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되면 환율 1400원 간다"…'킹달러'에 속수무책 [정인설의 워싱턴나우]
입력
수정
'잭슨홀 미팅'서 파월의 깜짝 발언 주목 / 美증시 주간전망두 손 두 발 다 들었습니다. 환율 그래프를 보고 있으면 그 끝을 쉬이 예상하기 힘듭니다. 한 숨과 더불어 달러의 독야청청을 표현하는 용어만 늘고 있습니다. '강달러' '킹달러' '킹콩달러' '달러 스마일' 등 다음엔 어떤 간판을 달고 나올 지 궁금합니다.
한국, 금리 올리고 중국은 인하 전망
달러 독주 시대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미국인들은 인플레이션으로 못살겠다고 아우성이지만 주요 국가 중 미국 상황이 제일 낫기 때문입니다. 그 와중에 '반도체 지원법'이니 '인플레이션 감축법' 등으로 세계 핵심 공장까지 미국으로 쓸어담으려 하고 있습니다. '세계 공장'의 원조인 중국은 경기침체를 피하기 위해 여력이 없습니다. 유럽도 천정부지로 가격이 치솟은 에너지와 사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1년 간 10배 오른 천연가스 때문에 두 자리수 물가를 보자마자 바로 경기침체를 염려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여전히 '잃어버린 30년'에서 한 치도 나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고금리·고물가·고환율' 3중고에서 허덕이는 상황입니다. 이번 주도 미국의 이런 독야청청을 관전하는 시기가 될 전망입니다. 달러로 대표되는 미국의 독주 체제를 재확인하면서 다른 국가들의 침체 피해 호소를 목격할 가능성이 큽니다.중국은 22일 경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올들어 두번째로 기준금리를 내렸습니다. 유럽에선 영국과 독일에 이어 누가 또 '10%대 물가'를 고해성사할 지 모릅니다. 한국도 미국과의 금리 역전이 부담돼 또다시 기준금리를 올려야 합니다.
제롬 파월 미 중앙은행(Fed) 의장은 26일(현지시간) 3년 만에 오프라인으로 열리는 '잭슨홀 미팅'에서 어떤 여유를 부릴까요. 노동시장은 강력하다는 게 입증됐고 물가는 꼭지를 찍은 듯 하니 또다시 매파적인 발언을 쏟아낼 가능성이 있습니다. 9월 FOMC에서 75bp(1bp=0.01%포인트) 인상 가능성이 높아지면 강달러는 더욱 확고해집니다.
이 와중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사우디에 가서 "위안화로 사우디산 원유를 결제하겠다"고 합의하면 외환시장은 요동칠 수 있습니다. 이번 주는 '킹달러'를 중심으로 글로벌 증시 일정을 정리하겠습니다.
'정인설의 워싱턴나우'는 매주 월요일 국내 최대 해외 투자정보 플랫폼인 '한경 글로벌마켓'에서 유튜브 영상과 온라인 기사로 찾아뵙고 있습니다.
'킹달러'에 미·중 갈등은 없다
중국은 '청개구리 3총사' 중 하나입니다. 긴축이 대세가 된 상황에서 주요 20개국(G20) 중 러시아 터키와 함께 거꾸로 기준금리를 내리고 있습니다.중국은 사실상 기준금리 역할을 하는 1년 만기 대출우대금리(LPR)를 지난해 말부터 인하하고 있습니다. 내수 경기를 살리고 수출을 늘리기 위한 조치입니다.
지난해 12월에 이어 올 1월에 1년 만기 LPR을 내렸습니다. 5월엔 5년 만기 LPR만 떨어뜨렸습니다. 이날도 1년 만기 LPR을 3.70%에서 3.65%로 0.05%포인트 인하했습니다. 5년 만기 LPR도 4.45%에서 4.30%로 내렸습니다. 1년 만기 LPR은 일반대출의 기준금리가 되고 5년 만기 LPR은 주택담보대출의 기준금리 역할을 합니다. 중국이 금리 인하에 나선 것은 경기가 예상보다 부진하기 때문입니다. 7월 소매판매가 예상치인 5%에 못미치는 2.7% 증가에 그쳤고 산업생산 증가율도 전달보다 내려갔습니다.
