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억 들이면 뭐하나…'꼼수 집회'에 멍드는 광화문 광장

전광훈 목사 등이 지난 15일 서울 세종대로 일대에서 연 ‘자유통일 주사파 척결 8·15 일천만 국민대회’. 인근에 집회신고를 한 여러 그룹이 흩어져 있다가 일시에 광장으로 모여드는 방식으로 약 2만 명이 집결했다. 연합뉴스
800억원을 들여 보수한 광화문광장이 재개장 보름 만에 각종 집회·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 서울시의 불허 방침에도 광장 인근에 집회를 신고한 뒤 실제론 광화문광장에서 모이는 ‘꼼수’를 막지 못해서다. 광장 인근에 집회가 늘어나는 ‘풍선효과’도 생겼다.

○장소 옮겨 다니며 꼼수 집회

22일 경찰에 따르면 광화문광장과 인근 집회는 재개장 이전보다 오히려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종로경찰서에 신고된 집회 건수는 광장 재개장 일인 지난 6일부터 이날까지 17일간 동안 147건으로 집계됐다. 재개장 직전 같은 기간 135건이 신고된 것을 감안하면 12건 늘었다. 당초 서울시는 광화문광장을 다시 열면서 집회·시위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했다. 일부 문화 행사만 22일부터 허용할 방침이었다.

하지만 시의 방침을 비웃기라도 하듯 일부 단체들은 꼼수 집회를 열기 시작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광화문 인근 교보빌딩·광화문KT·동화면세점·일민미술관 등에 집회를 신고한 뒤 실제론 광화문광장으로 이동하는 방식으로 시와 경찰의 제지를 피했다. 지난 20일에도 광화문광장은 주말 집회 참가자들로 붐볐다.

전광훈 목사가 이끄는 자유통일당은 동화면세점 앞에서 모인 뒤 광화문광장에서 집회를 끝냈다. 신고 인원만 1만 명이었다. 이들이 횡단보도 신호를 위반하며 광화문광장으로 이동한 탓에 이 일대는 극심한 차량 정체를 빚었다. 집회에 참석한 이모씨(68)는 “집회를 하다가 일제히 광장으로 넘어왔지만 경찰이 어떤 제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난 15일 광화문광장에서 전 목사를 중심으로 2만여명 규모의 대규모 불법집회가 벌어졌을 때도 별다른 제지는 없었다. 이날에도 집회 신고 장소는 광장 인근 동화면세점이었다.광화문광장을 구경하러 온 시민들은 눈쌀을 찌푸렸다. 협소한 공간에서 깃발을 흔들고 스피커로 구호를 외치는 시위대 탓에 이전보다 더 혼란스러워졌다는 얘기도 나왔다. 박모씨(38)는 “시위대 일부가 아이에게 다가와 목소리를 높여 깜짝 놀랐다”며 “시민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시가 광장을 제대로 관리해줬으면 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불법 집회지만 과태료 부과 0건

문제는 꼼수 집회를 제지해야 할 경찰과 서울시가 손을 놓고 있다는 점이다. 오히려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우선 경찰은 “집회 자체를 막는 건 자신들의 권한 밖”이라고 선을 긋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신고 장소를 벗어나 집회를 진행해도 이들을 해산시킬 권한이 없다”며 “광장을 완전히 봉쇄하지 않는한 별다른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집회를 막기보다는 사후 조치를 통해 주최자를 처벌 할 권한만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꼼수 집회와 관련해 경찰이 주최자 처벌 등 행동에 나선 사례는 아직없다.

수수방관하는 건 서울시도 마찬가지다. 서울시는 신고 장소를 벗어난 집회는 경찰 책임이라고 주장한다. 광화문광장에 문화 행사를 신고하면 시 관할이자만 이외 사항은 경찰에서 제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불법 집회에 대한 처벌도 미온적이다. 서울시는 ‘공유재산 및 물품관리 조례’에 따라 광장 불법 집회에 변상금을 부과할 수 있지다. 다만 광장 재개장 이후 변상금을 부과한 사례는 없었다. 시는 광장 집회가 변상금 부과 기준인 △광장 내 시설물 설치 △광장 시설물 훼손 △대규모 집회로 인한 소음 발생 등의 기준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변상금을 부과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집회 풍선 효과에 멍드는 인근 상인

집회·시위가 인근 상권으로 몰리는 ‘풍선효과’도 나타났다. 광장 집회가 금지되자 청계광장과 시의회 앞 등으로 집회 장소를 넓히고 있는 것이다. 집회 장소가 협소한 탓에 집회 공간을 두고 단체 간 실랑이도 벌어졌다. 경찰이 중재하는 과정에서 펜스를 좁히자 경찰과 주최 측 사이 고성이 오갔다. 현장에 있던 보수단체 관계자는 “좁은 장소에서 여러 단체가 집회를 하다 보니 마찰이 발생했다”고 했다.

상인들의 불편도 커지고 있다. 종로에서 40년 가까이 음식점을 하고 있는 권모씨(74)는 “집회가 있는 날이면 가게 앞이 노조들의 봉고차와 버스로 가득 차 움직이기조차 힘들다”며 “손님들이 주말 예약을 취소하는 경우도 다반사”라고 말했다. 장강호 기자

장강호 기자 callm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