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은 日 적수 못된다더니"…한국이 보기 좋게 뒤집어놨다 [정영효의 인사이드 재팬]
입력
수정
닛케이 "가내수공업 면치 못하는 日 출판업계""'만화는 일본의 주특기'라는 상식이 라이벌 한국에 의해 뒤집어지고 있다."
"IT 경쟁력으로 세계시장 진출한 한국에 흔들려"
日 만화앱 상위 10위 중 4곳이 한국 웹툰업체
온라인문화 기반 자유도 무기로 세계 시장 홀려
'쿨 코리아' 모방한 '쿨 재팬'도 실패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출판사와 편집자 중심의 가내수공업 형태를 면치 못하는 일본 만화가 정보기술(IT) 경쟁력을 최대한 활용해 세계 시장에서 독자를 개척하는 한국의 도전에 흔들리고 있다고 22일 보도했다. 한국의 스마트폰용 올 컬러, 세로 읽기 만화인 웹툰이 일본의 만화 앱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고 전했다.
"웹툰은 日 적수 못된다"더니
출판 전문 시장 조사회사 MMD연구소에 따르면 2020년 이후 일본의 만화 앱 이용률 1~2위는 네이버 계열의 웹툰회사인 라인망가와 카카오의 픽코마가 지키고 있다. 메차코믹과 소년점프 등 일본의 양대 업체가 선전하고 있지만 라인망가와 픽코마 양강 체제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MMD연구소는 분석했다.올해 순위에서도 한국 웹툰 기업은 코미코(5위)와 e북재팬(7위)까지 4개 업체가 10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출판사와 편집자의 권한이 강한 일본의 만화 제작 문화를 부진의 원인으로 꼽았다. 한국 웹툰 회사 관계자는 "일본의 편집자 중심주의가 젊고 재능있는 만화가의 등장을 막아왔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일본의 판타지 만화 '진격의 거인'이다. 2010년 발표 이후 세계적인 히트작이 됐지만 처음에는 일본의 양대 만화 출판사인 슈에이샤로부터 거절당한 만화다.
한국의 웹툰은 1997년 외환위기가 낳은 산물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위기로 기존 출판업계가 궤멸 상태에 빠지면서 젊고 재능있는 만화가들이 온라인으로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한 게 계기였다.
'자유롭게 그리고 마음대로 공개한다. 인기를 모으면 판로와 수입은 따라온다'는 온라인 문화 기반의 한국 웹툰은 편집자가 신인 작가를 발굴해 데뷔할 때까지 육성하는 일본과 정반대라고 이 신문은 분석했다. 한국의 웹툰이 처음 등장했을 때 일본의 만화계는 대부분 "일본의 적수가 되지 못할 것"으로 봤다. 하지만 웹툰의 자유도는 전통 만화가 주류이던 미국과 프랑스 등 전세계 독자들을 매료시켰다.
넷플릭스가 영화화한 '지옥'과 같은 참신한 작품이 잇따라 등장했다. 라인망가의 '인디즈' 부문은 누구라도 투고가 가능하다. 형식 또한 컬러, 흑백, 세로 읽기, 가로 읽기 등 제한이 없다. 일본 출판계에는 없는 이러한 자유도를 무기로 한국 웹툰 기업들은 미국과 유럽 진출도 가속화하고 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만화산업'도 실패..저작권 수입, 스위스 1/4
네이버와 카카오의 시가총액은 일본 최대 게임 회사인 닌텐도와 같은 수준으로 성장했다. 반면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한 일본 만화업계는 만화산업을 키우는데도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저작권협회국제연합(CISAC)의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의 인구 1인당 저작권 수입은 약 5유로(약 1342원)로 세계 19위다. 1위 스위스의 4분의 1 수준이다. 저작권 수입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0.02%로 24위다. 1위 프랑스는 0.05%가 넘었다.
한국의 웹툰이 일본 만화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면서 1990년대 한국의 현대 문화 진흥책인 '쿨 코리아'도 재조명 받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쿨 코리아 전략이 만화와 영화 등 문화작품을 통해 한국의 이미지를 1류로 만드는 성과를 냈다"고 평가했다.
한국의 성공 사례를 본따 일본 경제산업성은 '쿨 재팬' 정책을 내걸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인기를 어떤 콘텐츠를 통해 살려 나갈지와 같은 전략을 명확하게 세우지 않았다. 그 결과 주먹구구식으로 업계를 지원하는데 그쳤다는 평가를 받는다.2013년 설립한 민관펀드 해외수요개척지원(쿨재팬) 기구는 누적손실이 309억엔(약 3013억원)까지 불어나 통폐합 대상에 올랐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