다른 조건이 동일한 상태에서 중국이 기준금리를 내리면 위안화 가치는 떨어지고 달러 가치는 올라갑니다.
유럽이 '달러 스마일'의 일등공신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대표 지표는 달러 인덱스입니다. 주요 6개국의 통화 가치와 달러 가치를 비교 산출한 값입니다. 1973년 3월의 달러 가치를 100으로 해서 정하는데 유로화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칩니다.달러 인덱스의 반영 비율이 유로화가 57.6%로 가장 높기 때문입니다. 엔화(13.6%)와 영국 파운드화(11.9%) 등의 순입니다. 유럽과 일본, 영국 모두 하나같이 미국보다 경제 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달러 독주 시대의 첨병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유럽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영국이 지난달 인플레이션율이 10.1%라고 발표한 데 이어 독일도 뒤따라갈 것이라고 인정했습니다. 경기침체도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이후 돈풀기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영향이 크지만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로 인해 유럽의 두 맹주 국가가 똑같이 큰 피해를 입는 형국입니다.
요아힘 나겔 독일연방은행 총재는 20일(현지시간) 독일 언론 라이니쉐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올가을 독일의 물가상승률이 10%가 될 수 있다"라며 "1951년 4분기(11%) 후 70여 년 만에 가장 높은 물가상승률을 기록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7월 물가상승률이 7.5%였는데 10%대로 뛸 것이라 예고한 것입니다. 또 "내년 겨울엔 경기침체가 예상된다"고 했습니다. 당연히 '천연가스 쇼크' 때문입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1년 간 가스가격이 10배나 올라 같은 기간 독일 전기요금은 최대 7배나 올랐다고 합니다. 독일 기업이 공급받는 전력 가격은 올 들어 37.2% 올랐습니다.
러시아 국영 에너지업체 가스프롬은 오는 31일부터 다음달 2일까지 사흘간 독일과 이어진 가스관인 노르트스트림1을 폐쇄합니다. 그 이후엔 공급 능력(1억6700만㎥)의 20% 수준만 공급하기로 했습니다.
1년만에 '매'로 돌변한 파월
나겔 총재를 비롯해 유럽연합(EU) 소속 많은 중앙은행 총재들이 25~27일 잭슨홀 미팅에 참석합니다. 정식 행사명은 '잭슨홀 경제 심포지엄'입니다. 2019년 이후 3년 만에 열리는 오프라인 행사입니다. 주제는 '경제와 정책에 대한 제약조건 재평가'(Reassessing Constraints on the Economy and Policy)입니다.보통 30~40여개국의 중앙은행 총재들과 석학들을 포함해 100여명이 모입니다. 이번엔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참석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유럽에서 10여명의 중앙은행 총재가 잭슨홀에 갑니다.
거기서 여러 사람들이 각국의 경제 상황과 인플레이션 대응 공조에 대해 말하겠지만 가장 주목을 끄는 건 역시 파월 의장입니다. 파월 의장은 그동안 잭슨홀에서 중요 발언을 했습니다. 온라인으로 열렸던 2020년엔 평균물가목표제 도입을 처음 소개했습니다. Fed 목표치인 2%대 물가를 한 두 번 넘더라도 용인하고 평균 2%만 유지시키겠다는 게 골자였습니다. 역시나 화상 연설로 대체한 지난해엔 예상대로 "테이퍼링을 연내 실시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파월이 '슈퍼 비둘기'로 통하던 시절, 지극히 비둘기적 발언이었습니다.
