나 여행을 떠나는 원리와 비슷한 것이다.
C. 선장의 광기를 나타내는 장면은?
스타벅 일등 항해사가 선장의 무모한 복수를 만류하자, 선장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어떤 것이 날 미치게 해, 인간에 대한 애정과 갈망을 무시하고 감히 꿈도 못 꾸던 일을 하라고 밀어붙이지. 신인지 누구인지 이 에이합의 팔을 자꾸만 들어 올려, 신의 권능으로 우린 세상을 떠돌수 밖에 없어, 저기 마냥 돌아가는 도르래처럼, 그게 운명이지. 지옥 불구덩이까지 쫓아가서라도 놈을 잡을 것이다. 지구상의 모든 대양을 뒤져서라도 놈의 물구멍에서 핏물이 터져 나오게 하겠다" 라며 자신의 광기를 이미 예정된 운명으로 간주해 버린다.
D. 영화에서 주는 교훈은?
거대한 자연을 상대로 복수의 집념을 불태우는 선장의 행위는 자연과 우주에 대한 무모하고 사악한 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자연은 인간이 사랑하고 보존하면서 도움을 얻는 대상이지 미워하고 파괴하고 보복하는 대상이 아니라는 교훈을 준다. 최근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엄청난 화재와 물난리 등 자연재해와 무서운 전염병의 창궐은 자연을 파괴하는 인간들에 대한 신(모비딕)의 역습으로도 볼 수 있다.
E. 선장의 광기를 경고하는 징조는?
@영국배 선장의 경고: 모비딕의 공격으로 한쪽 팔을 잃은 영국 선장이 근처에서 모비딕을 봤다고 하자 에이합은 왜 복수하지 않았냐고 다구친다. 그는 "잡고 싶지도 않았소, 팔 하나로 충분하잖소? 남은 이 팔마저 잃어버리면 어쩌란 말이요"라며 과거의 원한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날 것을 현명하게 일깨워준다.
@자연의 경고: 거센 폭풍우와 벼락이 쳐서 나침반을 망가뜨려 배가 향하던 반대 방향으로 가게 되자, 에이합은 태양의 위치를 보고 나침반이 고장 난 것을 눈치채고 다시 원래 향하던 태평양으로 뱃머리를 돌리며 하늘의 경고를 무시하게 된다.
F. 이스마엘의 마지막은?
평소 백인들이 보기엔 잔혹한 식인종이라 여기던 친구 퀴퀘그는 죽음을 예견하고 목수에게 "물이 못 들어오게 타르로 이음새를 메꿔줘"라며 2달러에 미리 관을 짜둔후 자신의 모든 소지품을 이스마엘에게 남긴다. 드디어 배는 거대한 모비딕과 운명의 결전에서 선장을 비롯한 선원 모두가 전멸하자 간신히 살아남은 이스마엘은 친구의 관을 타고 하루 반 동안 바다에 떠다니다가 아들을 구하기 위해 항해하던 포경선 레이첼호의 가디너 선장에 의해 구사일생으로 구조된다.
출처:네이버 영화
<에필로그>
정치란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작금의 정치는 정치인 각자가 자신의 욕망과 야합한 패거리주의로 질주하며 국민들에게 희망과 기쁨보다는 피곤함과 절망감만 안겨주고 있다. 영화속 에이합 선장이 복수, 분노, 광기로 가득 찬 선동으로 많은 선량한 뱃사람들을 모비딕의 아가리로 내몰았듯이 탐욕의 정치인들이 국민들을 좌절과 위기의 깊은 바다로 내몰고 있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서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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