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산 없으면 못 만드는데,美는 '脫중국' 강요…기로에 선 '배·반·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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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수교 30년, 협력에서 경쟁으로현대자동차 아이오닉 5는 그동안 미국에서 테슬라 모델 3보다 등급별로 5000달러 안팎 싸게 팔렸다. 그러나 미국이 미래차 시장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지난 16일부터 수입 전기차에 보조금(최대 7500달러)을 주지 않기로 하면서 아이오닉 5 일부 모델은 테슬라보다 비싸졌다. 아이오닉 5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미국 내 판매량이 줄어들 가능성이 커졌다. 격화하는 미·중 갈등이 우리 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3·끝) 미·중 갈등 속 한국의 선택
배터리 소재 中 의존 80% 넘어
中 겨냥 칩4·인플레 방지법으로
美 "우리편에 서라" 동맹 압박
뒤처질 수 없다 '양면전략'
현대車, 美·中서 전기차 조기생산
반도체, 중국이 최대 수출 시장
전략적 외교로 보복 최소화해야
전기차, 배터리, 반도체 등에서 중국의 ‘미래 산업 굴기’가 본격화함에 따라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미국의 움직임이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미국도, 중국도 놓칠 수 없는 한국 기업들은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가장 중대한 기로에 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중 ‘양면 전략’ 택한 현대차
미래 산업 분야 미국의 대중(對中) 견제 움직임은 전방위적이다. 최근 새로운 전기차 보조금 정책 등을 담은 7400억달러 수준의 ‘인플레이션 완화법’을 제정한 것이 대표적이다. 미국에서 생산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주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반도체와 관련해선 미국 중심의 공급망을 짜기 위해 ‘칩4(미국·한국·대만·일본)’ 참여를 한국 정부에 제안했다.현대차는 미국의 새 보조금 정책에 대응해 조지아주 전기차 공장 가동을 앞당기기로 했다. 2025년 상반기에서 2024년 하반기로 6개월가량 조기 준공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와 함께 중국에선 이르면 내년 말부터 전기차를 현지에서 생산해 판매하기로 했다. 미·중 갈등 속에서 현대차가 ‘양면 전략’을 택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세계 최고의 차량용 소프트웨어와 자율주행 경쟁력을 갖춘 미국 업계와 포괄적으로 협력하되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서 중국과의 소통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광물 수입처 다변화해야”
미국은 인플레이션 완화법을 통해 배터리·광물까지 ‘탈(脫)중국’을 사실상 강제하고 나섰다. 미국 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에서 채굴·제련한 배터리 핵심 광물을 내년부터 40% 이상, 2027년부터 80% 이상 사용해야 보조금을 지급한다.문제는 이미 글로벌 배터리 광물 공급망을 대부분 중국이 장악했다는 점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리튬, 니켈, 코발트, 흑연 등 제련과 양·음극재 제조의 중국 의존도가 70%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했다. 단기간에 중국 의존도를 줄이는 게 쉽지 않은 상황일뿐더러 큰 폭의 비용 증가도 불가피하다.
전문가들은 공급망 다변화를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 기업들이 전기차 핵심 광물 수입처를 다변화할 경우 원가 상승으로 이어질 전망”이라면서도 “우리와 FTA를 체결한 핵심 광물 생산국인 호주, 캐나다, 칠레, 인도네시아 등과 공급 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중국 반도체 외교 중요해”
한국은 반도체 수출 비중이 가장 높은 중국과의 관계를 두고도 고민에 빠졌다. 조만간 미국 주도의 칩4 참여 여부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 반도체 산업에서 미·중 모두 중요한 나라다. 미국은 반도체 제작 원천 기술을 다수 보유한 국가이고, 중국은 한국 반도체의 최대 시장이다. 지난해 한국 반도체 산업의 중국 수출 비중은 39.7%에 달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에 주요 생산기지를 두고 있기도 하다.반도체업계에선 한국이 칩4에 참여하면서도 중국과의 협력을 유지하는 전략적 반도체 외교를 펼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가입에 앞서 중국의 경제 보복 가능성 등을 최소화할 장치가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최리노 인하대 신소재공학과 교수는 “중국은 중요한 한국의 반도체 시장이기 때문에 관계가 위태로워져선 안 된다”며 “한국 정부가 미국과 칩4 가입을 논의할 때 기존 한·중 간 거래나 중국 내 반도체 생산공장 가동에 지장이 없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피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일규/박한신/정지은 기자 black0419@hankyung.com