올해엔 분위기가 180도 바뀌었습니다. Fed 인사들이 약속이나 한듯 금리를 올려 인플레이션을 반드시 잡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기침체 우려가 더 사그라들면 긴축숙도가 빨라질 전망입니다. 미국의 GDP 실시간 집계 시스템인 GDP나우는 미국의 3분기 성장률을 1.6%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10월말에 나오는 미국의 3분기 GDP가 플러스로 전환하면 미국이 1·2분기에 두 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게될 지 모릅니다. 그러면 Fed는 인플레이션을 Fed 목표치인 2%로 떨어뜨리기 위해 긴축을 더 가속화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달러 가치는 더 올라 원·달러 환율이 13년 만에 1400원대에 근접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파월 의장은 이번에도 금리인상의 당위성과 인상 속도 조절론을 동시에 거론할 공산이 큽니다. 복합적인 발언을 통해 향후에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서 "들어오는 데이터에 따라 결정하겠다"고 뻔한 결론을 맺을 가능성도 다분합니다. 9월 FOMC까지 아직 8월 고용보고서와 8월 소비자물가지수(CPI)라는 핵심 지표 발표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은행 총재의 입도 주목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올해 잭슨홀 회의에서 마지막 세션 발표자로 나섭니다. 잭슨홀 회의의 세션 발표자로 나선 한은 총재는 이 총재가 처음입니다.잭슨홀 회의 참석 전에 금통위를 주재합니다. 현재로선 한국 금통위는 25bp 인상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보다 이 총재가 기자간담회에서 향후 금리인상 전망과 환율 대응에 대해 어떤 발언을 할 지에 관심이 갑니다.
한은과 기획재정부는 그동안 "강달러는 세계적 현상이어서 외환시장의 인위적 개입은 없다"는 입장을 취해왔습니다. 원·달러 환율이 1330원을 넘어선 상황에서 입장에 변화가 있을 지 주목됩니다. 다시 한번 그런 입장을 강조한다면 원·달러 환율은 치솟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마지막 변수는 시진핑 주석의 사우디 방문 가능성입니다. 영국 가디언지가 지난 10일에 "다음주(15~20일)에 시 주석에 모하메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를 만난다"고 보도했으나 날짜는 틀렸습니다. 그러나 중국 외교부는 여전히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있어 이번 주에 전격적으로 사우디행 비행기를 탈 수 있습니다. 이미 다음달 이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를 만날 것이라는 보도도 나오고 있어 시 주석의 광폭 행보가 예상되고 있습니다.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 의장의 대만 방문 이후 시 주석은 미국에 대해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습니다. 때문에 친 중국 동맹을 넓히기 위해 2020년 1월 이후 2년 7개월 만에 대외 활동을 본격 재개할 가능성이 큽니다.
시주석의 첫째 해외 방문 장소가 사우디라는 건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홀대를 당한 사우디에서 환대를 받는다면 바이든 대통령에게 한 방을 먹이는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서 사우디 왕정의 역점 사업인 네옴시티 건설에 중국이 적극 지원하는 대가로 사우디 원유 수입 시 위안화 결제를 얻어낸다면 금상첨화일 겁니다. 단기적으로 위안화 가치 상승, 달러 가치 하락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국제원유시장과 증시에서 리스크가 커져 중장기적으로 달러가치는 다른 방향으로 틀 수도 있습니다. 요컨대 이번 주는 유럽의 고물가와 경기침체 우려, 일본과 중국의 완화적 정책을 재확인하는 시기입니다. 여기에 잭슨홀에서 파월의 매파적 발언이 나온다면 달러 가치는 더 강해질 수 있습니다.
'달러에 투자해야 하나' 생각해보지만 "이미 끝물"이라는 평가가 적지 않습니다. 그래도 미국 주식 투자로 달러 투자를 대신한 게 다행일 수 있습니다. 여러 변수 속에 달러만큼 오르지 않고 있는 미국 증시. '달러 스마일'처럼 '미주(미국 주식) 스마일' 이론도 통용될 때가 오기를 기원해 봅니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