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길남의 KAIST 연구실은 '1세대 벤처 산실'

허진호·김정주·송재경 등 IT 거물 배출
전길남 KAIST 명예교수는 1982년부터 2008년까지 KAIST 전산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그가 있던 시스템구조연구실(SA랩)은 뛰어난 논문을 쓰고 대학교수가 되려는 학생보다 새로운 아이디어로 벤처기업 창업에 도전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전 교수 역시 제자들에게 “박사 학위를 받은 뒤에 왜 꼭 교수나 연구원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그 대신 세상에 뭔가 의미 있는 것을 해보라”고 조언하곤 했다.

전 교수와 오랫동안 함께한 제자로는 한국 최초의 인터넷 회사인 아이네트를 창업하고, 인터넷기업협회장을 지낸 허진호 전 세마트랜스링크인베스트먼트 대표가 있다. 허 대표는 1983년부터 7년간 KAIST에 있으면서 전 교수 밑에서 공부했다. 그는 “당시 우리 SA랩에서는 벤처에 도전하지 않고 교수가 된다고 하면 주류에서 밀려나는 분위기”라고 했다. 고인이 된 김정주 넥슨 창업자도 전 교수의 제자다. “김정주는 정말 똑똑한 친구인데 안타까워요. 거의 항상 톱에 있는 학생이었어요. 한국에서 디즈니 같은 회사를 만들고 싶어 했죠. 초등학교 때 음악(바이올린)도 잘해서 줄리아드 예비학교까지 다녔어요. 대학원에서는 저에게 암벽 등반 배운 게 제일 좋았다고 하더군요. 남극에서 무슨 제일 높은 산에 갔다가 크게 혼났다고 말하기도 했었는데….” 전 교수는 안타까운 듯 말을 흐렸다.리니지, 바람의나라 게임을 만든 송재경 엑스엘게임즈 대표 역시 비슷한 시기에 전 교수에게서 전산학을 배웠다. SA랩은 당시 국내 1세대 벤처의 산실 역할을 했다. 네오위즈에서 ‘원클릭 서비스’를 개발한 나성균 대표, 정철 전 삼보컴퓨터 대표, 박현제 전 솔빛미디어 대표 등도 전 교수의 제자다. 이들은 사회에 나가기 전 원칙주의자인 전 교수 밑에서 탄탄한 실력을 쌓았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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